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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가격, 미덕의 가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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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장강명 소설가

장강명 소설가

“창가에 제라늄 화분이 놓여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들이 놀고 있는 멋진 붉은 벽돌집을 보았어요”라고 말하면 어른들은 그 집을 상상하지 못한다, 어른들에게는 “십만 프랑짜리 집을 보았어요”라고 해야 한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목이고, 나도 그렇다.

카지노가 되어가는 듯한 세상 #시대정신은 ‘깊이 생각하지 마’ #퇴색해가는 성실·근검의 가치

그런데 나는 “십만 프랑짜리”라는 말을 듣고 집의 가치를 가늠하는 일 자체가 잘못됐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건강하고 균형 잡힌 사고를 하는 성인이라면 어떤 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묘사를 듣고 그 가치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하고, 가격을 듣고도 마찬가지 일을 해내야 한다고 본다. 두 눈을 다 떠야 앞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듯, 그런 두 종류 잣대를 모두 지녀야 세계를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한다.

거꾸로 가격을 듣고 가치를 쉽게 가늠할 수 없거나, 시장 가격과 우리가 직관적으로 추정하는 대상의 내재적 가치가 턱없이 동떨어진 사회에서는 건강하고 균형 있게 살 수 없다는 생각도 한다. 창가에 제라늄 화분이 있는 멋진 붉은 벽돌집이 어제는 십만 프랑이었는데 오늘은 오십만 프랑이고, 그 옆에 대충 지은 판잣집 가격은 백만 프랑인 세상에서 제정신으로 살 수 있을까.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그런 현상이 실제로 벌어졌다.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이다. 전기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회고록 『어제의 세계』에서 이 기간에 대해 ‘어떠한 판단의 표준도, 어떠한 가치도 없었다’고 기록한다. 성냥 한 갑 가격이 하루 사이 20배가 뛰었고, 점심식사 한 끼 값이 1년치 집세보다 비쌌다. 40년간 착실하게 저축한 사람은 그야말로 ‘벼락 거지’가 됐다.

사람들의 행동은 당연히 이런 상황의 영향을 받는다. 가치 판단이 가격 변화에 흔들리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화폐 가치가 폭락하자 독일인들이 몰려와 약탈적 쇼핑을 했다. 물건을 갖고 가지 못하게 국경에서 막자 독일인들은 오스트리아에서 진탕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취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상태로 고국으로 돌아갔다. 얼마 뒤 독일에서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하자 이번에는 오스트리아인들이 독일로 몰려가 미친 듯이 맥주를 퍼마셨다.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은 사실 갖가지 미덕들에 대해서까지 마음속으로 은밀하게 값을 매기는 존재다. 무의식중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초인플레이션은 그런 가격표를 교란시켰다. 물건값이 너무 싸니 체통도, 파탄 난 경제로 고생하는 이웃에 대한 연민과 예의도, 심지어 자신의 건강마저도 후순위로 밀렸다. 사물의 가격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미덕의 가격까지 널뛰기한다.

그만큼 극적이지는 않았지만 한국에서도 지난 한 세대 동안 사물의 가격이 상당히 변했고, 그에 따라 한국인들의 가치 판단도 퍽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공산품 가격들이 너무나 싸졌고, 은행에 1000만 원을 맡겨도 1년 이자가 10만 원이 안 된다. 아직도 저축이 미덕인가? 손가락 하얘질 때까지 치약 끝을 힘주어 짜내야 할 이유가 여전히 있나? 근검절약이라는 말을 들어본 지 오래됐다.

근면성실이라는 단어도 퇴색했다. 부동산 투자 없이 근로소득으로 부자가 될 수 있는 시대인가? 월급만으로 아파트 한 채와 경제적 자유를 함께 얻는 게 가능한가? 미덕으로서 노동의 가치는 추락했고, 이제는 교육에 대한 한국인들의 오래된 믿음마저 흔들리는 듯하다. “열심히 공부하면 성공할 수 있나요?” 이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가. 극소수 상위권 학생한테나 통하는 얘기 아닌가.

츠바이크는 초인플레이션 시절 ‘영리하고 요령 있게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과 ‘질주하는 말에 짓밟히는 대신 그 말의 잔등에 올라타는 것’이 중요했다고 썼다. 같은 표현을 지금 한국의 시대정신을 서술하는 데 사용해도 되겠다. 깊이 생각하지 마라.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주식이든 비트코인이든 사라. 안 그러면 짓밟힌다.

도박장에서는 평상심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런데 세상 전체가 카지노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나는 이런 분위기에서 자라나는 미래 세대의 가치관을 진심으로 염려한다. 검소한 생활과 자기 절제, 노동, 꾸준한 노력이 보답 받고 또 찬미의 대상이 되는 사회에서 인간이 비로소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고 믿기에.

이 거품이 언젠가 꺼지면 그때는 또 얼마나 파괴적인 절망과 환멸이 우리를 휩쓸 것인가. 그렇다고 거품을 꺼뜨리지 말고 이대로 놔둬야 하나? 한데 그 선택권이 우리에게 있기는 한가.

장강명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