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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처치] 상비약을 잘 사용하는 법

중앙일보

입력

좀 우습게 들리겠지만 상비약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가장 잘 사용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만큼 가족이 아프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니까.

즉 상비약은 반드시 사용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일단 유사시를 대비한 일종의 가벼운 질병 보험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공짜를 좋아해서 양잿물이라도 공짜라면 마신다는 얘기를 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하물며 제 돈 들여 사다놓은 상비약은 얼마나 아깝겠는가마는, 상비약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사용 법이라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약국에서 상비약을 사가는 의약품 중 가장 인기있는 약 중 하나는 소화제이다. 여러가지 소화제 가운데서도 마시는 물약일 것이다.

추석이나 설같은 명절날이 돌아오면 집집마다 빠짐없이 준비해놓게 되는데, 마시는 소화제를 사가는 주부들의 한결같은 걱정은'식구들이 마시는 소화제를 오며 가며 한 병씩 마치 음료수 마시듯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상비약의 가장 큰 문제점은 쉽게 먹을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오·남용하기 쉽다는 것인데, 우리들이 의약품의 오․남용에서 벗어나 상비약을 부작용없이 사용하기 위해서는다음과 같은 규칙을 잘 지켜야 한다.

1. 설명서를 잘 읽자

약국에서 의약품을 구입하는 사람들 중 몇몇은 그 자리에서 약 포장지와 함께 설명서를 꺼내 읽지도 않고 휴지통에 넣어 버리기도 한다.여러분은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았는지?

현재 우리나라 의약품의 설명서는 한마디로 너무 어렵고 복잡하다.따라서 웬만한 사람들은 자세하게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도 않을 뿐아니라, 때로는 자세하게 읽어도 무슨 말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을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의약품 설명서가 전문가를 대상으로 하여 만들어져 있기 때문인 것이라고 생각된다. 지금 외국에서는 칼라 화보를 곁들여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의약품 설명서가 선보이고 있다고 하니, 외제 의약품 수입 잘하는 우리나라 제약회사들도 곧 시도하리라고 기대해보지만, 그때까지 설명서가 어렵다고 내팽개 칠 것이 아니라, 의약품을 구입한 약국에서 약사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그 내용을 반드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설명서를 보면 붉은 글씨로 많은 내용이 쓰여져 있는데, 그것은 모두그약품의 부작용에 관한 내용이다. 부작용이 하도 많아 그것들만 보면의약품을 사용하기가 겁나지만 자세히 읽어보면 소수의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이므로 자신에게 그내용이 해당되는지를 꼼꼼히 살펴보고 이용하면, 그다지 두려워 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자동차 사고가 겁난다고 걸어만 다닐 것인가, 전자파의 유해가 겁난다고 TV를 안볼 것인가? 의약품은 인간 수명 연장에 가장 중요한 몫을해왔을 정도로 인간에게 꼭 필요한 문명의 이기이므로 무조건 피할 것도 아니고 무턱대고 사용할 것도 아닌, 의사와 약사의 올바른 조언과 환자나 소비자의 현명한 사용이 가장 중한 요건이 되는 생활 필수품이 되어가고 있다.

설명서를 읽으면서 반드시 체크해야 할 사항은 다음과 같다.

․ 적응증--한가지 약이라도 그 적용 범위는 다양하므로,
․ 사용량--약에 따라 사용량이 다르고 나이에 따라 사용량이 다르므로
․ 사용간격--최고의 효과를 위해서는 사용간격을 지키는 것이 가장중요하므로,
․ 사용규정--식전이나 식후 혹은 식간의 규정을 지키는 것은 효과를높이므로,
․ 유효기간--유효기간이 지나면 효력이 떨어지거나 독성이 생기므로,
․ 보관방법--보관 방법에 따라 효력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 부작용--갑자기 발생하는 쇼크등을 대비하여 '한번 보고, 두번 보고, 자꾸만 보자, 설명서를……'이라는 노래라도 만들어 불러야겠다.

2. 상비약 보관은 자물쇠로

일단 준비한 상비약은 구급약 통에 넣고는 반드시 자물쇠로 잠구어야한다. 물론 상비약이 니라 질병의 치료를 위해서 계속 사용하고 있는 약도 함께 넣어야 한다.
특히 어린이가 있는 집에서는 보다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갓 기어 다니거나 걸음마를 시작한 어린이들이라도 그들이 호기심을 발동한 물건에 대해서는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재빠르게 다가가서 손에 쥐고, 일단은 입에 넣는다.

"우리 애가 시럽 반 병을 다 마셨는데 어떻게 해요?" 하면서 거의 울음 섞인 목소리로 약국에 전화를 한 엄마들에게 대처방법을 일러 주면서도, 답답하기 짝이 없게 느껴지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또한 3~6세의 유치원 다닐 나이의 어린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소꼽장난 중 하나가 병원이나 약국 놀이인데, 구급약통에 자물쇠가 잠겨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어른이 별다른 참견을 하지 않는 조건이라면 상비약은 소꼽장난의 소재로 가장 인기있는 품목이 되지 않겠는가? 상비약은 사용할 때나 사용하지 않을 때나 항상 요주의 대상이다.

3. 갑자기 찾아온 두가지 증상

가장 괴로운 증상에 대한 약부터 사용하자. 예를 들어 밤중에 갑자기 열이 나고 기침이 심해졌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해열제와 진해제를 한꺼번에 먹어도 될 것인가? 아니면 하나씩 따로따로 먹어야 할 것인가?

이럴 때의 원칙은 약을 사용해야 하는 증상 내지는 괴로움이 무엇인가를 충분히 확인해서 가장 괴로움이 큰 증상에 대한 약을 우선 사용하고, 증상의 개선상태를 확인한 다음에(적어도 30분~한시간의 간격을 둔 후에) 또 하나의 증상에 대응하는 약을 사용하는 것이 올바른 사용법이다.

상비약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약을 사용할 때도 한꺼번에, 또 중복하여 종류가 다른 두 가지의 약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기본 원칙이다.

4. 용도가 상반되는 약은 동시에 복용하지 말자

부득이하게 여러가지 약을 복용해야 할 때가 있다. 예를들어 구역질이 나면서 배가 아플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는지? 아마도 대부분 제토제와 진경제를 한꺼번에 복용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그럴 경우 제토제는 위장의 움직임을 왕성하게 하려고 하는성질의 약이고, 진경제의 경우는 위장의 과열된 움직임을 막고자 하는약이므로 이둘을 동시에 복용하게 되면 서로 효과가 상실되어 효과가 작아지게 된다.

즉 제토제의 영향이 크면 진경의 목적은 충분히 이루지못하게 되어 계속해서 복통으로 시달림을 받게 되는 것이다. 원래 복통을 가라 앉힌다는 것은 아픔 그 자체를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그렇게할 수 있는 약은 없다), 복부장기의 부조화를 어떻게든 정지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보다 강하게 움직임을 활성화시키는 약(유동을 촉진하는진토제)이 함께 사용되어 긴장감을 더하게 된 경우에는 더욱 아프게 되고 만다.

이와 같은 경우를 보더라도 두 가지 이상의 약을 한꺼번에 복용하는일은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용도가 서로 상반되는 약인지 아닌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으므로 아예 안전하게 행동하는 것이 무리가 없지 않을까? 물론 이 경우에도 가장 괴로운 증상부터 먼저 해결할 수 있도록 약을선택하는 것이 원칙이다.

5. 유효기간이 지난 약을 아까와 하지 말자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무엇이든 버리는 것을 아까와 하셨다. 구멍난 양말은 전구를 끼워서 기워 신으셨고, 어른 옷은 아이옷으로, 아이옷은 행주나 걸레로 이용하는 등 입거리에 대한 절약정신과 이에 못지 않은 먹거리에 대한 애착도 강하셨던 것을 기억할 수 있다.

먹다 남은 밥은 쪄먹고, 볶아 먹고, 죽끓여 먹고 그러다가 상한 밥 마저도 물에 몇번이고 씻어서 먹고, 도저히 먹지 못할 정도로 상한 밥은 풀쑤어서 옷에다 입히셨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지난 3~40년 동안 우리나라의 경제는 많이 발전하였고 생활도 풍요로와져서 그러한 옛날 어머니들의 절약 정신은 찾아보기 어려워졌지만,아직도 약국을 찾는 환자 중 주부들의 소화불량이나 식중독등은 식구들이 남긴 음식을 아까와서 다 먹어치운 후유증으로 인한 경우가 더러 있다는 사실을 경험하면서 그 절약정신이 약하게나마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곤 한다(대부분 약간 이상한 느낌이 있었지만 그냥 먹었다고들 한다).

그런데 아무리 절약정신도 좋지만 상한 음식 버리지 않고 아끼려다탈이나서 고통당하고, 몸 축나고, 또한 경제적으로도 손해를 보게 된다면 절약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낭비가 아니겠는가?

유효기간이 지난 약도 이와 마찬가지의 경우이다. 유효기간이 지난 약은 두가지로 나뉘어 진다. 마치 음식이 시간이 지나면 상하지는 않고 말라버려 못먹게 되는 것이 있는 것처럼 약에도 상하지는 않고 효력만 떨어지는 것도 있다.

또한 음식이 상해버려 독성이 생기는 것처럼 변질하는 약도 있어서 예기치 않는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도 있다(오래되어 변질된 테트라싸이클린에 의해 파코니 증후군이라는 대사 이상의 병이 발생한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구분은 약사와 같은 전문가만이 할 수 있으므로 유효기간을 넘긴 약은 아까와 하지 말고 버리는 것이 현명한 처사이다.

더욱 바람직하기는 유효기한이 다가온 약이나 눈으로 보아 변질이 명백한 경우는 일찌감치 교환해두는 것이리라. 이상과 같이 상비약에 대한 여러 규칙을 잘지킨다면 여러분은 상비약에 대해서 이미 반 약사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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