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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격분시킨 ‘가짜사진’···中외교부는 외교보다 급한게 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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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한 사진을 당장 삭제하라."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트위터에 올린 사진. 합성 사진으로 추정된다.[자오리젠 트위터 캡처]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트위터에 올린 사진. 합성 사진으로 추정된다.[자오리젠 트위터 캡처]

11월 30일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긴급 성명을 발표했다. 표정은 굳어 있었다. 성명 내내 줄곧 ‘가짜 사진’을 지우라고 외쳤다. 호주군을 공격하는 불쾌한 트윗을 지우라고도 했다. 누구에게 요구하는 걸까. 중국 정부다.

모리슨 총리는 왜 화가 났나.

11월 30일 긴급 성명을 발표하는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호주 ABC 방송 유튜브 캡처]

11월 30일 긴급 성명을 발표하는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호주 ABC 방송 유튜브 캡처]

성명 몇 시간 전 트위터에 올라온 글 때문이다. 누구의 트위터냐.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다. 자오 대변인은 이날 오전 사진 하나와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사진에선 호주 국기와 아프가니스탄(아프간) 국기가 깔린 바닥 위에 한 호주군이 웃고 있다. 염소를 안은 아프간 소년에게 흉기를 갖다 대고 있다. “무서워하지 마, 너에게 곧 평화를 줄게”라는 자막이 사진에 달렸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트위터 글. [자오리젠 트위터 캡처]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트위터 글. [자오리젠 트위터 캡처]

자오 대변인은 트윗으로 “우리는 호주 군인들이 아프간 민간인과 죄수들을 살해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며 “이러한 행위를 강하게 규탄하며 합당한 책임을 요구한다”고 적었다. 이제 알 수 있다. 사진이 의미하는 바를. 호주 군인이 아프간 어린 소년을 살해했음을 주장하는 이미지다.

자오 대변인의 글. 정말 없는 일을 말한 건 아니다. 11월 19일 호주에서 충격적 사실이 드러났다. 폴 브레레턴 뉴사우스웨일스 지방법원 판사가 지난 4년간 조사한 ‘브레레턴 보고서’가 공개됐다. 보고서엔 아프간에 파병된 호주 특수부대 SAS 대원들이 저지른 살인 행위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앵거스 캠벨 호주 국방총장(합참의장)이 11월 19일 브레레턴 보고서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EPA=연합뉴스]

앵거스 캠벨 호주 국방총장(합참의장)이 11월 19일 브레레턴 보고서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EPA=연합뉴스]

앵거스 캠벨 호주 국방총장(합참의장)은 “아프간에 파병됐던 전·현직 SAS 대원 25명이 2005년~2016년 23차례에 걸쳐 39명을 불법적으로 살해했다는 신뢰할만한 정보가 보고서에 담겼다”고 전했다. 살인 대상은 생포된 죄수와 농부 등으로 국제법에 따라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이었다. 자오 대변인의 트윗은 이를 비판하는 것이다.

문제는 트윗에 올린 사진이다. 사진은 포토샵으로 합성된 가짜 이미지라는 게 호주 정부 주장이다. 호주 ABC뉴스는 “자오리젠의 트위터 사진은 SAS 부대원들이 탈레반 동조자로 의심되는 14세 아프간 소년 2명을 살해했다는 소문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이런 내용은 브레레턴 조사 보고서에선 입증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모리슨 총리는 “이는 정말로 터무니없고 어떻게도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라며 “중국 정부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그러면서 “즉시 이 게시물을 삭제하고 사과할 것을 중국 정부에 요구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3월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관광객이 마스크를 쓴 채 관광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3월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관광객이 마스크를 쓴 채 관광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중국과 호주의 관계는 불편하다. 호주는 최근 중국으로부터 외교·경제적으로 가장 많이 얻어맞는 나라다. 코로나19 기원과 관련해 중국을 조사해야 한다고 올해 초 주장해서 중국에 찍혔다. 여기에 중국을 겨냥한 쿼드(미국·일본·인도·호주 4개국 안보 연합체)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에 중국은 호주산 와인과 석탄, 목재 등의 수입을 금지하며 ‘경제 보복’을 하고 있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그렇다고 합성 사진을 올리며 다른 나라를 비난할 수 있을까. 누구보다 국제관계를 민감하게 의식하는 외교관, 그것도 조직을 대표하는 입인 외교부 대변인이 말이다. 페니 웡 호주 상원 의원이 “(이번 행위는) 책임감 있고 성숙한 국제 세력의 행동이 아니다. 선동이다”라고 말한 이유다. 모리슨 총리도 “중국과 호주 사이에 긴장이 존재하지만, 이 사안(호주 군인 범죄)을 이렇게 다루면 안 된다”고 말했다.

자오리젠은 왜 그랬을까.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로이터=연합뉴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로이터=연합뉴스]

그의 지난주 발언을 보면 알 수 있다. 자오 대변인은 “(이번 호주 군인의 전쟁범죄는)서방 국가들이 항상 외치는 인권과 자유에 대한 위선을 폭로했다”고 비판했다. 코로나19 이후 미국은 중국의 체제를 비판하며 경제 제재를 했다. 홍콩 보안법 사태 등을 거치며 호주와 영국 등도 중국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시진핑 주석, 아니 중국 공산당은 '집권 정당성'을 위협하는 행동으로 느꼈을 것이다.

2015년에 나온 영화 ‘전랑(戰狼, Wolf Warrior)’은 짙은 애국주의적 색채로 중국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직설적이고 거친 언사를 마다하지 않는 중국 외교관을 중국에선 ‘전랑’이란 뜻의 ‘늑대 전사’로 부른다.[사진 바이두바이커]

2015년에 나온 영화 ‘전랑(戰狼, Wolf Warrior)’은 짙은 애국주의적 색채로 중국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직설적이고 거친 언사를 마다하지 않는 중국 외교관을 중국에선 ‘전랑’이란 뜻의 ‘늑대 전사’로 부른다.[사진 바이두바이커]

이에 대응해 중국은 최근 애국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외세. 정확히 말하면 서방과 대항하는 중국 공산당의 이미지를 구축해 인민의 민심을 하나로 모으는 데 주력한다. 그리고 이런 작업의 선봉에 앞장서는 게 외교관이다. 이른바 ‘늑대 외교’를 통해서다. ‘중국 외교의 최우선이 국내 집권 정당성에 쏠려 있다’(보니 글레이저 CSIS 선임연구원)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자오리젠의 이번 트윗도 역시 애국주의(?)적 행동이다. 중국 정부는 혹시 호주와의 관계가 더 냉각돼도, 정권이 안정된다면 남는 장사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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