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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사태 선언해달라"…도쿄지사에 또 한 방 먹은 스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긴급사태를 재발령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현재 감염확대를 수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대책을 쓰고 싶다."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일본 도쿄도(東京都) 지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국면에서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를 공개 압박하고 나섰다.

도쿄 등 日 수도권 지사들, 긴급사태 선언 요청 #확진자 급증에도 미온적인 스가에 공개 압박 #지지율 하락 스가 곤혹…특조법 개정 서둘러

고이케 유리코(오른쪽) 도쿄도 지사가 2일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재생담당상을 면담한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고이케 유리코(오른쪽) 도쿄도 지사가 2일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재생담당상을 면담한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요미우리 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2일 고이케 지사를 비롯한 가나가와(神奈川)·지바(千葉)·사이타마(埼玉)현 지사 등 수도권 광역자치단체장 4명은 코로나19 문제를 담당하는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경제재생담당상과의 면담에서 긴급사태를 선포해달라고 정부에 공개 요청했다. 지난달 31일에만 도쿄에서 1300명이 넘는 감염자가 나오는 등 코로나19 확산세가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수도권 의료체계가 붕괴 위기에 서 있다는 판단에서다.

형식상으로는 '요청'이지만 사실은 정부에 대해 "빨리 대책을 마련하라"며 압박하고 나선 셈이다. 실제 일본에서는 연말연시 연휴 기간에도 5일 연속 3000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하는 등 감염이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선언해도 안 해도 타격...스가 곤혹  

이날 고이케 지사의 긴급사태 요청은 정부와 사전 조율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요미우리 신문은 "갑작스러운 느낌을 부정할 수 없다"고 전했다.

고이케 지사의 공개 압박에 스가 총리는 곤혹스런 상황에 처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긴급사태 재발령'이 필요하다는 일각의 주장에도 "전문가들의 의견을 참고해 고려하겠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취해 왔다. 지난 4월 긴급사태 선언으로 인한 경제적 충격이 예상보다 훨씬 컸다는 '트라우마' 때문이다.

1일 일본 메이지진구를 찾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1일 일본 메이지진구를 찾은 사람들이 참배를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일본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재임 중이던 작년 4월 7일∼5월 25일 일부 지역 또는 전국에 긴급사태를 발령했다. 그 영향으로 일본 경제가 멈춰 서면서 지난해 2분기(4~6월)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 분기와 비교해 7.8% 급감했다. 긴급사태로 인한 경제손실이 23조1000억 엔(약 244조 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지자체장들의 공개적인 결단 촉구까지 나온 상황에서 정부가 '긴급사태 선언'을 미룰 경우 "감염 확대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스가 총리는 여행장려정책 '고 투 트래블(Go To Travel)' 역시 반대 여론이 80%에 이를 때까지 고집스럽게 끌고 가다 뒤늦게 중단을 선언해 거센 역풍에 시달렸다.

반대로 고이케 지사 등의 요청을 수용해 긴급사태를 선언할 경우, 정부의 그동안 코로나19 대책이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경제적 충격 역시 피할 수 없게 된다. 지지통신은 "요청을 받아들일 경우 내각 지지율 하락으로 발밑이 흔들리고 있는 스가 총리에게 더 큰 타격이 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7월에도 신경전.."고이케 교활" 불만도  

고이케 지사의 돌발적인 요청에 대해 관저에서는 불만도 나오는 상황이다. 아사히 신문은 스가 총리 주변에서 "고이케 씨는 교활하다. 쓸 수 있는 대책을 써보지도 않고 정부에 '긴급사태 선언으로 그물을 쳐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돈다고 전했다.

지난해 9월 23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오른쪽)와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東京都) 지사가 스가 총리 취임 이후 처음으로 도쿄 소재 총리관저에서 만나 회담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지난해 9월 23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오른쪽)와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東京都) 지사가 스가 총리 취임 이후 처음으로 도쿄 소재 총리관저에서 만나 회담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고이케 지사와 스가 총리는 지난 7월 코로나19 2차 확산 당시에도 신경전을 벌인 바 있다. 당시 관방장관이었던 스가 총리가 "코로나19 재확산은 압도적으로 '도쿄 문제'"라며 책임을 도쿄도에 돌리자 고이케 지사는 "정부가 방향키를 잘못 잡고 있다"면서 정부의 '고 투 트래블' 정책 등을 맹공격했다.

일단 스가 정부는 '긴급사태 선언'은 보류한다는 입장이다. 지지통신은 "정부가 긴급 사태 선언보다 코로나19 특별조치법의 개정을 우선한다는 계획"이라고 전했다.

현재 일본에서는 긴급사태 선언이 아니고선 음식점에 영업시간 단축 등을 법률적으로 강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코로나19 특별조치법을 개정해 방역지침에 따르지 않는 업주에게 벌금 등을 부과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한편 NHK에 따르면 2일 일본에선 총 3050명의 코로나19 신규 환자가 확인됐다. 수도 도쿄도에서는 814명이 나왔다.

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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