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삿대질 받은 北경제간부들 '살떨리는 노동신문 반성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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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심한 질책을 받은 북한의 경제 관계자들이 노동신문을 통해 자아비판에 나섰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열린 8기 2차 전원회의에서 간부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질책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열린 8기 2차 전원회의에서 간부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질책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용덕 북한 내각 국장은 9일 노동신문 ‘지상연단’ 코너의 기고문에서 “경제 부문간 유기적 연계와 협동이 원만히 보장되지 못했다”며 “금속ㆍ전력ㆍ석탄공업ㆍ철도운수를 비롯한 나라의 주요 경제 부문들의 협동이 제대로 되지 않아 생산에서 지장을 받았다”고 썼다. “지난해 금속공업과 석탄공업, 석탄공업과 철도운수 사이의 협동실태만 놓고 봐도 바로 잡아야 할 문제들이 적지 않다”고 하면서다.

내각 국장, 경제현장 관계자 노동신문에 기고문 #노동신문, '지상연단' 코너 신설해 반성문 실어

조 국장은 “책임은 우리 내각 일군(일꾼, 간부)들에게 있다”며 “비상한 각오로 경제적 난관과 애로들을 극복하기 위한 사업을 대담하게 전개했다면 이런 현상들이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부문별, 기업별로 목표달성에 골몰하면서도 중복 투자에 따른 낭비를 초래한 것에 대한 일종의 자아비판이다. 조 국장은 “본위주의를 철저히 타파”하고 “주먹구구식으로, 되는대로 사업하던 그릇된 일본새(업무방식)와 완전히 결별”하겠다며 철저한 계획에 따라 경제정책을 이끌겠다“는 해결책도 언급했다.

노동신문이 9일 '지상연단' 코러는 신설해 내각과 경제현장의 자아비판성 글을 실었다. [노동신문 홈페이지 캡처]

노동신문이 9일 '지상연단' 코러는 신설해 내각과 경제현장의 자아비판성 글을 실었다. [노동신문 홈페이지 캡처]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시정 방안을 내놓은 자아비판에는 경제 현장 관계자들도 가세했다. 최영일 순천지구청년탄광연합기업소 지배인은 “처음에 굴진 소대의 개수와 인원수만 고려하고 이만한 역량이면 연간 굴진 계획을 얼마든지 수행할 수 있다고 장담했었다”며 “올려 보낸 자료들을 통해 아래 실정을 파악하려 했지만,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불 보듯 명백한 것”이라고 털어놨다.

또 김영철 북창화력발전연합기업소 지배인은 감속기를 교체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타박만 했다가 전력 생산에 차질을 빚은 자신의 사례를 들기도 했다. 형식주의와 탁상행정 등 그동안 김 위원장의 지적사항을 고백한 것이다.

노동신문이 ‘지상연단’이라는 코너를 신설한 것으로 파악됨에 따라 이런 ‘반성문’은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전영선 건국대 연구교수는 “북한의 노동신문은 ‘성과’를 소개하며 이를 따라 배우도록 하는 식의 보도를 위주로 했다”며 “북한이 총화(결산회의)에서 자아비판성 언급을 하곤 하지만 노동신문에 글을 실은 건 대단히 이례적으로, 이는 김정은 위원장의 질책이 이어지면서 이를 바로 잡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차원”이라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월 8차 당 대회에 이어 지난달 열린 전원회의에서 경제 간부들을 향해 삿대질하며 계획 수립 과정에서 허풍(과대 목표 설정)이라거나 보수적이라고 강하게 질책했다. 당시 30일 된 노동당 경제부장을 교체하는 극약처방을 통해 간부들을 긴장토록 하는 조치도 했다. 전직 고위 당국자는 “탁상행정과 형식주의는 김일성 시대 때부터 줄곧 나타난 현상”이라며 “김정은 위원장이 최근 경제난을 활용해 내부기강을 확립하고 내부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쥐어짜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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