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계 산 증인' 송규태 소장 화본 142점 온라인에 다 풀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1.05 13:00

업데이트 2021.01.05 18:26

디지털 아카이브로 공개된 '까치호랑이' 화본 중 하나.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디지털 아카이브로 공개된 '까치호랑이' 화본 중 하나.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화수리복원 전문가이자 민화작가인 송규태(86) 화백이 평생 수집·소장해온 민화 화본( 畫本·밑그림) 142점이 온라인에 공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박종관, 이하 예술위)는 송 화백으로부터 기증받은 민화 화본 일체를 아르코예술기록원 한국예술 디지털 아카이브 홈페이지((www.daarts.or.kr)를 통해 공개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개인 소장 민화 화본만을 수집·정리해 디지털로 공개한 첫 사례다. 이로써 민화에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양한 민화 화본의 고화질 이미지를 무료로 다운로드 받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아르코예술기록원 아카이브
산수화, 인물화, 책가도 망라

송 화백은 현대 민화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1950년대 후반 고서화 보수작업을 시작했고, 1967년 민화계의 선각자 조자룡 선생(1926~2000)과 만나며 민화와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이후 1970년대부터 각종 문화재급 고분벽화, 국립중앙박물관·호암미술관 소장 궁중회화, 민화의 수리·모사·복원 일을 해오면서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명성을 쌓았다. 그가 모사해둔 화본만 수천점에 달하고 이번에 자료로 구축한 것은 이중 보존가치가 높은 142점을 추린 것이다.

화본(畫本)이 중요한 민화  

겸재 정선의 금강산도화본. 1990년 경 송규태 화백이 모사한 화본이다.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겸재 정선의 금강산도화본. 1990년 경 송규태 화백이 모사한 화본이다.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민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대량유통을 목적으로 화본(畫本)이 제작된다는 점이다. 민화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지금도 민화 작가들은 다양한 화본을 구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송 화백은 주요 박물관에 소장된 원화에서 직접 뜬 화본을 가장 많이 보관하고 있어 그 자료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예술위는 화본의 시각문화사적 연구가치에 주목해 2018년부터 3년간 송규태 민화 화본 디지털 컬렉션 구축작업을 해왔다. 2018년 화본의 자료적 가치탐색을 위한 연구조사를 한 데 이어 2019년도 실물 화본의 보존처리(배접-복사-디지털화)작업을 했고, 2020년 화본 정보구축 작업을 해왔다.

이번 화본 자료 구축은 도안만 모아 공개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일부 화본의 경우 도안에 원화의 색채, 필획의 두께, 먹의 농담 등 원화복원을 위한 각종 풍성한 정보를 담았다. 화본은 산수화·인물화·문자도·장생도·책가도 등 총 9가지로 분류했다. 예컨대 산수화엔 '금강산도' 화본 4점, '몽유도원도' 화본 1점, '일월부상도' 2점, '일월오봉도' 3점, '평양성도' 2점 등이 포함됐다. 각 도안엔 화본 제작 시기와 화본 크기, 제작 기법도 자세히 소개했다.

금강산도 화본 중 한 점은 현재 리움미술관에 소장된 겸재의 그림을 1990년경에 모사한 것으로, 송 화백은 "겸재의 필력 하나하나를 모사하는 데 매우 힘들었던 작품"이라고 기록했다. 또 이번에 공개한 자료 중에는 김홍도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지만 실물의 행방은 묘연한 '호렵도'를 비롯해 외국으로 유출돼 출처불명이 돼버린 궁중장식화나 민화가 상당수 포함됐다.

송 화백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민화엔 우리 민족 특유의 자유분방함과 해학이 녹아 있다"며 "평생 수집해온 화본을 기술의 도움으로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고 많은 이들과 공유할 수 있게 돼 진심으로 기쁘다"고 전했다.

평생소장해온 화본을 디지털 아카이브로 구축할 수 있게 공개한 송규태 화백.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평생소장해온 화본을 디지털 아카이브로 구축할 수 있게 공개한 송규태 화백.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위는 "송규태 화백의 화본은 한국 민화가 근대 채색화법을 습득한 표구사(그림의 뒷면이나 테두리에 종이 또는 천을 발라서 꾸미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모사 작업을 통해 그 명맥이 이어져 왔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예술위는 전통 채색화 분야 최고의 수리복원 전문가이자 민화계 원로작가로서 보낸 송 화백의 삶과 작업을 2015년 약 10시간 분량으로 구술채록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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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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