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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청약 모르고 입주했지만"…해운대 아파트 주민 쫒겨날 처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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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운대 마린시티 전경. 사건과 관련없음. 송봉근 기자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 전경. 사건과 관련없음. 송봉근 기자

불법 청약 사실을 모르고 분양권을 전매한 부산 해운대구 A아파트 38가구 주민이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28일 중앙일보 취재 결과 A아파트 시행사는 주택법 65조를 근거로 ‘불법 청약 분양권은 공급계약 취소되며, 그로 인한 전매 계약도 무효다’라며 분양 취소 절차를 강행하고 있다.

2016년 258가구 중 38가구 불법 청약 분양권 전매 #시행사 “주택법 65조 따라 전매 계약도 무효” 통보 #시민단체 "부정당첨 확인할 수 있는 제도 마련해야"

38가구 계약이 취소되면 시행사는 분양가가 아닌 현 시세대로 재분양할 수 있다. 2016년 5월 분양 당시 105㎡(32평형) 기준 5억원 수준이었던 A아파트 시세는 현재 11억원이 넘는다.

 이 사건은 부산지방경찰청이 지난 15일 불법으로 이 아파트 청약에 당첨된 54명을 검찰에 송치하면서 불거졌다. 경찰은 지난해 11월 아파트 부정 당첨자로 의심되는 이들이 있다는 국토교통부의 수사 의뢰를 받고 1년 가까이 수사를 해왔다.

 수사결과 이들은 4명의 아이를 둔 이혼녀와 위장 결혼하거나, 위조된 임신 진단서나 가족관계증명서 등을 이용해 부양가족 수를 늘리는 수법으로 아파트를 청약했다. 그 결과 54명 중 41명이 당첨됐다. 41명 모두 1억~1억5000만원의 프리미엄을 받고 분양권을 되판 것으로 경찰 수사 결과 확인됐다. 2016년 분양 당시 해운대구는 관광특구 지역이어서 전매 제한이 없었다.

 불법 청약인 줄 모르고 분양권을 산 이들은 “선의의 피해자”라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나섰다. A아파트 258가구 중 38가구가 이에 해당한다. 2016년 6월 A아파트 분양권을 산 다음 2019년 11월 입주한 B씨(37)는 “해운대구청에 불법 청약 분양권인지 모르고 샀다고 소명자료를 제출했는데도 시행사는 일괄 공급 취소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한다”며 “불법을 저질러 거주하는 사람과 불법에 가담하지 않고 모르고 산 저 같은 세대를 똑같이 공급 취소하는 게 공정한가”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B씨는 자신과 똑같은 처지의 신혼부부가 유산을 당한 사연도 전했다. B씨는“분양 취소 절차 가처분 통보를 받은 한 신혼부부는 스트레스로 잠을 못 자고 식사도 못 하는 지경에 이르다 결국 최근 배 속의 아기를 잃게 되는 일을 겪게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부산 해운대 우동에 개장한 한 모델하우스에 시민들이 몰려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사건과 관련없음. 중앙포토

부산 해운대 우동에 개장한 한 모델하우스에 시민들이 몰려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사건과 관련없음. 중앙포토

 해운대구는 중재에 나설 법적 권한이 없다는 입장이다. 해운대구 건축과 관계자는 “피해를 호소하는 입주민에게 소명자료를 받았고, 이를 국토교통부에 전달했다”며 “소명자료가 받아들여질지는 국토교통부와 시행사가 해결할 문제”라고 말했다.

 시행사는 주택법 65조에 따라 분양 취소 절차를 강행하겠다고 한다. 이에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주택법 65조에 따라 불법 청약 분양권 취소 권한은 있지만, 선의의 피해자에 대해 분양권을 유지하라고 시행사에 명령할 권한은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주택법 65조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도한영 부산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정부는 2018년 ‘매수자가 분양권의 부정 당첨을 확인할 수 있는 공시제도를 마련하겠다’고 발표했지만 2년째 감감무소식”이라며 “선의의 피해자를 막기 위해 정부가 제도 보완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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