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는 타고난다" "아니다 키워진다"

중앙일보

입력

영재의 두뇌는 거의 전적으로 타고 나는 것인가, 아니면 지능은 환경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것인가.

한국뇌과학연구원 이건호 소장은 최근 영재 고교생과 일반 학생들이 지능 검사용 문제를 풀 때 두뇌 활동이 어떻게 다른지 검사한 결과를 내놨다.

실험 대상은 과학고.외국어고에서도 성적이 상위인 학생 30명, 일반 인문계 학교의 중위권 학생 30명이었다. 지능 검사용 문제를 놓고 쉬운 것과 어려운 것을 번갈아 풀게 하면서 뇌의 어떤 부분들이 활성화되는지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로 촬영했다. 찍힌 영상에는 쉬운 문제를 풀 때는 별로 안 쓰이다가 어려운 문제를 풀 때 많이 쓰이는 두뇌의 부분들이 나타난다.

실험 결과 영재들의 경우 어려운 문제를 풀 때 활성화되는 부분이 보통 학생보다 훨씬 넓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건호 소장은 "영재들은 두뇌 활용이 다르다는 것이 선명히 드러난다"면서 "이는 타고난 것"이라고 말했다. 실험 자체를 선천적 지능의 특징만이 드러나도록 설계했다는 것이다. 학습을 하면서 능력이 보태지는 언어나 숫자 표현은 없애고 도형 등만을 이용해 지능과 두뇌활동을 검사했으므로, 결과에는 선천적인 것만 나타난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르면 선천적인 면에서 영재와 보통 학생들이 크게 차이가 난다는 것이 이 실험의 결론이다.
그러나 꼭 그리 볼 수만은 없다는 해석도 있다. 서울대 의대 강은주 박사는 "도형의 관계 등을 알아내는 공간 인식 능력도 훈련에 따라 변한다"고 말한다. 영재들이 도형을 바탕으로 한 지능 검사에서 두뇌를 활발하게 쓴 것이 '두뇌 쓰는 법'을 학습한 결과일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뇌과학자들에 따르면 영재성에는 물려받는 것과 학습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 두가지가 모두 작용한다. 그러나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는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나뉜다.

1990년대 말에는 선천적 요인이 지능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렸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매클런 교수팀은 80세가 넘은 쌍둥이 2백40쌍을 대상으로 일반적인 인식 능력.기억력.언어 능력 등 각종 지능을 테스트했다. 쌍둥이인데 지능에 차이가 나는 것은 환경에 의한 요인이고, 다른 쌍둥이와의 차이는 선천적인 것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일반 인식 능력의 60% 정도, 언어 능력이나 기억력은 50% 정도가 선천적인 요인에 좌우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연구팀은 "지능을 높이는 데 환경이나 경험적 요소가 중요하다면, 80세 이후는 선천적인 영향이 별로 나타나지 않아야 한다"며 "지능은 물려받는 요소가 강하다는 것을 이 실험이 나타내준다"고 발표했다.

반면 동물 실험에서는 환경이 훨씬 중요하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미국 버클리대의 매리언 다이아몬드 교수는 어린 생쥐들을 다른 환경에서 기르면서 두뇌의 변화를 비교했다. 한 무리는 비좁고 놀잇감도 없는 공간에서, 다른 무리는 넓지만 장난감은 없는 데서, 나머지는 넓고 장난감도 많은 환경에서 자라게 했다. 그랬더니 넓은 데서 자란 생쥐의 대뇌 피질은 비좁은 데서 산 생쥐보다 평균 11%나 컸고, 장난감까지 넣어준 경우는 16%나 더 컸다.

지능에 있어 선천적 요인과 후천적 요인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하는 주장은 이처럼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그러나 교육이나 환경 등 후천적으로 좌우되는 부분이 있는 것만은 틀림없으며, 여러가지 놀이를 해보고 정서적으로 늘 따뜻함을 느끼는 등의 분위기에서 자라면 지능이 어느 정도 높아진다는 데 이견이 없다.

미국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태어난 후 30개월 동안 뇌는 세배로 자라고, 열살이 되면 어른 뇌 무게의 90%가 된다.

특히 생후 3~4주, 7~8주, 10~11주 때 뇌가 급격히 성장하고, 만 세살 반에서 네살 반, 여섯살에서 일곱살, 열살에서 열두살, 열네살에서 열여섯살에도 급성장한다. 이렇게 급성장하는 시기에는 감기만 걸려도 뇌가 성장을 잠시 멈춘다는 보고도 있다. 감기가 직접 두뇌에 영향을 미쳤다기보다는, 병으로 밥을 잘 못먹어 양분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뇌가 성장하지 못한 것으로 과학자들은 해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