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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판타지 속 판타지를 찾아서 36화. 미노타우로스

중앙일보

입력

훌륭한 소를 통제불능의 괴물로 만든 것은

미노타우로스의 전설은 신명을 저버린 폭군이 나올 때, 영웅이 탄생하여 사람들을 구원하리라는 믿음을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16세기 초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작자 미상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

미노타우로스의 전설은 신명을 저버린 폭군이 나올 때, 영웅이 탄생하여 사람들을 구원하리라는 믿음을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16세기 초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작자 미상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

오랜 옛날 지중해 동쪽의 섬에 한 왕국이 있었습니다. 일찍부터 기술 문명을 받아들여 발전해 강대한 군사력으로 주변국을 지배하며 권력을 휘둘렀다고 해요. 그 왕국에 미노스라는 이름의 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이 신의 뜻이라 생각했지만, 이를 입증할 방법이 없었죠. 그래서 그는 신에게 기도했습니다. “신이시여. 내가 왕의 자격이 있다면, 하얀 소를 내려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그 소를 신에게 바쳐 진심을 입증하겠나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정말로 소가 바다에서 걸어 나온 겁니다. 왕은 기뻐했지만, 이윽고 그 소를 신에게 바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민했습니다. 그 소는 이제까지 보았던 소 중에서도 특별히 아름답고 훌륭했거든요. 초특급 소! 뭐 그렇다고 합시다. 고민 끝에 왕은 그 소를 자기가 가지기로 하고, 자신이 가진 소 중에서 가장 훌륭한 소를 신에게 바칩니다. 신과의 약속을 어긴 것이죠.

당연히 신은 분노했고 그에게 저주를 내립니다. 그 저주는 왕비에게 도달하여 왕비가 신이 내린 소에게 반하게 만들었죠. 그 결과, 왕비에게서 소머리를 한 괴물이 태어나고 맙니다. 괴물은 오래지 않아 거대한 체격으로 성장했어요. 머리는 소였지만, 고기를 먹었고 특히 인간을 잡아먹곤 했죠. 미노타우로스는 너무도 난폭해 통제할 수 없는 괴물이었습니다. 왕은 뛰어난 장인 다이달로스에게 미궁을 만들게 하여 괴물을 가둡니다.

그 무렵, 미노스 왕의 아들이 아테네에서 죽었습니다. 크게 분노한 왕은 이에 대한 대가로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요구했죠. 이들은 미노타우로스에게 제물로 바쳐졌어요. 수많은 아테네인을 해친 미노타우로스는 마침내 한 젊은이의 손에 쓰러집니다. 아테네 왕의 아들이자 해신 포세이돈의 아들이란 설이 있는 테세우스였죠. 그는 미노스 왕의 딸인 아리아드네의 도움을 받아 한 손에 실을 쥐고 깊은 미궁으로 향하여 괴물을 물리칩니다. 아테네로 돌아온 그는 왕이 되어 수많은 개혁을 통해 아테네의 영광된 역사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미노타우로스의 전설은 그리스 신화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다이달로스의 미궁이나 테세우스의 용맹, 실을 이용한 미궁 공략처럼 흥미로운 내용이 많고요. 미노타우로스는 판타지 이야기에서 괴물, 또는 소머리 종족으로 차용되어 다양한 작품에서 등장하게 되었죠. 여기까지 보면 판타지의 전형적인 영웅물처럼 보이지만, 사실 여기에는 재미있는 점이 있습니다. 바로 미노스왕이 다스린 크레타섬도, 테세우스의 고향 아테네도 실제로 존재하는 땅이라는 것이죠. 게다가 테세우스는 로마 시대에 나온 『플루타르크 영웅전』을 비롯한 여러 문헌에서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정말로 있었던 일일까요?

물론 미노타우로스라는 괴물이 존재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부여의 금와왕이나 고구려의 주몽(동명성왕)처럼 고대 영웅에 붙은 전설에 불과하겠죠. 하지만 왜 하필 소 머리 괴물일까요. 이 괴물은 왜 미노스 왕의 잘못으로 생겨났을까요? 이에 대해 흥미로운 해석이 있습니다. 미노타우로스는 미노스왕의, 정확히는 크레타섬의 권력의 상징이며, 테세우스 또는 테세우스를 연상케 하는 누군가가 크레타섬, 미노스 문명과 패권을 다투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미노스 문명 유적에서는 소와 관련한 유물이 많이 나옵니다. 농경 문명국가의 하나로서, 소를 토템(부족 또는 씨족과 특별한 혈연관계가 있다고 믿어 신성하게 여기는 특정한 동식물 또는 자연물)으로 숭배했다는 이야기죠. 미노타우로스는 미노스의 힘의 상징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괴물은 ‘왕의 잘못’으로 태어났습니다. 신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욕심을 부린 왕에 의해서 태어난 괴물. 바로 폭군의 상징인 것이죠. 그런 폭군의 상징을 한 젊은이가 스스로 희생할 각오로 미궁으로 향하여 지혜와 용기로서 물리칩니다. 그리고 돌아와 왕이 되어 사람들을 이끕니다. 왕의 아들이라곤 해도 평범한 젊은이가 미궁과 미노타우로스라는 시련을 거쳐 영웅이 되어 왕으로 성장한 것이죠.

고대 사람들은 신의 뜻이 정말로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왕이 되는 것도, 영웅이 되는 것도 모두 신의 뜻. 신명을 따른 결과라 생각했죠. 그것을 따르려면 자신을 희생해야만 했습니다. 때문에 진정한 왕, 진정한 영웅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 이야기는 보여줍니다. 동시에 신명을 저버린 폭군이 나올 때, 신명에 따라 영웅이 탄생하여 사람들을 구원하리라는 믿음도요.

이 이야기에선 악당으로 등장한 소이지만, 사실 소 자체가 나쁜 존재는 아니었어요. 신이 내린 것은 본래 훌륭한 하얀 소였으니까요. 인간, 미노스 왕의 욕심이 그 소를 괴물로 바꾸어 놓은 것이죠. 2021년은 소의 해입니다. 자, 여러분에게 있어 이 해는 어떤 해가 될까요? 다양한 도움이 되는 훌륭한 황소, 아니면 사람을 해치는 괴물 미노타우로스. 모두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글=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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