[盧 '재신임' 파문] 경제 영향 - 분석과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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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노무현 대통령이 재신임을 묻겠다는 발언을 한 10일 국내 증시에서는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르며 종합주가지수 750선을 회복했다. 그러나 증시에선 주가상승의 원인이 盧대통령의 발언 때문이라기보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수세 때문이라는 분석이 주류를 이뤘다.

특히 盧대통령의 발언이 증시에 호재라기보다 장기적으로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악재가 될 우려가 크다는 반응이다.

◆주가 급등=이날 주가는 장 초반 이달 들어 시작된 상승기조가 이어지면서 지수상승률이 0.5% 내외에 머무는 약보합세로 출발했다.

그러나 盧대통령의 발표가 나온 오전 11시쯤 주가는 폭발적인 오름세를 타기 시작했다. 주가지수는 11시20분 1.11%까지 반등한 뒤 오후부터 속도가 빨라지면서 오후 2시30분에는 장중 최고폭인 3.14%까지 치솟았다.

외국인들의 매수 강도도 시간이 흐르면서 강해졌다. 개장 직후 전날 예약된 주문이 실행되면서 순매수(산 금액-판 금액)는 1백67억원에 그쳤으나 오전 11시쯤에는 1천억원으로 늘어났고, 오후 들어 매수 강도가 더욱 세지면서 이날 하루 3천1백35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외국인들의 누적 순매수도 이번 주에만 1조2천8백91억원까지 불어났다.

하지만 개인들은 이날 오후 들어 대거 투매에 나서면서 지난 7월 3일 이후 가장 많은 3천8백20억원을 순매도, 갑작스러운 재신임 발표에 극도의 불안감을 나타냈다.

◆강세 배경=상승 동력은 미국 증시에서 제공됐다. 다우지수는 장중 한때 연중 최고치를 기록하며 49.11포인트(0.51%) 오른 9,680.01로 마감했고, 나스닥지수도 0.96% 오르며 연중 최고치를 눈앞에 둔 1,900선을 회복했다.

미국 경기회복의 마지막 걸림돌로 지목됐던 고용지표가 크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고, 이번주 발표가 본격화된 미국 기업들의 3분기 실적이 개선된 것으로 집계되면서 전날 미국 증시가 큰 폭으로 반등한 것이다.

지난주 미국의 주간 실업수당 신청자는 38만2천명으로 8개월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한 데다 한주 전보다 2만3천명이 줄어들었다. 대신경제연구소 김영익 박사는 "미국 경기회복의 마지막 걸림돌로 지목됐던 고용 개선이 증시 상승에 날개를 달아줬다"고 말했다.

'야후 효과'도 장세 반등에 한몫 했다. 광고수입의 증가로 야후의 3분기 순익이 예상치를 웃돌았다는 소식에 인터넷주들이 강세를 보이며 반등 장세를 이끌어내며 국내에서도 NHN.다음 등 인터넷주들이 상승세를 탔다.

◆재신임 발언 영향은 미미=이날 증시가 오전 11시 이후 급등하자 증시에서는 盧대통령 발언이 증시에 미칠 영향을 점검하는 데 분주했다.

한화증권 이종우 리서치센터장은 "오늘 주가가 오른 것은 미국의 경기회복과 이에 따른 미국 증시의 반등 때문"이라며 "대통령 발언으로 정치의 공백이 우려되고 경제가 정치 문제에 흔들리게 될 우려가 커 장기적으로 증시에는 부담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KTB자산운용 장인환 사장은 "정치에 대한 불신은 이미 주가에 반영됐기 때문에 증시에는 큰 반응이 없었다"며 "대통령 자리가 흔들리는 것 자체는 장기적으로 증시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의 발언이 호재라기보다 경제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다시 불거지고, 리더십 문제까지 겹쳐 외국인들이 국내 투자를 꺼리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가중시킬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엇갈리는 향후 전망=盧대통령의 발언이 당장 주가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우리 경제에 미칠 부정적 파장이 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벌써부터 (외국인)고객들의 문의전화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대통령의 재신임 이슈가 정치권을 흔들면서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정책에 혼선이 생길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증권 신성호 리서치헤드는 "재신임을 묻기까지 공무원들이 복지부동할 가능성이 크고, 실제로 재신임을 묻고자 한다면 경제가 좋지 않은 상태로는 점수를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재신임을 위해서 강력한 경기.증시 부양책을 내놓을 수도 있어 결국 경기가 좋아질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LG투자증권 박윤수 상무는 "그동안 내수가 가라앉는데도 특별한 경기 진작책이 없었기 때문에 이 상태로 5년을 끌고 갈 것인지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지만 내년 4월 이전에 재신임을 물으면 정부에서 어려운 경제를 살리기 위한 선심정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양대 경제학과 나성린 교수는 "리더십이 이미 손상됐기 때문에 정치권이 경제에 나쁜 영향을 끼칠 만큼 더 이상 악화할 부분도 없다"며 "정치권의 혼란에 관계없이 공무원들이 중심을 잡고 기업들이 더욱 분발해 리더십 부재에 따른 손실을 막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호.김준술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사진 설명>
증시 상승세가 이어진 10일 거래소 종합주가지수가 급등해 757.89로 장을 마감했다. 거래소 직원이 당일의 그래프를 보며 노무현 대통령이 재신임 관련 기자회견을 한 시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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