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압수수색도 못 뚫었다…진짜 블라인드였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지난 17일 경남 진주시 LH 본사 정문에 ‘LH 조롱글’이 적힌 팻말이 놓여 있다. [뉴스1]

지난 17일 경남 진주시 LH 본사 정문에 ‘LH 조롱글’이 적힌 팻말이 놓여 있다. [뉴스1]

‘직장인을 위한 대나무숲’이라고 불리던 블라인드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익명으로 자기 회사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던 디지털 커뮤니티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을 자처한 이가 “꼬우면 우리 회사로 이직하든가”라는 조롱 글을 올리면서 벌어진 일이다. LH가 이 직원을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발하면서 블라인드도 경찰의 수사 대상이 됐다.

LH직원 “이직하든가” 조롱글 수사 #자료 암호화 “데이터 자체가 없다” #미국에 본사, 매출도 베일에 싸여 #일각 “직원 아닌 사람이 올릴 수도”

급기야 압수수색에 나선 경찰이 이 회사의 위치를 찾지 못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지난 17일 경찰은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팀블라인드 한국지사’ 사무실을 찾지 못했다. 경남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엉뚱한 건물을 찾아가 “팀블라인드 사무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공식 입장까지 냈다. 팀블라인드 한국지사는 경찰이 찾아간 위치에서 2㎞ 떨어진 곳에 있으며 100명 안팎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폐쇄성’이 상징인 블라인드는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IT(정보기술) 기업이다. 회사의 매출이나 재정 상황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팀블라인드의 문성욱 대표는 지난해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2018년 10월 시리즈B 투자를 포함해 총 네 번, 누적 250억원 규모 투자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광고 외에 온라인 교육이나 채용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블라인드는 2013년 12월 서비스를 시작했다. 미국·한국 등에 있는 기업 15만 곳의 직장인 450만 명을 회원으로 모았다. 회사원 인증 수단은 e메일이다. 회사 e메일은 재직자 확인과 중복 계정을 방지하는 데에 이용된다. 이후 복구 불가능한 데이터로 바뀐다. e메일로 인증 과정을 거치면 이는 암호화가 되고 블라인드 계정과 e메일 사이의 연결고리는 사라지는 식이다.

일각에선 회사 e메일만 있으면 퇴사자가 글을 쓸 수도 있다는 점 등을 들며 ‘진짜 직장인들인지 무조건적 신뢰는 어렵다’는 주장도 한다.

IT 업계에선 ‘LH 조롱글’ 수사 자체가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블라인드 측은 “수사기관 요청이 오면 협조하겠지만, 글쓴이를 색출할 수 있는 데이터 자체가 내부에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텔레그램 기반의 N번방 사건의 경우에도 이용자 특정이 어려울 거라 했지만, 검거에 성공했다”며 “압수수색으로 블라인드에서 자료를 얻지 못해도 다방면으로 수사해 작성자를 잡을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최연수기자 choi.yeonsu1@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