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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첫 女트로이카…이념 다 달라도 성범죄는 한목소리 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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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4월 헌법재판소에 이미선 재판관이 합류하며 ‘여성 트로이카(troika·3인방)’ 시대가 열렸다. 이선애·이은애 재판관에 이어 이미선 재판관까지 한 자리에 있게 된 것이다. 그 전까진 첫 여성 재판관인 전효숙 재판관(2003~2006년)에 이어 이정미 재판관(2011~2017)이 간신히 명맥을 유지해왔다.

헌재 지형도⑤

헌재 9명의 재판관 중 3분의 1이 여성으로 꾸려진 건 1988년 개소 이래 33년만의 일이다. 문재인 정부의 여성 장관 비율 16%(18명 중 3명)와 여성 대법관 비율 23.1%(13명 중 3명)보다 높다. ‘서·오·남(서울대ㆍ50대ㆍ남성 법관)’ 위주라는 비판을 받던 헌재가 이제는 젠더 다양성 측면에서 다른 기관보다 앞서나가게 됐다.

서오남 법칙 깬 女 트로이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 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 joongang.co.kr

여성 트로이카 체제가 만들어진 이후 헌재 지형도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23일 중앙일보가 2019년 5월부터 2021년 1월까지 1년 8개월간 결정문 270건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3명의 여성 재판관은 여성·성범죄 관련 젠더 사건에서 대부분 한목소리를 냈다.

성범죄자의 신상정보 등록 관련 결정들이 대표적이다. 지난 2019년 12월 아동·청소년 추행 전과자에 대해, 지난해 7월엔 지하철 등 공중 밀집장소 추행범, 11월엔 몰카범에 대한 신상정보를 경찰에 등록하는 문제가 연이어 헌재 심판대에 올랐다.

세 사건 모두 6대 3으로 합헌 결정이 나왔는데, 3명의 여성 재판관들은 합헌 편에 섰다. 재판의 쟁점은 성범죄 내용의 심각성이나 재범 위험을 구분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성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게 맞는지였다.

합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성폭력 범죄 재범 방지와 효율적 수사를 위해 국가가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해당 조항으로 인해 개인이 침해받는 사익보다 성범죄자 재범 방지라는 공익이 더 크다고 본 것이다.

반대 의견을 낸 재판관 3인은 ‘과잉금지원칙 위배’를 들었다. 헌재 결정에서 가장 보수성향을 이종석 재판관은 세 사건에서 여성 트로이카와 한목소리를 낸 반면 진보 성향인 이석태 재판관과 김기영 재판관이 '중도' 이영진 재판관과 함께 '위헌'을 주장했다.

2019년 낙태죄 '위헌' 폐지에도 앞장서

2019년 4월 낙태를 한 여성을 처벌하도록 한 형법 조항에 대해 재판관 4(헌법불합치)대 3(단순위헌)대 2(합헌)로 위헌 결정을 할 때도 이선애·이은애 재판관은 위헌 쪽에 섰다. 이미선 재판관은 임명 이전이어서 심리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선애 재판관은 기간 내에 법을 개정하라는 ‘헌법불합치’ 의견을 내며 “자기낙태죄 조항은 임신한 여성에게 임신의 유지, 출산을 강제하고 있어 임신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한다”고 밝혔다.

‘단순위헌’ 의견을 낸 이은애 재판관은 임신 14주까진 조건 없는 낙태가 가능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낙태죄 조항이 폐기된다고 극심한 법적 혼란이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바로 낙태죄 조항을 즉시 폐기하자는 의견을 냈다.

정치·이념적 사건에선 3人 3色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은 이미선 재판관 임명 당시 '40대 여성 법관, 노동법 전문가'를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은 이미선 재판관 임명 당시 '40대 여성 법관, 노동법 전문가'를 강조했다.

다만 이념성·정치색을 띈 사건에서는 여성 재판관끼리도 의견이 갈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젊은 노동법 전문가’를 강조하며 임명한 이미선 재판관은 ‘진보 쿼드(Quad·4)’로 분류되는 유남석 소장·이석태·김기영·문형배 재판관과 의견을 함께할 때가 많았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이 헌법 위반이 아니라는 결정이나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처리 과정에서 이뤄진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 사보임이 정당했다는 결정 등이 그 예다. 이미선 재판관은 법원 내 진보 성향 판사들이 다수 속해있는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다.

헌재 주요심판 결정문 분석에 따른 지형도 그래픽 이미지.

헌재 주요심판 결정문 분석에 따른 지형도 그래픽 이미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명한 이선애 재판관은 보수 그룹에 들었다. 지난해 2월 재판관 6대 3 의견으로 합헌 결정이 난 일명 ‘전두환 일가 몰수 추징법’이 헌법에 위반된다며 반대편에 섰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명한 이은애 재판관은 사안의 성격에 따라 보수와 진보를 넘나드는 '스윙 보터' 역할을 하고 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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