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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3법’ 현실화에 경영계 분통…“기업이 실험 대상인가”

중앙일보

입력

16일 브리핑을 하기 위해 입장하는 조성욱 공정위원장(왼쪽 3번째). 연합뉴스

16일 브리핑을 하기 위해 입장하는 조성욱 공정위원장(왼쪽 3번째). 연합뉴스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공정경제 3법 합동 브리핑’에 대해 경영계 단체들은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때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더 이상 무슨 말씀을 드리겠나. 할 말이 없다”고 한 체념 분위기가 이어졌다.

기업들의 목소리를 대신 밝혀온 경영 단체들이 이날 침묵한 이유는 되돌릴 방법이 없어서다. 법을 다시 바꾸기엔 2024년 총선 결과를 지켜봐야 하고, ‘기업규제 3법’(정부 표현은 공정경제 3법)에 위헌성을 공식 주장하기엔 경영 단체가 당사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경영 단체와 기업 관계자들은 이날 익명을 조건으로 기업규제 3법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 한 경영 단체 관계자는 이날 정부가 ‘3% 룰’에 대해 “기업의 투명성을 더 높일 것”이라고 한 주장에 대해 반박했다. 그는 “정부는 정책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곳인데, 기업을 상대로 실험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3% 룰은 기업이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주주의 의결권을 최대 3%까지만 허용하는 내용이다. 이 때문에 경영계에선 주식회사 제도에 원칙적으로 어긋나는 정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다른 관계자는 “내년 봄 감사위원 선임 관련 이사회ㆍ주주총회가 열릴 때마다 난리가 날 것”이라며 “외국계 펀드는 감사위원 선임 조건을 압박해 실제 경영 기밀을 빼내도 좋고, 이를 방어하기 위한 대주주의 비우호 지분 매입으로 주가가 올라도 좋은 상황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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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규제 3법에서 경영계 요구가 받아들여진 부분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제 유지였다.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해 공정위의 고발이 없으면 수사 착수를 못 하게 한 제도다.

이에 대해 이날 브리핑에서 조성욱 공정위원장은 “공정위의 고발이 충분하지 않다고 보는 경우에는 의무고발요청제도를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경영계는 다시 긴장하는 분위기다.

또 다른 경영계 관계자는 “공정위 입장에서도 자신들의 권한을 유지한 게 다행이겠지만, 후속 논란을 의식해 고발을 남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이 유지됐지만, 충분히 많은 사건을 검찰에 넘기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10대 기업 고위 관계자는 “정부ㆍ여당 사람들을 만나보면 ‘어차피 계속 잘하실 거면서 엄살 부린다’고 얘기하는데 그때마다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수준의 기업 현황을 모르고 하는 얘기 같아서 씁쓸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들 예상대로 기업이나 한국 경제에 아무 악영향이 없었으면 정말 좋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며 “기업은 그저 규제에 맞춰 일하는 방법을 구상하는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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