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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봉으로 차 닦은뒤 "보이지?"…17쪽 투서 속 복지관장 갑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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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이미지. 연합뉴스

갑질 이미지. 연합뉴스

투서에 직장 내 괴롭힘·성추행 주장 

"자신만의 해괴한 논리로 끊임없이 직장 내 괴롭힘을 일삼았던 A관장을 사회복지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든 종사자들을 대신해 간절한 마음을 담아 고발하고자 합니다."

전북 김제서 복지관 관장 갑질 고발 #

전북 김제시 한 복지관 A관장의 갑질을 고발하는 내용이 담긴 익명의 투서 내용 일부다. 해당 투서가 최근 사회복지시설 등에 배포돼 파문이 일고 있다.

16일 중앙일보가 입수한 A4용지 17쪽 분량의 투서에는 A관장의 직장 내 괴롭힘과 성추행, 불투명한 예산 집행과 인사 등을 주장한 내용이 빼곡히 적혀 있다. 투서에 따르면 A관장은 2017년 10월 직원들이 “차량 세차와 관리에 대해 관장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전 직원에게 복지관 관용차 8대를 세차하도록 지시했다.

직원들은 "오후 4시쯤부터 세차했는데 관장의 검사를 통과하지 못해 오후 9시 이후까지 5시간 넘게 세차를 했다"며 "당시 일교차가 커 오후 5시 이후부터는 물걸레가 얼고 손이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추웠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A관장은 흰 장갑과 면봉, 칫솔을 가지고 차 상태를 검사했으며 시커먼 것이 조금이라도 나오면 '이것 봐. 잘 안 됐지? 보이지?'라며 다시 하라고 지시했다"고 했다. A관장이 오후 10시쯤 "맘에 들지 않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 다시 얘기해"라고 말한 뒤에야 직원들은 퇴근할 수 있었다고 한다.

투서에는 A관장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주장도 담겼다. A관장은 2018년 12월 한 마을 주민 간담회에서 "요즘 어른들도 아이들이 예쁘다고 엉덩이나 어깨를 만져도 성희롱·성추행이라고 하는 시대"라며 옆에 있는 여직원의 손을 잡으며 "저는 이렇게 할 거예요. 이것이 친근감의 표시죠?"라고 했다고 한다. 이장이 "그렇게 하지 마요"라고 말렸지만, 여직원이 A관장이 난처하지 않게 "제가 기분 나쁘지 않으니 괜찮다"며 넘겼다는 게 직원들의 주장이다.

성추행 일러스트. [중앙포토]

성추행 일러스트. [중앙포토]

투서에 따르면 앞서 A관장은 2017년 은행에서 만난 부하 여직원이 자신을 보고 인사하자 여직원의 볼을 꼬집었다. 이를 본 농협 직원이 해당 여직원에게 "(관장님이) 다 큰 어른인 숙녀 볼을 꼬집네. 스킨십을 너무 자연스럽게 한다"고 했다고 한다. 또 A관장이 젊은 여직원에게 "해외 여행 티켓이 있는데 둘이 같이 가지 않겠느냐"며 수차례 물어봤다는 주장도 있다.

직원들은 "고기도 아닌데 기관 내에서 등급이 매겨져 그에 따라 편애가 엄청나게 심하다"는 주장도 했다. 이들은 "직원에 따라 A관장의 말과 태도가 달라 직원들에게 심리적 압박감을 주고 자존감을 하락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016년 직원 간담회에서 A관장이 한 발언을 소개했다. 당시 '기관에 대해 떠오르는 부정적 이미지'를 묻는 말에 '차별'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A관장은 "어떻게 사회복지사가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되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는지 화가 난다"며 "나도 사람이라 차별을 하는 게 아니라 편애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직원들은 "차별과 편애의 차이가 뭐냐"고 했다.

투서에는 A관장이 장애인 일자리사업 보조금으로 직원 점심 식사비를 결제하게 하거나 본인 동문들과 가는 해외여행에 관용차를 사용했다는 주장도 담겼다. 이에 대해 복지관 측은 "투서 내용은 대체로 사실이고, 직원 여러 명이 관장의 행태를 적은 것으로 안다"는 입장이다.

논란이 불거지자 해당 복지관 측은 긴급이사회를 열고 A관장 해임안을 상정했다. A관장은 사직서를 제출했다. A관장은 주변에 "내 말 한마디가 나를 가해자로 지목한 사람들한테 피해가 갈 수 있다"며 "남아 있는 직원들과 법인에 피해가 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김제=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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