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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대마진 완화·진단키트 확대…이낙연 입에 뒤통수 맞는 與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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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쏘아 올린 공’이 민주당을 향해 되돌아오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그가 던진 정책 관련 제안이나 말이 구체적 성과 없이 정치권 안팎의 논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잦다.

최근 시중은행의 예대금리차(대출금리와 예금금리의 차이) 완화를 공개 주문했다가 뒷말의 대상이 된 게 대표적이다.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고통 분담에 동참해달라는 차원이었지만, 은행의 주요 수입원인 예대금리차를 줄여 달라는 메시지가 지나친 경영 개입이 될 수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1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1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표의 예대금리차 완화 발언은 지난 16일 코로나19 병상 확보 협력을 위한 금융업계 화상간담회에서 예고 없이 튀어나왔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이 대표가 늘 생각해 오던 것을 그 기회에 꺼내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진 비공개 간담회에선 은행 측 참석자 중 한 명이 “개별 은행 차원보단 은행연합회를 통한 공동 참여 방안을 검토하면 좋겠다”고 역제안하는 등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문제는 간담회가 끝난 뒤였다. 은행들이 이 대표의 주문을 수용하려면 대출금리를 낮춰야 하는데, 이는 급증하는 가계부채를 관리하기 위해 대출금리를 올리거나 한도를 낮추도록 한 금융당국의 정책 방향과 상반된다. 당일 간담회에는 이 대표 개인이 아닌 여당 대표 자격으로 참가했던 것이라 학계에선 “정치권의 직접적인 시장 통제 시도가 결국 정부의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6일 코로나19 병상확보 협력을 위한 금융업계 화상간담회에서 금융업계의 의견을 듣고 있다. 이날 이 대표는 시중은행 임원들에게 은행의 주 수입원인 예대금리차 완화를 당부하는 취지의 발언으로 금융권 일각으로부터 '지나친 경영 개입'이란 비판을 받았다. 오종택 기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6일 코로나19 병상확보 협력을 위한 금융업계 화상간담회에서 금융업계의 의견을 듣고 있다. 이날 이 대표는 시중은행 임원들에게 은행의 주 수입원인 예대금리차 완화를 당부하는 취지의 발언으로 금융권 일각으로부터 '지나친 경영 개입'이란 비판을 받았다. 오종택 기자

이 대표가 코로나19 3차 대유행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제안한 신속 진단키트의 확대 보급도 방역당국의 난색으로 제동이 걸렸다. 이 대표는 지난 14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코로나19 진단검사와 관련해 “누구나 손쉽게 신속진단키트로 1차 자가 검사를 하고 결과에 따라 추가 정밀 검사를 받게 하는 방안을 논의할 시기가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상원 중앙방역대책본부 역학조사분석단장은 사흘 뒤 브리핑에서 “자가 채취는 검체의 신뢰성을 보장할 수 없고, 출혈 등의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 검사 결과를 판독하는 데에도 일정한 훈련이 필요하다”고 반대 견해를 냈다. 일반인의 의료행위를 금지한 의료법 위반이란 지적까지 제기되자 신속 진단키트 보급 논의는 자취를 감췄다.

지난달 17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선 “호텔 방을 주거용으로 바꿔서 전·월세로 내놓는 방안 등이 포함된 부동산 대책이 나올 것”이란 이 대표의 말이 화근이었다. 속출하는 전세난의 해법으로 제시한 것이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에 ‘호텔 거지’라는 신조어가 횡행할 만큼 여론이 나빴다. 이 대표 입장에선 정부의 부동산 공급 대책 중 하나를 선제적으로 강조하려다 화를 자초한 격이 됐다. 당시 야당은 “초등학교 학급회의 수준의 대책” “그저 보여주기식 땜질 처방”(김예령 국민의힘 대변인)이라고 혹평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0월 2일 오후 코로나19 진단키트 제조업체인 충북 청주시 오송읍 에스디바이오센서(주)를 방문, 검사 결과가 10~15분만에 나오는 신속 진단키트로 검체를 채취해 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0월 2일 오후 코로나19 진단키트 제조업체인 충북 청주시 오송읍 에스디바이오센서(주)를 방문, 검사 결과가 10~15분만에 나오는 신속 진단키트로 검체를 채취해 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밖에 지난달 아파트 공시가격 현실화에 따른 재산세 인하 대상을 선별할 때 당의 주장(9억원 이하)은 당·정 엇박자 논란 끝에 정부의 뜻(6억원 이하)에 밀렸고, 지난 9월엔 이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 국민 통신비 2만원 지원 방안을 직접 제안했다가 정부의 반대에 부딪혀 선별 지원으로 선회했다.

당내 반응은 엇갈린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총리 때 보여줬던 안정감은 점점 사라지고, 대선 후보로 발돋움하려는 조급함이 엿보인다”고 진단했다. 반면, 이 대표 측 관계자는 “정책을 결정할 때 당·정 사이 이견이 없다면 그게 민주적인 것이냐”는 반론을 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견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게 건전하고 투명한 논의 구조를 갖췄다는 걸 방증하기도 하지만, 이 대표의 리더십 관점에서 봤을 땐 썩 바람직하다고 볼 순 없다”며 “예상되는 후폭풍 등을 좀 더 꼼꼼히 점검한다고 해서 나쁠 건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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