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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조국, 30년만에 불러낸 토지공개념 3법…지금 꺼내든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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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일대 아파트 단지. [중앙포토]

강남 일대 아파트 단지. [중앙포토]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사태가 갈수록 악화하자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을 필두로 한 여권이 '토지공개념 3법' 부활론을 꺼내 들었다.

노태우 정부가 1989년 부동산 투기를 잡기 위해 주택 200만호 공급(분당·일산 1기 신도시)과 함께 꺼낸 극약 처방이 토지공개념 3법이었다. 하지만 토지초과이득세법이 1994년 과도한 재산권 침해로 헌법불합치를, 택지소유상한제법은 99년 위헌 판정을 받았고 남은 개발이익환수법도 이후 시행·중단을 거듭해왔다.

이에 여권의 토지공개념 3법 부활론은 LH 임직원 및 공무원의 3기 신도시 투기 사태를 반전할 카드뿐 아니라 2022년 3·9일 대통령 선거용이란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추미애·조국, 토지공개념 3법 소환…정세균도 "환영"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17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표석 앞에서 전날 제주4·3 수형인 335명에 대한 법원의 전원 무죄 판결 관련 입장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뉴스1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17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표석 앞에서 전날 제주4·3 수형인 335명에 대한 법원의 전원 무죄 판결 관련 입장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뉴스1

토지공개념 3법이 다시 등장한 건 추미애·조국 두 전직 법무부 장관들이 이를 LH 사태의 해법으로 지목하면서다. 추 전 장관은 지난 16일 본인 페이스북에 '부동산 적폐청산'을 강조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에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토지공개념 3법 부활을 주장했다.

추 전 장관은 "헌법 속에 잠들어 있는 토지공개념에 다시 생명의 숨을 불어넣을 토지공개념 3법을 부활시키는 것이 부동산 적폐 청산의 궁극적 지향이자 목표가 돼야 할 것"이라며 "더 나아가 추후 개헌을 통해서라도 토지 불로소득에 대한 환수 조항을 명시해야 한다"고 썼다.

추 전 장관의 글이 올라온 지 20여분 만에 조국 전 장관도 페이스북에서 토지공개념을 언급했다. 그는 "당장의 개헌은 무망(無望)하다"면서도 "부동산 적폐청산은 '토지공개념' 강화 입법을 통해 가능하다. 180석은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압도적 의석을 가진 범여권이 마음먹으면 개헌안의 단독 처리가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18일 토지공개념을 도입하기 위한 '원포인트 개헌' 필요성을 묻는 질의에 "할 수 있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환영한다"고 말했다.

'부동산 급등' 때마다 나왔다 사라지는 '토지공개념'

노태우 대통령이 11일 청와대에서 국회에 제출할 토지공개념 확대관련 4개 법안에 서명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노태우 대통령이 11일 청와대에서 국회에 제출할 토지공개념 확대관련 4개 법안에 서명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1989년 12월 노태우 정부는 헌법 122조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있는 이용·개발'을 근거로 당시 여당인 민정당의 반대를 설득하면서까지 택지소유상한제, 토지초과이득세, 개발이익환수제 등 '토지공개념 3법' 제정을 밀어 붙였다. 1988년 올림픽과 3저 호황으로 힘입어 전국 6대 도시 토지 가격 상승률이 27%에 달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은 이랬다. 우선 토지초과이득세법은 3년마다 부재지주 농지 등 유휴토지에서 발생한 지가 상승분의 30%~50%를 토지초과이득으로 환수하도록 했다.

택지소유상한제법은 6대 도시에 661㎡(200평) 이상 택지를 취득하려면 지자체에 허가를 받도록 하고, 이를 5년 안에 이용·개발 또는 처분하지 않을 경우 초과소유보담금을 내도록 했다. 개발이익환수법은 대규모 택지나 공단·골프장 등을 개발할 경우 개발이익의 50%를 개발부담금으로 내게 했다.

하지만 1990년 시행 직후부터 헌법상 재산권 침해 및 미실현 이익에 대한 과세라며 큰 저항에 부딪혔다. 헌법재판소는 1994년 7월 토지초과이득세법에 대해 "이중과세로 재산권 침해가 과도하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단순 지가상승에 따른 미실현이익에 대한 과세일 뿐 아니라 전문가가 아닌 하급 공무원에 기준시가 산정을 위임하고 양도소득세와 이중과세가 된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헌재는 99년 4월엔 택지소유상한법이 200평이란 일률적 소유상한 적용 등이 과도한 재산권 침해라고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미 외환위기로 부동산 가격 급락에 따라 98년 9월 법을 폐지한 뒤였다. 개발이익환수법 역시 부담률을 25%로 내렸고 2005년까지 부과를 중단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는 하지만 다시 부동산 값이 급등하자 2006년부터 개발부담금을 다시 부과하고 종합부동산세와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론 반발 등에 밀려 무력화되거나 시행이 연기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집값이 폭등하자 개헌을 통해 토지공개념의 불씨를 살리려 했다. 2018년 3월 21일 개헌안을 발표하면서 128조 2항에 "국가는 토지의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만 법률로써 특별한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라는 토지공개념을 조항을 넣은 것이다. 하지만 이 개헌안은 같은 해 5월 24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지만 야당의 불참으로 인해 정족수 미달에 따른 투표 불성립으로 부결됐다.

LH 사장 출신 변창흠도 헨리 조지파…"지대(地代) 공유"

개헌안 부결 이후 2년여 만에 LH 투기 사태가 터지자 여권이 토지공개념 3법 부활론에 다시 불을 지피고 나선 셈이다. 전문가들은 하지만 토지공개념이 LH 사태의 해법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신도시 계획을 입안한 당사자인 LH 임직원과 공직자 땅 투기로 사태가 벌어졌는 데 공공의 권한을 더 강화하면 도리어 문제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LH 사태는 공공에 권한과 정보가 집중되면서 터진 문제인데 공공에 더 힘을 주자는 토지공개념을 도입하면 더 큰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와 개발이익부담금, 공공기여 등의 제도를 통해 이미 토지공개념이 상당히 강한 편"이라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토지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주의 중국도 투기와 알박기가 판친다"며 "그 이유는 부동산 거래가 일어나는 어디든 투기가 없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토지공개념의 시조로 불리는 19세기 경제학자 헨리 조지. [중앙포토]

토지공개념의 시조로 불리는 19세기 경제학자 헨리 조지. [중앙포토]

반대로 30년 전 토지공개념 3법보다 더 급진적으로 토지로 발생한 이익을 모두 환수해야 투기 세력이 사라질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국내 헨리 조지 포럼(옛 헨리 조지 연구회)의 좌장인 김윤상 전 경북대 교수는 "과거 토지공개념 3법을 부활시키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고, 토지 보유세를 강화해 토지 불로소득을 없애야 투기 세력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19세기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는 자신의 저서 '진보와 빈곤'에서 토지에서 발생하는 지대(地代)는 개인에게 사유될 수 없고 사회 전체에 의해 향유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토지공개념의 원조로 불린다. 국내에선 김윤상 전 교수를 비롯해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 등이 헨리 조지파의 주축이다.

추 전 장관을 비롯해 LH 사태 책임으로 사퇴 의사를 밝힌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헨리 조지파의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

강광우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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