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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계 vs 반항 … 父戰子戰

중앙일보

입력

공기업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평탄한 직장생활을 해 온 N씨(47). 학교와 직장 생활에 큰 어려움 없이 순탄한 인생을 살아왔지만 자식문제만 생각하면 묘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가 이런 고민에 빠지게 된 것은 얼마전 자신에게 반항하는 사춘기 아들을 혼내주면서부터.

중학교 3학년 아들은 방과후 '학원 순례'에 바빠 늘 밤에야 집에 들어왔다. '벌써부터 저렇게 고달프게 살아야 되나'하는 안쓰러운 생각과 함께 과연 학원공부가 도움은 되는지 궁금해졌다. 어느날 평소처럼 10시 넘어 귀가한 아들을 붙잡고 요즈음 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봤다.

그런데 아들의 반응은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다. 피곤한데 왜 자기를 귀찮게 하느냐는 표정과 함께 '그저 그렇다'는 식으로 건성건성 대답했다.

게다가 휴대전화를 꺼내 어디론가 연신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 아닌가. 순간 화가 치민 N씨는 휴대전화를 낚아챘고, 아들은 대뜸 "돌려달라"며 대들었다.

급기야 아들을 한대 때리게 됐는데, 그 순간 마루에 있던 아내가 재빨리 부자간 갈등에 끼어들었다. 아내는 아들에게 "빨리 방에 들어가라"고 한 뒤 "안 그래도 바쁘고 피곤한 아이한테 왜 시비걸어 싸우느냐"고 자신을 비난했다.

N씨는 졸지에 아들을 괴롭히는 나쁜 아버지로 몰린 것이다. 황당해하는 자신을 뒤로 한 채 아내는 아들을 달래려고 아들 방으로 향했다.

그날부터 N씨는 자신이 과연 뭘 잘못해서 처자식으로부터 이런 대접을 받는지, 앞으로 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고민에 빠졌다. 자신은 학창시절 따뜻한 말 한마디 안 걸어준 아버지에게도 원망 한번 안하고 지내지 않았던가.

우선 N씨는 아들이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독재정권 치하에서 '잘살아 보세'를 노래하며 새마을 운동을 벌이던 때의 학생들 생각과 인터넷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21세기 한국 학생들의 사고방식은 생활 환경만큼이나 판이하게 다르다.

'그때 그 시절' 자녀들은 어려운 상황에서 공부시켜 주는 부모님께 감사했지만 지금 중산층 가정의 적지않은 아이들은 어머니의 강요에 마지 못해 힘든 학원 다니면서 '공부해준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 은혜를 모른다''버릇이 없다''우리 땐 안 그랬는데…'라는 생각으로 자녀를 혼내봤자 부자관계만 점점 더 멀어질 뿐이다.

N씨가 진정으로 좋은 아빠가 되기를 원한다면 먼저 좋은 친구가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못마땅한 일에 대한 충고는 뒤로 미루고 아들의 관심사, 좋아하는 일, 싫어하는 일을 알아내야 한다.

그래야 대화가 가능하고 차츰 아들도 마음의 문을 열어 고민을 의논하는 대상으로 아빠를 떠올리게 된다. 이런 신뢰감이 깔려 있어야 아들은 아버지의 조언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뜻에 따르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러기 위해선 1주일에 한 번, 단 두세 시간만이라도 아들과 함께 운동.게임.영화 감상.서점 방문 등 공유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당신의 지금 심정은 아들이 30년 후에나 이해해줄 것이라고 생각하자. 그리고 오늘 저녁 아들을 불러 이번 주말엔 무엇을 같이 하면 좋을지 물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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