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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확진 나온 차고지 출근하라" 서울시 버스기사 '돌려막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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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종합환승센터 주변에서 시내버스를 기다리는 시민들. 뉴스1

버스종합환승센터 주변에서 시내버스를 기다리는 시민들. 뉴스1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1014명을 기록한 지난 16일, 서울 시내버스 운전기사 손모(49)씨는 회사로부터 "전날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인근 버스회사 차고지로 출근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서울시가 자가 격리된 운전기사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지원 인력 파견을 지시한 데 따른 조치였다. 손씨는 ‘하루 노선견습’에 더욱 당혹스러웠다. 그는 “확진자 근무지에 온 것만도 불안한 데 처음 운행하는 노선을 하루 연습하고 다음 날부터 정식 운행해야 한다고 해서 너무 황당했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버스 기사도 코로나 확진  

서울의 한 공영차고지에 버스가 주차되어 있다. 연합뉴스

서울의 한 공영차고지에 버스가 주차되어 있다. 연합뉴스

22일 코로나19 3차 대유행 속에 서울시의 ‘코로나19 비상수송대책’에 운전기사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서울시는 “버스 운행 중단으로 인한 시민의 불편을 최소화하겠다”며 비상수송대책을 내놨지만, 버스 기사들은 여러 버스회사에서 인원을 차출해 확진자가 발생한 차고지로 강제 출근시키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맞서고 있다.

서울시 버스노동조합에 따르면 12월 들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서울 시내버스 운전기사는 모두 4명이다. 서울시는 확진자가 나올 때마다 비상수송대책에 따라 확진자가 발생한 운수사에 지원 인력을 보냈다. 적게는 50여명에서 많게는 160여명까지 파견이 이뤄졌다. 확진자는 12월의 경우 4명뿐이지만 확진자와 접촉했다 코로나19 검사 후 자가 격리된 동료 운전기사들의 빈자리를 채우다 보니 파견인력이 늘었다. 서울시는 파견 기사의 경우 서울 내 버스회사 여러 곳에서 차출해 일정 기간 근무시킨 뒤 추가확진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복귀시켰다.

市의 ‘돌려막기’에 기사들 반발

이에대해 서울시 버스노동조합 측은 "서울시의 이른바 ‘돌려막기’ 대응이 운전기사의 코로나 감염 불안을 높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고충욱 태진운수 노조위원장은 “여전히 감염 위험이 남아 있는 차고지에서 파견을 온 여러 회사의 운전기사들이 함께 지내다 보니 연쇄감염에 대한 우려가 크다”며 “차출된 운전기사들은 ‘코로나19에 걸려 돌아와 동료들에게 옮기지 않을까’하는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기사 돌려막기'가 코로나19 확산을 더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지난 3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A운수사의 버스기사 1명은 지난 1일부터 이상 증세를 보였지만 근무를 계속했다. A운수사에 앞서 먼저 확진자가 발생한 운수사로 A운수사의 기사를 파견 보내, 정작 A운수사에는 버스를 운행할 기사가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하루 견습운행은 시민 안전 위협"

운전기사들은 이러한 파견 조치가 안전 운행을 헤쳐 결국 시민의 안전까지 위협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파견지의 노선을 처음 운행하는 운전기사에게 하루 이틀만 견습 운행을 시킨 뒤 곧바로 정식 운행에 투입한다는 방침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서울시가 평상시 노선 견습에 대한 인건비 기준을 1인당 209시간으로 정해놓을 것과도 위배된다.

유재호 서울시 버스노동조합 사무부처장은 “한 달 정도 견습 운행을 해야 해당 노선을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다는 걸 시도 알고 있으면서 아무리 코로나 시국이라고 해도 하루 이틀만 견습 운행한 뒤 실제로 버스를 몰라는 건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비상상황인 만큼 확진자가 나올 경우 버스 운행률을 줄이거나 지하철역 주변의 일부 정류장만 정차하는 거점정류소 형태의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현재 서울시는 운전기사들에게 위험을 전가하고 정작 시민의 안전 문제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 “연쇄감염 문제 된 적 없어”

서울시는 이러한 지원인력 파견에 대해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심리적으로 불안할 수는 있지만 확진자가 나오면 차고지 전체에 방역 조치를 하기 때문에 감염 위험은 없다”며 “현재까지 파견으로 인해 연쇄감염 등의 문제가 발생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그는 또 “노선견습 기간도 기사분들이 운행 경험이 있기 때문에 하루 정도면 충분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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