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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법’ 유남석·문형배 싱크로율 94%…공수처법도 ‘적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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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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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안 발의는 국회의 자율 영역이다. 현행법상 신속처리안건 지정 전 질의·토론이 필요하다는 규정도 없다.”(유남석 소장, 이석태·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

“국회법 취지는 다수세력의 일방적 결정이 아니라 상대방을 설득해 의사를 형성하라는 것이다.”(이선애·이종석·이영진·이은애 재판관)

2019년 4월 공직선거법·공수처법·검경수사권조정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둘러싼 여·야 권한쟁의 심판에서 헌법재판소는 5대 4로 팽팽하게 갈렸다. 위헌 정족수(6인)를 넘지 못해 기각 결정이 났다.

헌재 지형도②

다수 의견인 유남석(64·사법연수원 13기) 소장과 이석태(68·14기)·김기영(53·22기)·문형배(55·18기)·이미선(51·26기) 재판관은 “절차적 위법이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판단했다.

반면 이선애(54·21기)·이종석(60·15기)·이영진(60·22기)·이은애(55·19기) 재판관은 “의회민주주의는 소수파가 토론을 통해 다수파를 비판하고 반대의견을 내는 것인데 이 사건에선 국회의원의 실질적 심의·표결권이 침해됐다”며 인용 의견을 냈다. 결국 헌재의 기각 결정은 거대 여당의 3개 법안 처리에 사후적 정당성을 부여했다.

이 같은 정치적 사건에서도 유남석·이석태·김기영·문형배 재판관에 이미선 재판관이 합세한 ‘진보 쿼드(quadㆍ4)+1’은 헌재 결정을 좌우한 것으로 분석됐다. 중앙일보가 22일 2019년 5월 이후 270건의 헌재 결정문을 통해 재판관 9인의 ‘법리적 친소(親疏) 관계'를 분석한 결과 헌재 메커니즘엔 세 가지 뚜렷한 특징이 나타났다.

헌법재판소의 주요사건 결과.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헌법재판소의 주요사건 결과.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①우리법 출신 유남석·문형배 일치율 최고=진보 4+1 중에선 유남석-문형배, 김기영-이석태 조합의 의견 일치도가 높았다. 유남석 소장과 문형배 재판관은 1988년 제2차 사법파동으로 탄생한 법원 진보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의 멤버였다. 유 소장은 김종훈 변호사ㆍ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등과 함께 창립멤버였다가 2005년 탈퇴했고, 문형배 재판관은 2009년 회장을 지냈다. 두 사람은 270건의 결정 중 254건(94.1%)에서 같은 의견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전원일치 사건을 고려하더라도 위헌·합헌 결정을 막론하고 ‘유남석-문형배’ 조합으로 움직인 경우가 가장 많았다. 두 사람의 의견이 갈린 사건은 형법상 국기모독죄 합헌 결정 등 16건이었다.

김기영 재판관은 재야 출신 이석태 재판관과 법리적 거리가 가장 가까웠다(일치율 91.1%). 두 재판관은 유신 정부의 긴급조치 피해자들의 배상청구를 대법원이 소멸시효를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은 사건에서 “긴급조치는 국가권력을 위헌적으로 남용해 국가가 총체적 불법행위를 자행한 사건”이라며 인용(위헌)을 주장했다. 헌법재판소법상 재판 소원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이 사건은 7대 2로 각하 결정이 났지만, 두 사람은 “도저히 부정의 함을 묵과할 수 없는 수준이라 예외적으로 대법원 판결을 취소해야 한다”고 반대의견을 냈다.

김기영 재판관은 우리법연구회 후신 격인 국제인권법연구회(2011년 설립)의 간사 출신이다. 양승태 대법원이 국제인권법연구회와 갈등을 빚을 때 선봉에 있었다.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의 핵심 측근으로 지목돼 논란이 일었다.

이미선 재판관은 사회적 파장이 큰 주요사건에선 쿼드 4인방과 강하게 결합했지만, 정치색이 덜한 현안에선 종종 다른 판단을 했다. 쿼드 4인방 중 유남석 소장과 가까웠고, 이석태 재판관과는 상대적으로 견해차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달 헌재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 합헌(5대 4) 결정을 할 때 쿼드 4인방은 “진실을 적시했다면 개인의 명예보다 표현의 자유를 중시해야 한다”며 위헌을 주장했지만, 이미선 재판관은 “한번 훼손된 명예는 회복이 어렵다”며 합헌 쪽에 섰다.

‘9개의 기둥’ 헌법재판관 약력과 주요발언.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9개의 기둥’ 헌법재판관 약력과 주요발언.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②진보·보수 오고 간 이은애와 이영진=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과 법체계를 바꾼 위헌 사건만 추출한 주요사건 33건에서 이선애·이종석·이영진·이은애 재판관은 반대 의견 그룹을 형성했다. 다만 이들의 의견 일치율은 54.5%로 진보 4+1에 비해 느슨한 결합 형태를 보였다.

전남 나주 출신으로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명한 이은애 재판관은 반드시 여당 내지는 진보 쿼드와 일치하는 판단을 하지 않았다. 바른미래당 지명 몫 이영진 재판관과 함께 사안에 따라 보수와 진보를 넘나드는 결정을 했다. 이은애 재판관은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도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에서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해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대하는 입장에 섰다.

반면 제3자의 재산도 추징할 수 있도록 한 일명 ‘전두환 추징법(공무원범죄 몰수특례법)’에 대해선 “특정 공무원 범죄로 인한 불법재산의 철저한 환수는 우리사회에서 매우 중대하다”며 진보 4+1에 힘을 실어줬다.

이영진 재판관은 교원의 정치단체·정당 가입을 금지한 정당법 일부 위헌 결정에서 “교사에 대해 모든 정치단체 가입을 금지한 건 과도하다”며 위헌 정족수에 표를 보탰다. 반대로 공수처법 판단에선 “공수처 설립은 권력분립에 위반되고, 사법부의 재판 독립을 침해할 우려마저 있다”며 진보 4+1에 반대하는 쪽에 섰다.

선거운동 기간 인터넷 언론사의 실명 인증제에 관한 판단에서도 “인터넷 매체의 진입장벽이 낮은 만큼 그에 걸맞은 중립성과 책임이 필요하다”고 봤다. 이 사건에서 진보 4+1은 “인터넷 언론사는 다른 매체와 달리 표현의 자유가 더 폭넓게 보장돼야 한다”는 쪽에 섰고 다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③‘합·위헌 반대 의견 1위’는 이선애=박근혜 정부 말기인 2017년 임명돼 소장을 제외한 재판관 중 선임자인 이선애 재판관은 대체로 보수 성향의 결정을 많이 내렸다. 회원제 골프장에 4%의 토지 재산세를 중과세하도록 한 지방세법 판단에서 이종석·이영진 재판관과 더불어 위헌 의견을 낸 게 대표적이다. 그는 “골프장은 더는 특수부유층의 사치성 시설이 아니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선애 재판관의 또 다른 특징은 9명 가운데 가장 많은 반대의견(총 36건)을 냈다는 점이다. 이석태 재판관이 합헌 결정 때 '위헌' 반대의견을 가장 많이 낸 반면, 이선애 재판관은 골고루 반대했다. 민법상 성년후견인 제도 판단에서 “후견인 청구를 4촌 친족까지 할 수 있도록 한 건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며 8대 1로 홀로 위헌 의견을 낸 적도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다양한 의견 형성을 위해 헌재 소장 외에 차석 재판관이 반대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2023년 3월로 임기가 끝나는 이선애 재판관 후임은 같은 해 9월 퇴임하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명하게 된다. 이선애 재판관 후임도 진보 성향 재판관으로 교체될 경우 위헌 정족수(6인)를 충족하기 때문에 헌재의 진보 색채가 강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야당인 자유한국당 지명 몫인 이종석 재판관은 주요사건에선 이선애 재판관과 더불어 반대의견을 자주 냈지만, 합헌ㆍ각하 사건들에선 반대의견을 거의 내지 않았다. 법적 안정성에 무게를 두는 법리 해석을 선호한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경찰의 직사 살수로 사망한 백남기 농민의 자녀들이 제기한 위헌 확인 소송에 대해 나 홀로 '각하’ 의견을 내면서 “자녀들은 당사자가 아니라서 구체적인 권리 침해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유정·이수정·박현주 기자 uuu@joongang.co.kr

☞분석 방법과 한계=헌재 재판관 9인 가운데 가장 마지막으로 합류한 문형배ㆍ이미선 재판관이 심리에 참여한 2019년 5월부터 2021년 1월까지 공보판례 270건에 대해  반대의견·의견 일치 빈도 수 등을 집계했다. 위헌법률제청ㆍ헌법소원ㆍ권한쟁의심판 등 심판의 종류와 처분을 위헌ㆍ합헌(기각)ㆍ각하로 단순화했다. 재판관들의 보충의견ㆍ별개의견은 법정의견에 동조하는지, 반대하는지에 따라 분류했다. 분석 대상 270건은 헌재가 자체적으로 선정해 공개한 판례들로, 전원일치 비중(68.5%)이 많았다는 점은 각 재판관별 특성을 파악하는 데 한계로 꼽혔다. 그럼에도 재판관들의 판단 경향성 확인한 점, 무엇보다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들에서 ‘진보 4+1’의 결집 패턴이 드러난 데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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