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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정인이 학대 방치한 경찰, 공범 아닌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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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생후 16개월 여아(입양 전 이름 정인)가 응급실에서 사망 진단을 받았다. 췌장이 잘린 상태였고, 복부에 출혈이 가득했다. 갈비뼈를 포함해 곳곳에 골절이 있었다. 갈비뼈에는 수개월 전에 부러졌다가 치유된 흔적이 존재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이기도 했다. 몸무게는 8㎏(16개월 여아 평균 10.5㎏)에 불과했다. ‘외력에 의한 복부 손상’으로 사인을 판단한 의사는 학대를 의심하며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수사에서 여아를 입양해 기른 부모가 상습적으로 폭력을 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세 차례 신고받고도 모두 무혐의 종결 #이런 경찰에 힘 실어 주는 게 개혁인가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의해 아이의 참혹한 죽음이 세상에 알려졌다. 어린 생명을 무참히 유린한 양부모에게 시민의 공분이 쏟아진다. 분노는 경찰로도 향한다. 세 차례 학대 의심 신고를 받았으나 번번이 무혐의 종결 처리를 했기 때문이다. 그중 한 번이라도 경찰이 제 역할을 했다면, 단 한 명의 경찰관이라도 탐문과 추적에 나섰다면 정인이는 살 수 있었다. 법적으로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도덕적으론 경찰이 이 천인공노할 범죄의 공범이다.

지난해 5월 정인이가 다닌 어린이집이 학대 의심 신고를 했다. 몸 곳곳의 멍 때문이었다. 경찰은 양부모 변명을 듣고 조사를 멈췄다. 6월에는 이웃 주민이 정인이 혼자 승용차에 오랫동안 남겨진 것을 보고 신고했다. 경찰의 대응은 전과 같았다. 정인이 사망 20일 전에는 소아과 의사가 112에 신고했다. 누군가가 입을 억지로 벌려서 낸 것 같은 상처가 있었고, 지나치게 야위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경찰은 정인이가 입에 염증이 생겨 잘 먹지 못했다는 양부의 주장을 근거로 무혐의 처분으로 사건을 끝냈다.

조사를 담당한 경찰관은 같은 경찰서 소속이지만 세 차례 모두 달랐다. 둘째, 셋째 조사 때 앞서의 신고 이력이 파악됐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경찰은 각 경찰서에 아동·청소년 대상 범죄 전담부서를 만들어 전문적으로 수사한다고 자랑해 왔지만 반복 신고라는 특이점을 알아채는 시스템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경찰은 1, 2차 수사 경찰관에겐 경징계 처분(경고 또는 주의)을 내렸다. 3차 수사 관련자들은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있다. 경찰 고위층에는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문재인 정부의 수사권 재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은 더욱 커졌다. 1차 수사종결권에 대공수사권까지 갖게 됐다. 중요 사건을 맡는 국가수사본부가 경찰 내부에 생겼다. 정부와 여당은 검찰의 권한을 줄이는 권력기관 개혁에 성공했다고, 경찰은 원하던 것을 얻었다고 좋아했다. 그러는 동안 경찰은 권력 실세의 택시기사 폭행에 면죄부를 주고, 아동 학대 조사 같은 귀찮고 폼 안 나는 일에는 손을 놓고 있었다. 과연 이런 경찰을 믿고 더 큰 권한을 줘도 되는가. 국민은 지금 참담한 심경으로 그렇게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