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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나라 할 일 대신하다 동생 중태…코호트는 죽으란 거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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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환자 치료장비 '에크모'는 인공 폐와 혈액펌프를 통해 환자의 혈액에 산소 공급한 후 체내에 넣어주는 의료장비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사진 분당서울대병원

중증환자 치료장비 '에크모'는 인공 폐와 혈액펌프를 통해 환자의 혈액에 산소 공급한 후 체내에 넣어주는 의료장비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사진 분당서울대병원

“코호트 격리는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냥 다 죽으라는 말인가요.”
동일집단(코호트) 격리된 효플러스요양병원(경기도 부천)의 간호조무사 김모씨의 언니 A씨가 흐느끼며 말했다. 동생 김씨는 “환자를 돌보겠다”며 자발적으로 지난달 11일 요양병원에 남았다. 코로나19 확진자 집단감염으로 병원이 코호트 격리된 직후였다.

약 2주 뒤인 지난달 24일 김씨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세 차례 진행된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으나 교차 감염을 피하지 못한 것이다. 중년의 나이에도 젊은이 못지않게 환자를 살폈던 김씨는 지난달 30일엔 의식을 잃었다고 한다. 현재는 경기도 성남의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인공심폐 장치인 에크모(ECMO) 치료를 받는 위중증 환자다.

“나라가 할 일 대신하다 중태에 빠진 것”   

지난달 12일 오전 부천 효플러스요양병원의 모습. 뉴스1

지난달 12일 오전 부천 효플러스요양병원의 모습. 뉴스1

코호트격리의 끝은 비극이었다. 김씨 언니 A씨는 6일 “너무 억울하다”며 눈물을 참지 못했다. “언제 병원을 나오냐”고 묻는 가족들에게 동생은 매번 “나갈 수 없다. 아직도 병원에 돌볼 어르신이 많다”고 했다고 한다. A씨는 “환자에 대한 병원 이송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서 동생은 어쩔 수 없이 병원에 남았다. 나이 드신 어르신을 누가 책임지겠나”라면서 “나라가 해야 할 일을 동생이 대신한 셈인데 중태에 빠진 동생을 보니 피눈물이 난다”고 했다.

김씨는 격리 기간 “괜찮다”며 상태를 내색하지 않고 버텼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을 당시 그를 진찰한 의사는 “김씨의 정상적인 폐는 손바닥 크기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A씨는 “그렇게 아팠으면서 말 한마디 없이 병원에 남아 환자를 책임졌던 거다”라고 했다. 그는 “동생이 병원 밖으로 못 나온 게 20일이 넘었다. 아무리 병상이 없었어도 그 기간에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못 보냈다는 건 납득이 안 된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어제 생겼느냐. 1년간 뭘 했나”

A씨는 코호트 격리 당시 방역 당국의 지원이 거의 없었다는 주장도 했다. “환자 보느라 잠도 못 자던 직원들에게 식사 지원도 안 해줬다. 나중에는 밥을 직접 해 먹었다고 한다. 너무 속상해 병원 안으로 라면 등을 보냈다”면서다. A씨는 “자가격리하는 사람들에게는 먹을 거도 다 보내주면서 요양병원에 있는 의료진에게 밥조차도 주지 않는 게 말이 되느냐. 의료진이 없었으면 남은 환자들은 다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병원에서만 관련 사망자 48명(6일 기준)이 발생하는 등 요양병원 집단감염이 문제가 되자 정부는 지난 3일 관련 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A씨는 “그 많은 사람을 죽게 해놓고 인제야 우리를 교훈으로 삼는다고 하면 그동안 기본적인 매뉴얼이 없었다는 뜻 아니냐”라고 분노했다. 이어 “코로나19가 12월에 생겼느냐.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뭘 했는가. 우리가 왜 시범 케이스가 되어야 하는지 참담하다”고 말했다.

“코호트는 지옥의 아비규환”

지난달 13일 오후 경기 부천 집단감염이 발생한 한 요양병원 창문이 열려 있다. 뉴시스

지난달 13일 오후 경기 부천 집단감염이 발생한 한 요양병원 창문이 열려 있다. 뉴시스

김씨와 함께 병원을 지켰던 의료진 B씨도 “상황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B씨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요양보호사·간호사 등이 밖으로 나가면서 일손이 부족해졌는데, 그 인원에 대한 적절한 충원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B씨는 “요양병원 특성상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이 많은데 요양보호사 등 관련 인력이 제대로 확충되지 않았다”며 “내보내는 사람이 있었으면 들어오게 하는 사람도 있었어야 한다. 남아있는 환자는 누가 돌보는지에 대한 대책이 없었다”고 말했다. 중앙사고수습본부에서 의료 인력을 파견해주긴 했으나 대부분 환자 기저귀 한 번을 갈아본 적 없는 새내기였다는 게 B씨 주장이다.

B씨는 코호트 격리를 “지옥의 아비규환” “최악의 재난 전시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지원을 요청해도 ‘안 된다’는 답변만 받았다. 공권력이 없는 우리가 외부업체를 상대할 방법은 없었다”고 했다. 이어 “코호트 격리는 사회적 공포감만 조성하고, 그 안에 있는 사람을 완전히 고립시킨다. 죽어서 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병상 부족 문제도 언급했다. 이 병원에서 병상 대기 중 사망한 환자는 27명이다. B씨는 “고령인 환자들이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빠른 이송을 요구했으나 병상이 없어 환자들이 그 상태로 경기도 이천, 심지어 경북 영주·상주까지 멀리 내려가는 게 다반사였다”며 “언론에서는 코로나19 전담 병원 지정 소식이 들려왔지만, 왜 우리 환자들은 그 가까운 병원으로 갈 수 없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A씨와 B씨는 “김씨가 다시 깨어날 수 있도록 힘을 보태달라”고 입을 모았다. A씨는 동생을 병원에 남겨둔 걸 후회한다며 가슴을 쳤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당장 나오라고 했을 거예요. 조금만 빨리 나왔어도, 병원에 신경만 써줬어도 내 동생이 저렇게 누워있는 일은 없었을 텐데…”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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