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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안의 네안데르탈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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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정기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김정기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신축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는 희망과 함께 오는 것이어서 기대로 설레지만 마음은 무겁다. 불청객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이다. 구랍 31일로 세계의 코로나 누적 확진자는 8300만여명으로 세계 인구의 1%를 넘어섰고, 목숨을 잃은 이는 180만여 명에 이르렀다. 매일 수만 명의 확진자와 수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영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발생한 변이 바이러스와 현재 진행형인 3차 유행은 공포심을 더욱 높이고 있다. 코로나 이전 세상을 주도하던 참여·개방·혁신의 세계화 흐름이 순식간에 거리두기·언택트·봉쇄·재택의 개인화로 변했다. 사회적·경제적 차원에서 상대적 빈곤과 소외도 심각하다.

인간의 문명 토대는 융합의 힘 #공동체 미래는 독점할 수 없어 #증오 담긴 오만과 확증편향이 #소통·통합의 다리 끊지 말아야

무정한 바이러스가 반면교사로 가르쳐준 것 또한 한둘이 아니다. 우리가 별 감흥 없이 대해오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일깨워 주었다. 가족, 집, 타인, 공동체, 협력의 소중함을 재발견했다. 인간은 예외 없이 누군가의 손을 잡고 걸음마를 배우는 과정을 통해서야 직립하여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을 되돌아보게 됐다. 당연하게 누렸던 일상이 혜택이었으며, 일상이 사라질 때 개인의 생활은 물론이고 인간이 건설한 문명도 사상누각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인간은 피부색, 생각, 민족, 나라는 다를 수 있어도 모두가 호모 사피엔스 종이다. 지구의 최후 승리자인 사피엔스는 농업혁명·인지혁명·산업혁명을 통해 융성하였고, 이제는 신성(神性)을 지니는 존재로 등극을 꿈꾸기에 이르렀다(『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인류의 기원과 진화에 등장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하빌리스, 네안데르탈인과 같은 종은 존재만 했을 뿐, 인류 문명의 모든 영광은 사피엔스의 몫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1997년 사피엔스 유전자의 2%는 네안데르탈인(Homo neanderthalensis)의 것과 동일하다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해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13만~3만 년 전 무렵까지 사피엔스와 이웃사촌으로 살다가 사라진 수수께끼 같은 존재인 네안데르탈인이 ‘사피엔스와 이웃으로 살며 교류하고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낳으며 살았고’, ‘어쩌면 오늘날까지도 우리와 싸우고 사랑하기를 반복하며 함께 살았다’는 것이다(『우리는 모두 2% 네안데르탈인이다』, 우은진·정충원·조혜란). 사피엔스 혼자만이 아니라 네안데르탈인과 융합한 사피엔스가 인류의 문명을 구축한 것이다.

소통카페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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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새해에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도 활발한 융합의 문명이 이루어지기를 바래본다. 특히 당·정·청 집권세력이 야당이나 지지하지 않는 국민을 적폐세력이 아니라 국정의 동반자로 여기는 인식의 전환과 행동의 변화가 필요하다. 여당의 입장을 지지하든 지지하지 아니하든 모두가 대한민국을 함께 떠받치는 핵심이다. 거대 의석수에 의존해서 여당의 입장만 100% 대변하는 일방통행 입법은 입에 달면 삼키고 입에 쓰면 뱉는 교만이다.

검찰 개혁을 사법 장악의 시도로 격하시킨 주무 부처의 장관과 일부 국회의원의 자극적인 말폭탄도 새해에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 그런 무책임한 언행의 그늘에서 1000명이 넘는 코로나 확진자를 낳은 서울동부구치소의 사태가 일어난다.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기본방역수칙도 지켜지지 않았다. 문명국가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코로나 방역에서 세계의 모범국가라고 한 자화자찬이 무색할 뿐이다. 수감자들이 생명보존의 본능에서 창문 틈으로 내민 “살려 주세요”라는 손 글씨가 상징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개혁은 없을 것이다. 개혁이 만들고자 하는 나라는 국민이 평안하게 사는 나라이지 불안함에 떠는 나라가 아니다.

국민과 공동체는 정치적 신념의 인식론적 주장이나 실험의 대상이 아니다. 정치인의 언행이 합리적인 사회적 실천행위에 이르지 못할 때 국민은 살기 힘들어지고 공동체는 혼란스러워지며 비극이 발생한다. 정치인들이 공동체의 미래 운명에 대한 방안을 선점할 수는 있어도 독점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여야를 막론하고 증오의 냄새가 풍기는 강성 정치인의 오만과 팬덤 지지자들의 확증편향이 소통과 협상, 협력과 통합으로 가는 다리를 끊게 해서는 안 된다.

김정기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