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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 사스 임산부의 母情

중앙일보

입력

"나보다는 아기를 살려주세요."

사스에 감염된 뒤 항생제 치료를 거부하다 눈을 감은 34세 여인의 모정(母情)이 홍콩인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그녀가 눈을 감은 신제(新界)지역의 프린세스 마거릿 병원에 수용된 1백여명의 다른 사스 환자들은 그녀의 사망 소식에 펑펑 울었다고 한다.

임신 26주째였던 이 산모는 지난달 26일 사스에 감염돼 병원에 입원한 뒤 줄곧 항생제 치료를 거부해 왔다. "태아보다 산모의 목숨이 더 중요하다"는 의료진의 간곡한 충고에도 불구하고 "항생제를 복용하면 아기가 기형아가 된다"는 경고를 의식했기 때문이었다.

산모의 상태가 악화되자 병원 의료진은 아기라도 살려야 한다는 판단으로 지난 14일 저녁 제왕절개 수술을 단행했다. 산소 호흡기에 의존해 실낱 같은 생명을 유지해왔던 그녀는 수술이 끝난 지 한 시간 만에 눈을 감았다.

남편은 "힘을 내. 우리 아기를 생각해"라고 외쳤지만 그녀는 그렇게 떠나갔다.

아기는 즉각 인큐베이터로 옮겨졌다. 그런데 아기도 뱃속에서 이미 사스에 감염된 것으로 알려져 홍콩인들은 더더욱 슬프다.

앞서 지난 7일 다른 '사스 임신부'도 제왕절개 수술로 7개월짜리 조산아를 분만했다. 그녀의 목숨도 경각을 다투고 있다.

지구촌의 새로운 공포 대상이 된 사스는 이처럼 단란한 가정을 송두리째 빼앗아가고 있다. 이들은 지난달 말 사스가 집단 발생했던 아모이 가든 아파트에서 살다가 어이없게 변을 당했다.

홍콩에선 요즘 정부 당국의 뒤늦은 방역조치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휴교령이나 집단 격리조치, 입출국자 신체검사 등이 모두 한박자 늦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중국 광둥(廣東)성에서 사스 공포가 시작됐던 지난 2월에 단호한 조치를 내렸어야 한다"고 말한다. "영국의 식민지 시절 같았으면 진작 중국과의 교류를 완전 중단했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사스가 확산된 지 한달여 만에 감염자가 1천2백명을 넘어선 홍콩은 요즘 자포자기 심리마저 느껴진다. 감염자는 더 많아졌지만 마스크를 하는 사람은 줄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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