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알약이 '夜史'를 바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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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출시 첫해 전세계 50개국에서 5천만개 판매. 1999년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수록. 2003년 현재 전 세계에서 1초에 아홉알씩 팔리는 약. '푸른(블루) 다이아몬드'로 불리는 비아그라를 두고 하는 말이다. 시판 이전부터 숱한 화제를 뿌리며 전 세계 2천만명으로 추산되는 '고개숙인 남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더니 출시 5년 만에 이젠 거의 보통명사로 굳어졌다.

지난 20세기의 성(性)혁명은 두 종류의 약이 견인했다. 1차 혁명을 이끈 것은 1950년대에 나온 피임약. 여성에게 임신에 대한 불안을 씻어줬다. 2차 혁명의 주역이 바로 비아그라다. 비아그라(Viagra)는 '활력(Vigor)'을 '나이애가라(Niagara)' 폭포처럼 넘치게 해준다는 의미로 만든 이름. 덕분에 '일나그라''서그라''살리그라''누에그라''동초그라''진생그라' 등 비슷한 이름의 상표들이 특허청에 무더기로 출원되는 등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비아그라가 출시 이전부터 관심을 끈 것은 '출생의 비밀'이 알려지면서부터. 다국적 제약사 파이저가 애초에 목표로 삼은 약물은 협심증 치료제였다. 그러나 임상시험에 응한 협심증 환자들의 '거시기'를 곧추세우면서 발기부전 치료제로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다. 파이저는 비아그라의 성분명인 실데나필이 혈관 확장에 관여하는 세포 내 효소 PDE-5에 작용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98년 3월 미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시판허가를 받아냈다. 89년 실데나필을 합성한 지 9년 만이었다.

파이저는 비아그라를 출시한 98년 전 세계에서 7억7천3백만달러를 거둬들였다. 인제대 의대 민권식 교수는 "음경에 보형물을 끼워넣거나 약물을 주사하는 기존 치료법에 비해 먹는 치료제는 당시 혁명에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파이저는 지난해 17억3천5백만달러어치의 비아그라를 팔아 발매 첫해에 비해 두배 이상의 고성장을 기록했다.

99년 국내에 상륙한 비아그라는 그해 1백8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단숨에 단일의약품 사상 최고 매출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4백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을 견인하고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2000년 2백억원대에 불과하던 국내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은 지난해 5백억원으로 성장, 매년 40~50%의 급성장을 지속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시장이 엄청나게 팽창하면서 경쟁 제약사들도 PDE-5를 조절할수 있는 물질 찾기에 집중했다. 그 결과 릴리는 시알리스(성분명 타다라필)를 찾아냈고, 바이엘과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레비트라(성분명 발데나필)를 손에 쥐었다. 두가지 약 모두 '수퍼 비아그라'로 불리길 원했다. 비아그라가 복용한 지 1시간 후부터 약효가 나타나 4시간 동안 지속되지만 시알리스는 복용 후 16분, 24시간 이상 약효가 지속된다는 사실이 강조됐다. 레비트라는 약효 지속 시간은 4시간으로 짧지만 약효가 나타나는 시간이 15분으로 가장 짧다.

시알리스와 레비트라 모두 올해 초 유럽 등에서 판매를 시작,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은 '3파전' 양상으로 접어들었다. 전 세계 제약시장 정보업체인 IMS헬스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6월 현재 유럽 각국에서 비아그라는 56~85%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며 선두주자의 위치를 지키고 있지만 시알리스(13~30%)와 레비트라(2~14%)의 추격이 만만치 않다. 파이저사가 축구스타 펠레를 발기부전 인식 개선 캠페인의 홍보대사로 임명하자 시알리스는 미국 영화배우 폴 뉴먼을, 레비트라는 60년대 미식축구 스타였던 마이크 디트카를 홍보대사로 내세워 치열한 스타 마케팅전을 펼치고 있다.

국내시장도 3파전이 본격화하고 있다. 시알리스와 레비트라가 다음주 중 시장에 나올 전망이어서 비뇨기과 의사를 대상으로 한 홍보전이 한창이다. 비아그라가 전문의를 대상으로 '발기부전 상담기법 워크숍'을 꾸준히 진행 중인 데 비해 후발 주자들은 비아그라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비아그라의 경우 50㎎ 한알에 10달러(1만2천원) 수준. 주 2회 성생활을 즐긴다고 가정하면 연간 60만원 정도가 소요된다. 빈곤층은 쉽게 감당할 수 없는 가격대여서 세계 각국에서 발기부전 치료제의 보험 적용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독일에서는 설전을 거듭하다 끝내 보험 대상에 들지 못했다. 미국의 일부 주정부는 발기부전 치료제를 보험 대상에 올렸다가 "피임약과 피임기구도 보험 적용을 받게 해 달라"는 여권 옹호론자들의 거센 요구에 시달리기도 했다.

영국을 비롯한 몇몇 서유럽 국가에서 특정질환에 한해 비아그라의 보험이 적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척추 손상 후 나타나는 발기부전'으로 진단돼 처방되면 보험이 적용되는 식이다. 한국에서도 비아그라는 오.남용 우려 의약품으로 분류돼 보험 대상에서 제외됐다. 건강보험공단연구센터 김기영 차장은 "오.남용 우려가 있을 뿐 아니라 진단서를 악용하려는 의사와 환자가 대거 나타날 것이 예상돼 앞으로도 보험 적용을 받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용 비아그라'로 불리는 성욕촉진제 연구도 한창이다. 연령에 따라 19~50%의 여성이 성기능 장애를 경험한 것으로 알려져 시장은 충분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남성은 몸(성기)으로, 여성은 감정(뇌)으로 섹스를 즐기는' 차이 때문에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영국에서 만들어진 아포모르핀이란 물질이 뇌신경 전달물질 가운데 하나인 도파민과 비슷한 기능을 수행, 여성의 성욕을 크게 끌어올렸다는 보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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