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빠진 검찰, 당장 1월 검경수사권 조정부터 '산 넘어 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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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이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연합뉴스]

인사협의권과 수사지휘권을 가진 윤석열 검찰총장이 16일 자정부터 2개월간 직무가 정지된다. 윤 총장이 기능을 잃으면서 검찰은 당분간 리더 없이 검찰 수사권조정 시행, 현 정권 핵심 인사수사, 검찰 인사 등의 대사를 치러야 한다. 윤 총장 측이 접수할 정직 2개월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신청을 서울행정법원이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윤 총장의 업무복귀 시기가 결정된다.

당장 1월부터 검경수사권 조정 

17일 검찰에 따르면 당장 내년 1월 1일부터 검경수사권 조정에 따라 경찰에 1차 수사종결권이 주어지고 검사의 직접수사권은 대통령령으로 정한 부패범죄 등 일부로 제한된다. 60년 만에 형사소송법이 개정됨에 따라 검찰과 경찰의 관계가 완전히 바뀌는 것이다. 형사소송법은 개정됐으나, 현장에 어떻게 적용할지는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 검찰과 법무부, 경찰 사이에 수사권 조정 세부 시행 지침과 관련한 이견도 남은 상태다.

검사들은 당장 검사실에서 구체적으로 사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수사관과 검사의 업무 분장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해진 것이 없는 상황에 대해 답답한 심정을 드러냈다. 수도권의 한 부장검사는 "조직개편과 업무분장이 새로 이뤄져야 할 시기"라며 "법무부와 대검이 합심해서 일선 의견을 취합하기도 바쁜데 윤 총장을 사퇴시키는 데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라고 비판했다. 일선의 한 평검사는 "검경수사권조정의 의의에 맞게 윤 총장을 중심으로 철학을 갖고 검찰의 체질이 바뀌어야 한다"며 "조남관 대검 차장이 대행을 맡겠지만, 고유의 권한을 지닌 총장을 완벽하게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봤다.

권력 비리 수사 무력화되나 

윤석열 검찰총장이 10월 29일 오후 대전 지검에서 열린 일선 검사들과 간담회를 마친 뒤 1층 로비서 직원들과 기념촬영하며 웃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윤석열 검찰총장이 10월 29일 오후 대전 지검에서 열린 일선 검사들과 간담회를 마친 뒤 1층 로비서 직원들과 기념촬영하며 웃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월성 원전, 옵티머스·라임 펀드 사건 등 기존 권력 수사의 무력화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감사원의 월성 원전 감사를 앞두고 관련 자료를 삭제한 산업통상자원부 간부 2명이 지난 4일 구속되면서 수사에 속도가 붙은 상황이다. 자료 삭제를 지시한 '윗선'이 누군지를 수사 중인 검찰은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을 곧 소환 조사할 계획이다.

윤 총장은 지난 1일 직무에 복귀한 뒤 이 사건부터 챙겨 구속영장 청구를 승인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24일 윤 총장에 대한 직무집행정지를 발표하자 월성 원전 사건을 수사 중인 대전지검 형사5부(이상현 부장검사)가 산업부 공무원들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요청했다. 그러나 대검이 승인을 계속 보류했다가 윤 총장이 복귀한 직후 분위기가 반전됐다. 구속된 산업부 공무원들에 대한 수사 결과에 따라 검찰의 칼날이 청와대로 향할 수 있는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지만, 윤 총장이 다시 자리를 비우게 되면 수사가 또 흔들릴 수 있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검사 주민철)가 수사 중인 옵티머스 펀드 사건의 향배도 주목된다. 지난 4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실의 부실장 이모 씨가 수사를 받던 도중 사망했다. 이 씨 고발 이후 검찰의 옵티머스 정·관계 로비 의혹 수사가 이 대표를 겨냥하는 쪽으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지만, 이 씨의 사망으로 사실상 수사가 멈춰있다. 검찰 수뇌부가 의지를 갖고 수사를 진척시켜야 하는 상황이지만 윤 총장의 부재로 여의치 않을 전망이다. 라임 펀드 사건에 연루된 의혹이 있는 여권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도 흐지부지될 우려가 있다. 로비 의혹을 받아온 이른바 야당 측 인사(당협위원장)인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은 11일 구속됐지만, 여권 인사들에 대한 수사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학살 인사로 기존 권력 비리 수사팀을 해체할 가능성도 있다. 검찰 내부에서는 빠르면 연말 늦어도 내년 초에는 인사가 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인사협의권을 가진 윤 총장의 부재로 검찰 인사는 사실상 법무부가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선의 검찰 간부는 "윤 총장이 버젓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도 인사 전횡 수준이었는데 부재 시에는 눈치도 안 볼 것"이라며 "인사협의권이 무력화돼 '인사농단'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정유진 기자 jung.y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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