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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는 시민 도우려는 0원 마켓···명품 걸치고 줄선 얌체족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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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광명 그냥 드림 코너 앞에 순서를 기다리는 줄이 늘어서 있다. 심석용 기자

광명 그냥 드림 코너 앞에 순서를 기다리는 줄이 늘어서 있다. 심석용 기자

경기도 광명시의 한 가게 앞 눈 덮인 골목에 오전부터 긴 줄이 생겼다. 혹한에도 50여 명이 줄 서는 이곳은 경기도가 기부받은 식품과 생활용품을 제공하는 ‘경기 먹거리 그냥드림 코너(이하 그냥드림 코너)’다. 1시간째 기다린다던 유모(72)씨는 “라면 등을 준다고 해서 왔는데 오전부터 줄이 길어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아내와 함께 끼니 걱정을 할 정도”라고 했다.

서울·경기 무료마켓 가보니 #쌀·휴지 등 생필품 주민에 제공 #이용자 몰리며 물량 빠르게 소진 #“공짜니까 그냥 줄서는 사람 많아”

그냥드림 코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생계형 범죄 유혹에 흔들릴 수 있는 ‘코로나 장발장’을 위한 지자체들의 예방책이다. 생필품을 무료로 제공해 생계형 범죄가 생기는 것을 막겠다는 구상이다. 생계형 범죄 통계는 정확히 파악되지는 않지만,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전체 범죄 발생 건수는 2018년 같은 기간보다 5.0% 증가했고 이중 사기·절도 등 재산범죄는 11.3% 늘었다.

경기도는 지난달 29일 광명, 성남, 평택 등 도내 푸드마켓 3곳에 그냥드림 코너를 열었다. 푸드마켓은 긴급지원 대상자와 차상위계층에게 월 1회 생필품 5개를 주는 사업이다. 여기에 도민이라면 누구나 식료품, 음료수, 마스크 등 기부 물품 5종(사진)을 주는 그냥 드림 코너를 추가로 만든 것이다. 평일 오전 10시~오후 5시 그냥 드림 코너를 방문해 신분증을 제시하면 기부 물품이 담긴 꾸러미를 받을 수 있다. 푸드마켓 관계자는 “도민만 주는 게 원칙이지만 타 지역 사람도 그냥 돌려보내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경기도에 따르면 하루 평균 100여 명이 몰리면서 기부 물품이 예상보다 빨리 소진될 ‘위기’에 놓였다고 한다.

영등포구민은 영원마켓에서 3만원 상당의 생필품을 받을 수 있다. 심석용 기자

영등포구민은 영원마켓에서 3만원 상당의 생필품을 받을 수 있다. 심석용 기자

서울 영등포구도 지난 18일 관내에 ‘영원(0원)마켓’ 3곳을 열었다. 영등포구민이면 누구나 이름, 주소, 연락처 등을 적은 뒤 생필품 4품목(3만원 상당)을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다. 지원 물품은 쌀·라면 같은 식료품, 휴지·샴푸·비누 같은 생활필수품, 의류, 패션잡화 등이다. 횟수는 1달에 한 번으로 제한하고 구민에게만 물품을 제공한다. 영등포구에 따르면 하루 평균 70명 정도가 이곳을 찾고 있다.

광명시 경기 그냥 먹거리 그냥 드림 코너에서 제공하는 생필품 꾸러미 물품들. 심석용 기자

광명시 경기 그냥 먹거리 그냥 드림 코너에서 제공하는 생필품 꾸러미 물품들. 심석용 기자

그러나 무료 생필품 제공에 대한 실효성 논란도 일고 있다. 지난 25일 광명 그냥드림 코너 앞에는 ‘생활이 정말 어렵고 힘든 분들만 와달라. 정말 도움이 필요한 분들이 물건이 부족해 못 받고 있다’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광명 푸드마켓 관계자는 “줄 선 사람 중 명품으로 화려하게 차려입은 분, 단체로 승용차를 타고 와 물품을 받아가는 분도 꽤 있다”고 지적했다. 도움이 절실한 ‘코로나 장발장’보다는 “무료니까 일단 줄을 서겠다는 이들도 많다”는 것이다. 영원마켓 관계자는 “사업 취지를 설명해도 무조건 받아가겠다는 분들도 있다”며 “구민이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다고 공지해 막기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경기도는 그냥드림 코너를 기존 방식대로 운영한다는 입장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먹을 게 없어서 훔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약간 악용되더라도 오시는 분들이면 일단 다 지급하고 다시 오면 그때 확인해도 된다. 예산이 부족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경기도가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영등포구 관계자도 “최대한 악용을 막기 위해 두 번째 방문자는 주민센터 복지상담을 받도록 했다”며 “물품이 부족할 경우를 대비해 관내 기업 등에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석용·최모란·최은경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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