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초 탈출 2년 장종훈 선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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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사나이 장종훈(35). 최다경기 출장, 최다 안타, 최다 홈런, 최다 타점, 최다 득점 등 웬만한 국내 프로야구 기록은 모두 가지고 있는 그가 요즘 또 하나의 기록에 도전하고 있다. 금연 2년차. 자신의 화려한 기록에 비하면 아직 내세울 게 못되지만 평생을 두고 도전하는 만큼 의미가 다르다.

2년 전만 해도 장선수는 하루 한 갑 반 이상 피우는 골초였다. 술을 즐기지 않는 그에게 담배는 무한경쟁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그러나 어느 날 큰아들(9)의 말이 그를 바꿨다.

"아빠는 할아버지 냄새가 나서 싫어."

잦은 원정경기 탓에 자주 볼 수 없는 아빠인데도 안기길 거부하고 달아나는 아들에게서 서운한 감정보다는 충격을 받았다.

"그 자리에서 약국으로 가 금연 패치를 사서 붙였죠."

담배를 끊은 사람은 절대로 잊지 못하는 금연일. 2002년 12월 12일이었다. 장 선수는 패치를 붙인 다음날 무심코 담배를 한대 빼물었다가 어지러워 쓰러졌다. 그것이 그가 피운 마지막 담배였다.

하지만 그때부터가 고행의 시작이기도 했다.

"처음 6개월간은 정말 힘들었어요. 특히 술자리에서나 화장실 갈 때 담배의 유혹에 넘어갈 뻔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죠."

아들을 품에 안기 위해 마음을 다져 먹었다. 시합 중 5회를 마친 뒤 잠깐의 휴식시간 때 라커룸에 들어가면 담배가 생각날까봐 장 선수는 아무도 없는 더그아웃에 홀로 남아있기도 했다. 회식이 있어도 "내게 담배를 권하지 말라"고 사전고지를 한 뒤 모두 동의해야만 자리를 함께 했다. 간혹 그의 얼굴에 담배 연기를 내뿜는 짓궂은 동료도 있었지만 대부분 협조해줬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갔다. 장 선수의 마음 속에서 점차 담배가 자리를 비웠다.

"제 자신도 시즌에 들어가면 중압감을 못 이겨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될 거라 생각했는데 신기하더군요. 일부러 라커룸에 들어가 봤는데 예전에 그렇게 구수하던 담배 냄새가 역겹게 느껴지더라고요."

지난해 장 선수는 성적이 좋지않아 2군으로 내려가는 수모도 겪었지만 그때도 담배에 의지하지 않았다. 아들에게 '나약한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끊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그 결과는 더없이 좋았다.

"무엇보다도 심폐 기능이 좋아졌어요. 운동선수들에게는 생명과도 다름없잖아요. 아침에 일어날 때 개운한 느낌도 좋고…."

담배를 끊기 전보다 몸무게가 10㎏나 불었지만 대부분 운동과 함께 근육량이 늘어난 것이어서 걱정거리가 아니다. 가장 큰 것은 역시 아들을 다시 안아볼 수 있게 된 점이다.

"부자 간에 신뢰와 사랑을 다진 것이 보람이고요, 아이도 커서 담배를 멀리할 테니 이 또한 큰 수확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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