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부 부장관으로 재임하던 당시(2015년 1월~2017년 1월) 토니 블링컨 현 국무장관이 북한의 다양한 담화에 대해 농담처럼 지나가며 했던 말이 있다. “북한이 내는 입장문 문안들은 대체 누가 작성하는지 궁금하다. 이런 표현들은 언어의 연금술사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 아닌가.”
이는 그가 그만큼 북한의 입장문 표현 하나하나까지 꼼꼼하게 분석하며 대북 전략에 관여했단 이야기도 된다. 때로는 이런 북한 특유의 현란한 독설의 직접적 표적이 되기도 했던 블링컨이 17일 국무장관 자격으로 다시 한국 땅을 밟으면서 북한이 어떤 식으로 그를 맞이할지 관심이 쏠린다.
블링컨, 대북 제재 틀 만든 장본인
블링컨의 부장관 임기 대부분 동안 북한은 ‘고슴도치 전략’으로 일관했다. 손을 내밀어도 도발로 응수했고, 이를 비판하는 이들에게는 말폭탄을 투하했다. 한반도 업무를 전담한 블링컨도 마찬가지였다. 존 케리 당시 국무장관은 중동 문제에, 부장관이던 블링컨이 북핵 문제를 비롯한 아시아 문제에 주력하기로 일종의 업무 분담이 이뤄진 상황이었다.
당시 북한은 핵 완성을 위해 마지막 가속도를 붙이는 단계에 들어가는 시기였고, 미국은 한ㆍ일과 함께 압박에 나섰다.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지금의 대북 체제 틀은 사실 모두 그때 만들어졌고, 블링컨이 핵심에 있었다.
당연히 북한은 그를 향해 막말을 일삼았다. 2016년 10월 28일 서울을 방문한 블링컨은 “북한을 절대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비핵화라는 유일한 목표 달성을 위해 계속 압박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11월 2일 조선중앙통신과의 문답에서 “블링컨이란 자의 도발적 망발”이라며 “임기를 마치게 되는 오바마패는 구역질 나는 변명에, 남의 집 일 참견질은 그만두고 제 집안 정리나 하라”고 맹비난했다.
떠나는 순간까지 막말 쏟아낸 北
2017년 1월 5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ㆍ미ㆍ일 차관 협의 뒤 블링컨이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돌아오고 성실하게 비핵화에 임하게 하려면 북한에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압박을 가해 핵ㆍ미사일 프로그램을 멈추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사흘 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에서 그의 발언을 문제삼으며 “미국은 도적이 매를 드는 격으로 우리의 정정당당한 로케트 발사 준비를 도발과 위협으로 매도하며 제재 압박에 대해 떠들고 있다”고 비난하며 ‘선제공격 능력’을 계속 강화하겠다고 맞받았다.
한 전직 외교관은 “북한도 그가 북핵 협상을 총괄하는 국무장관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블링컨은 이미 북핵 문제를 다뤄본 경험이 있는 데다 굉장히 차분하고 꼼꼼하게 모든 것을 챙기는 성격이라 북한도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여정 담화선 원색적 비난은 안해
이번에도 그가 한국과 일본에서 내놓는 대북 메시지에 따라 북한이 또 말폭탄을 투하하거나 행동으로 대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블링컨은 한ㆍ일과 북핵 문제 등을 협의한 뒤 알래스카 앵커리지로 가 중국과 첫 대면 협의에 나선다.
다만 ‘예고편’ 격인 16일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의 담화에서는 미국을 향해 원색적 비난을 퍼붓지는 않았다. 담화 대부분은 한ㆍ미 연합훈련 실시와 관련해 한국을 비난하는 데 썼고, 미국을 향한 내용은 “우리 땅에 화약내를 풍기고 싶어 몸살을 앓고 있는 미국의 새 행정부에도 충고한다. 4년 간 발편잠 자고 싶은 것이 소원이라면, 시작부터 멋없이 잠설칠 일거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담화 말미의 두 문장이 전부였다. 영문으로는 충고를 ‘경고(warn)’로, 멋없이 잠설칠 일거리는 ‘소동을 피우는 일(causing a stink)’로 표현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