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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전문가 여럿 당했다, 대놓고 코로나 기원 우기는 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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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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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독일 공영방송 ZDF의 프로그램 ‘마르쿠스 란츠’가 방송됐다. 독일 바이러스 전문가인 알렉산더 케쿨레 할레비텐베르크대 교수가 화상으로 연결됐다. 그런데 이때 중국어로 쓰인 SNS 글 이미지가 나왔다.

독일의 유명한 바이러스 전문가인 알렉산더 케쿨레 박사(가운데)가 1일 ZDF 방송에 출연한 모습.[ZDF유튜브 캡처]

독일의 유명한 바이러스 전문가인 알렉산더 케쿨레 박사(가운데)가 1일 ZDF 방송에 출연한 모습.[ZDF유튜브 캡처]

독일 방송에 웬 중국어 SNS?

12월 1일 방송된 독일 공영방송 ZDF의 시사프로그램 마르쿠스 란츠에 소개된 저우펑안의 웨이보.[ZDF유튜브 캡처]

12월 1일 방송된 독일 공영방송 ZDF의 시사프로그램 마르쿠스 란츠에 소개된 저우펑안의 웨이보.[ZDF유튜브 캡처]

글은 중국 시사 평론가 저우펑안(周蓬安)의 웨이보 메시지였다. “케쿨레 교수가 ‘전 세계에 퍼진 코로나19 바이러스의 99.5%가 유전적으로 북부 이탈리아의 변이형(G 변이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했다”가 골자다. 케쿨레 교수가 11월 26일 마르쿠스 란츠에 출연해 한 말이다. 신화통신, CGTN(CCTV의 국제방송), 봉황 TV 등 중국 언론도 케쿨레 교수 발언을 앞다퉈 기사로 썼다. 케쿨레 교수의 얼굴과 “중국은 결백하다”란 헤드라인과 함께.

중국 시사평론가 저우펑안이 11월 30일 자신의 웨이보에 인용한 알렉산더 케쿨레 박사의 인터뷰 내용. 그는 케쿨레 박사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기원이 중국이 아니라고 말했다고 SNS에 전했다.[저우펑안 웨이보 캡처]

중국 시사평론가 저우펑안이 11월 30일 자신의 웨이보에 인용한 알렉산더 케쿨레 박사의 인터뷰 내용. 그는 케쿨레 박사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기원이 중국이 아니라고 말했다고 SNS에 전했다.[저우펑안 웨이보 캡처]

케쿨레 교수의 1일 마르쿠스 란츠 재출연. 이런 중국발 기사 때문이었다. 그는 방송에서 펄쩍 뛰었다. “(중국 기사는) 순전히 프로파간다(선전)”라고 했다. 왜? 11월 26일 인터뷰에서 그가 수시로 “코로나19는 중국에서 기원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중국 CCTV 산하 국제방송인 CGTN이 11월 28일 보도한 알렉산더 케쿨레 박사의 ZDF방송 인터뷰.[CGTN 캡처]

중국 CCTV 산하 국제방송인 CGTN이 11월 28일 보도한 알렉산더 케쿨레 박사의 ZDF방송 인터뷰.[CGTN 캡처]

이탈리아발 변이 바이러스와 별개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시작은 중국이란 점을 명확히 했다는 뜻이다. 케쿨레는 트위터를 통해서도 “중국 언론이 자신의 발언을 의도적으로 왜곡해 이탈리아 G 변이형 출현을 프로파간다(선전)에 이용한다”며 “코로나19는 중국에서 기원했으며 발병 초기에 은폐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케쿨레 박사의 노력은 중국에선 소용없었다. 중국 관영언론이 보도한 케쿨레 교수 인터뷰 영상은 중국 온라인에 퍼져 높은 조회 수를 기록했다. “10억 중국인이 감사해 한다!” “이런 진실을 말하는 과학자는 드물다”와 같은 댓글도 달렸다.

케쿨레 교수만 당한 게 아니다.

마이클 라이언 세계보건기구(WHO) 긴급대응팀장. [로이터=연합뉴스]

마이클 라이언 세계보건기구(WHO) 긴급대응팀장. [로이터=연합뉴스]

마이클 라이언 세계보건기구(WHO) 긴급대응팀장은 최근 “코로나바이러스가 동물에서 인간으로 어떻게 퍼졌는지 조사해야 한다”며 “그건 첫 번째 사례를 발견한 곳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독특한 해석과 ‘필터링(?)’을 통해 다르게 보도했다. 라이언 팀장이 “코로나바이러스는 전 세계에 존재하지만 우한에서 우연히 발견됐다”고 말했다는 거다. ‘첫 번째 사례’란 부분에 과도하게 의미 부여를 한 결과다. 하지만 라이언 팀장은 며칠 뒤 ‘코로나19가 중국 밖에서 처음 출현했을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은 매우 추론적”이라고 답했다.

중국 봉황TV가 알렉산더 케쿨레 박사의 11월 26일 인터뷰 내용을 보도하는 모습.[ZDF유튜브 캡처]

중국 봉황TV가 알렉산더 케쿨레 박사의 11월 26일 인터뷰 내용을 보도하는 모습.[ZDF유튜브 캡처]

왜 코로나19 관련 해외 전문가의 발언이 중국 언론에만 다르게 해석(?)돼 보도될까. 뉴욕타임스(NYT)의 분석이다.

"중국은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시작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기 위해 외국 전문가의 말을 왜곡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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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는 “바이러스의 기원을 모호하게 하기 위해 중국이 거짓을 퍼뜨리고 있다”고 까지 했다.

사실 중국의 이런 주장, 처음이 아니다. 줄곧 이야기해왔다. 과학의 포장을 쓴 미심쩍은 이론을 근거로 말이다. 수입 냉동식품을 통해 코로나바이러스가 전파됐다는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가설이 대표적이다. 글로벌타임스 등 관영언론이 최근에도 보도한다. WHO가 “식품이나 식품 포장지를 통해 코로나19에 감염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밝혔음에도 말이다. 3월에도 자오리젠(趙立堅) 외교부 대변인이 2019년 10월 우한 세계 군인체육대회에 참가한 미군이 코로나바이러스를 퍼뜨렸을 것이라고 근거도 없이 주장했다.

하지만 자신들의 말이 안 통하니 해외 전문가의 발언을 악용할 생각마저 한 거다. NYT는 “중국 정부는 자신의 이론을 세계 무대로 끌어올리기 위해 외국 전문가 발언을 왜곡했다”며 “이를 통해 코로나바이러스가 중국 밖에서 처음 출현했다는 광범위한 합의가 있다고 선전한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왜 그럴까.

[신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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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는 중국의 국제 이미지가 나빠진 것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불안이 반영됐다고 봤다. ‘코로나19 발생 초기 사건을 은폐해 전 세계에 역병을 퍼뜨렸다.’ 이런 국제사회 인식이 공산당 집권 정당성을 위협한다고 본다.

코로나 중국 기원설을 반박해 국제사회의 반중국 인식을 바꾸면 제일 좋다. 안 되더라도 국내의 불만 여론만 잡아도 성공이다. 이게 중국 정부 심산이다. 에린 배것 카터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시진핑 주석이 코로나바이러스의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자신의 통치에 대한 큰 불만 요소 가운데 하나를 덜 수 있게 된다”고 NYT에 말했다.

문제는 이런 행보가 코로나19 실체 규명을 방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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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확산을 차단하고 재출현을 막으려면 최초 전염, 그러니까 동물에서 인간으로 감염된 과정을 찾아야 한다. WHO는 바이러스 기원 조사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중국의 대처는 미온적이다. 조사는 별다른 진전이 없다. NYT는 “중국은 WHO의 기원 조사 과정에 중국 과학자를 주요 부서에 임명하려고 필사적”이라며 “(조사 내용을 흐리려는) 중국 공산당의 진흙탕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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