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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자 추가 구매기회 3번 놓친 트럼프···3월 '백신 절벽' 온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1일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위한 '초고속 작전' 기자회견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지난 11일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위한 '초고속 작전' 기자회견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미국에서 13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이 처음 출시되면서 발병 11개월 만에 바이러스를 끝내기 위한 첫걸음을 뗐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내년 2월 말까지 두달 반 동안 미국인 1억 명을 대상으로 접종을 완료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미, 화이자 백신 출시…이달 2000만 명 접종 #내년 2월까지 누적 1억명에 백신 접종 계획 #화이자, 7·10·11월 백신 추가 구매 제안 #6개 회사 균등투자 방침 이유로 모두 거절 #현재로선 3월부터 6월까지 백신 공백 불가피

하지만 미국이 내년 3월 이후 백신 접종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화이자 백신을 미 행정부가 추가로 구매하는 계약이 아직 성사되지 않았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최근 보도했다. 샤론 라프레니에르 NYT 기자는 지난 10일 NYT 팟캐스트에서 3월부터 6월까지 백신 공백기가 예상된다면서 이를 "백신 절벽"이라고 표현했다.

알렉스 에이자 보건복지부 장관은 11일 CBS뉴스 시사프로그램 '페이스 더 네이션'에 출연해 이달 말까지 2000만 명에게 백신을 접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월 말까지 누적 백신 접종자는 5000만 명, 2월 말까지 1억 명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화이자 백신뿐만 아니라 이번 주 FDA 승인 심사가 열릴 예정인 모더나가 개발한 백신까지 포함한 수치다.

트럼프 행정부는 화이자와 모더나와 각각 백신 1억 도스(한 회 투약분)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두 백신 모두 3~4주 간격을 두고 2차례 접종해야 하므로 백신 2억 도스는 1억 명에게 접종할 수 있는 분량이다.

문제는 미 정부가 화이자와 계약한 1억 도스를 공급받은 뒤 당장 추가로 공급받을 길이 없다는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화이자로부터 백신을 추가로 구매할 기회가 3번이나 있었는데, 모두 거절해 기회를 날렸다고 NYT는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올해 초 미국에서 코로나19가 발병하자 백신 개발과 보급을 신속하게 하기 위한 '초고속 작전'에 착수했다. 유력한 백신 기술 3종류를 선정하고, 각 기술에 도전할 제약회사를 2곳씩 뽑아 모두 6곳과 계약을 맺었다.

동시에 자금을 선(先) 지원해 개발에 속도를 높일 수 있도록 했다. 이 가운데 화이자는 미 정부 자금 지원을 거절했지만, 개발에는 가장 먼저 성공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7월 화이자와 도스당 19.5달러(약 2만1200원)에 모두 1억 도스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화이자가 백신을 개발해 FDA 승인까지 받으면 내년 3월까지 1억 도스를 미 정부에 공급하고, 만약 실패하면 위험은 오롯이 화이자가 지는 조건이었다. 미 정부는 계약금이나 개발자금을 먼저 주지 않아도 됐다. 화이자가 성공하면 백신을 공급받고, 실패해도 정부 손실은 없는 최고 조건이었다고 NYT는 전했다.

그런데도 화이자는 7월과 10월, 11월 모두 세 차례 정부에 백신 추가 구매를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고 NYT는 전했다. 7월 첫 계약을 할 때 화이자 측은 구매 수량을 더 늘릴 것을 제안했고, 10월과 11월에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7월만 해도 임상시험이 진행 중인 단계여서 누가 먼저 개발에 성공할지 알 수 없고, 6개 회사에 균등하게 투자해 위험을 분산한다는 방침을 고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화이자는 선금을 넣지 않아도 됐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방침에서 벗어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고 한다.

10월 들어 트럼프 행정부는 화이자 백신 추가 구매에 관심을 보였지만, 이때는 유럽연합(EU)을 비롯해 다른 지역에서도 화이자와 구매 계약을 협상 중이었고 미국은 추가 계약을 하지 않았다.

화이자 이사회 멤버인 스콧 고틀립 전 FDA 국장에 따르면 화이자는 11월 8일 임상시험 성공을 발표한 뒤에도 미 행정부에 추가 구매를 제안했고 거절당했다. 당시는 전날(7일) 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승리해 대통령 당선을 확정 지으면서 트럼프 대통령 낙선에 관심이 집중되던 때였다.

그로부터 사흘 뒤인 11월 11일 화이자는 EU와 2억 도스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미국이 주저하는 사이 미국으로 올 수 있었던 화이자 백신 물량을 EU가 가져가게 된 셈이다.

미국은 화이자에 3월까지 백신을 추가로 공급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화이자는 6월까지는 공급할 여력이 안 된다는 입장이다. 라프레니에르 기자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면 미국은 코로나19 대응에서 3개월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3월부터 6월까지 백신 공급이 중단되면 경제 정상화가 3개월 늦어지는 셈이다. 그 시간만큼 확진자와 사망자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마스크 쓰기나 사회적 거리 두기를 적극적으로 강제하지 않은 트럼프 행정부의 거의 유일한 코로나19 대책은 백신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신 개발에 '올인'하면서 "백신이 곧 나올 것이고, 백신이 나오면 코로나19가 끝난다"고 했는데, 정작 그 백신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고 NYT는 지적했다.

물론 이번 주 모더나가 FDA 승인을 받으면 물량 공급이 넉넉해질 수 있다. 아스트라제네카·노바백스·존슨앤드존슨 등 다른 제약회사가 내년에 백신 개발에 성공하면 백신 공급에 숨통이 트일 수 있지만, 국가 간 백신 확보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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