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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떠나는 머스크 “MBA판 된 기업, 회의 좀 그만해”

중앙일보

입력

올해 최고의 해를 보내는 중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AFP=연합뉴스

올해 최고의 해를 보내는 중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AFP=연합뉴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선택은 결국 텍사스였다.

머스크가 8일(현지시간) 텍사스 이전을 공식화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온라인으로 주최한 ‘CEO 연례 정상회의’ 인터뷰에서다. 머스크는 “캘리포니아는 한때는 잘 나갔지만 더이상은 챔피언이 될 수 없는 운동선수 같다”며 2003년 창업 때부터 테슬라의 터전이었던 캘리포니아에 작별을 고했다. 텍사스에서 제2의 장(章)을 열겠다는 취지다. 테슬라는 이와 관련한 공식 입장은 아직 내지 않았다.

미국 경제계에선 텍사스로의 이전이 사실상 절세 목적이라고 보고 있다. 솔직하고 대담한 발언으로도 정평이 난 머스크도 이날 인터뷰에서 “물론 세금 문제도 있긴 하다”고 인정했다. 캘리포니아 주가 부과하는 소득세율은 13%로 미국 전역을 통틀어 가장 높다. 텍사스 주는 개인 소득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하지만 머스크가 텍사스행 짐을 싸기로 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실리콘밸리의 분위기에 환멸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는 “캘리포니아는 무사안일주의에 빠져있어 더 이상 혁신가와는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규제에 대한 불만도 드러냈다. 그는 “각종 규제가 너무 많아서 (실리콘밸리에 계속 있다가는) 냄비 속 개구리가 될 판”이라고 말했다. 냄비 속에서 온도가 서서히 오르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비등점에 가서야 뒤늦게 위기를 깨닫게 될 처지라는 의미다.

캘리포니아 소재 테슬라 공장 밖의 충전소. AP=연합뉴스

캘리포니아 소재 테슬라 공장 밖의 충전소. AP=연합뉴스

머스크의 일갈과 행보는 '탈(脫) 실리콘밸리' 트렌드로 이해할 수 있다. WSJ은 “실리콘밸리의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세율이 높아지는 데다 교통체증 등 삶의 질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테크 기업 임직원들의 불만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캘리포니아와 실리콘밸리 일대의 정치적 색채에 불만을 느끼는 엘리트도 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실리콘밸리의 진보 정치 성향이 부담스러워 떠나겠다는 이들이 늘고 있다”며 “사업과 혁신가의 용기를 꺾고 기회를 박탈하며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게 보수 성향 CEO들의 불만”이라고 WSJ은 보도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WSJ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CEO들은 회이 좀 그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WSJ 캡처]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WSJ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CEO들은 회이 좀 그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WSJ 캡처]

머스크는 이날 인터뷰에서 미국 재계에 대한 날 선 비판도 쏟아냈다. '미국의 MBA화(MBA-ization)'가 진행 중이라고 지적하면서다. 경영대학원 석사인 MBA를 취득한 CEO들이 기업 경영과 관련한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머스크는 “미국 기업들이 MBA판이 될 처지”라며 “이들은 회의만 하고 기업 재무제표에만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파워포인트에 소진하는 시간이 너무 많고, 회의실에서 왜 그리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기업의 본질인 제품의 품질 개선엔 관심이 없고 겉으로 드러나는 숫자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이어 “기업의 본질이 뭔가”라 물으며 “기업은 결국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고, 우리의 존재 이유는 멋진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에 있다”고 강조했다.

테슬라 주가 추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테슬라 주가 추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텍사스행은 머스크가 꿈꾸는 테슬라 제국 건설을 위한 '제2의 창업'에 비견된다. 이를 위해 테슬라는 8일(현지시간) 50억 달러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을 밝혔다. 2020년 최고의 한 해를 보낸 머스크가 또 다른 도약을 위한 행보에 나선 것이다. 테슬라 주가는 연초 최저점 대비 650% 이상 뛰었고, 오는 21일엔 머스크의 꿈인 S&P500 지수 편입도 앞두고 있다. 머스크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를 제치고 세계 2위 부호 자리에 올랐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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