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여성 속옷'의 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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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사물은 편리함과 필요에 따라 진화한다'는 발명가들의 격언이 있다. 처음엔 불편함을 덜어주기 위해 만들어졌다가 필요한 내용이 하나씩 추가되고 좀더 세련된 디자인이 더해지면서 세상의 모든 물체들은 조금씩 진화해 왔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주변에 놓인 모든 물건들도 아마 그런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양을 갖게 됐을 것이다.

여성들이 매일 착용하는 브래지어의 발명과 진화에도 이 격언은 유용한 것 같다. 20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유럽 부유층 여성들의 복장은 매우 불편했다고 한다. 무릎에서 겨드랑이 밑까지 온 몸을 천으로 칭칭 싸매고, 그 위에 다시 코르셋을 입고 단단한 고리를 걸어두었다고 한다.

코르셋의 불편함을 단번에 해소해준 브래지어의 등장은 여성들에겐 '속옷의 혁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커레스 크러스비는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얼마 전, 비단으로 만들어진 손수건 두장을 구해 실과 바늘로 꿰매어 즉석에서 브래지어를 만들어보았다.

이 브래지어는 가슴을 올려주거나 가슴 모양을 예쁘게 만드는 기능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당시 미혼 여성들에게 유행하던 대로 가슴을 납작하게 눌러주었지만, 그녀가 발명한 브래지어는 매우 편했다. 그녀는 그것을 자신의 친한 친구들에게만 보여주었고 친구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1914년 커레스 크러스비는 변리사를 고용해 특허를 얻고 1백달러로 재봉틀 두 대를 빌린 후 이민온 소녀 두명을 고용해 브래지어를 만들기 시작했다. 브래지어는 날개돋친 듯이 팔렸고, 몇 년만에 뉴욕에 브래지어 전문 매장을 운영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그녀는 그 후 30년 동안 1천5백만달러(약 1백80억원)를 벌어들일 만큼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20년대에 들어서자 러시아에서 이민온 유대인인 아이다 로젠탈이 가슴을 받쳐주는 컵을 삽입한 브래지어를 발명했다. 로젠탈은 브래지어 뒤쪽 등부분에 단추를 달고 주름 장식을 하는 등 편하면서도 맵시있는 브래지어를 개발해 새로운 유행을 만들었다. 지금도 널리 사용되고 있는 A, B, C, D컵이라는 공업적 표준을 만든 것도 그녀의 남편 윌리엄 로젠탈이었다.

브래지어의 진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80년대 중반, 한 브래지어 제조회사는 '형상기억합금'의 원리를 멋지게 이용해 새로운 브래지어를 선보였다. 형상기억합금이란 마음대로 모양을 변형시키더라도 열을 가하면 다시 원래 모양으로 되돌아오는 금속을 말한다. 형상기억합금을 이용해 세탁 후 휘어진 브래지어 라인이 피부에 닿으면 체온으로 인해 처음 모양으로 되돌아오게 만든 것이다.

지난해 5월 영국 레스터의 드 몬트포트대학의 말콤 매코믹 교수팀은 유방암을 진단할 수 있는 브래지어를 개발했다. 유방에 종양이 있으면 그 부위가 전류를 잘 통과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이 브래지어는 미약한 전류를 유방에 흘려보내 발암 여부를 수시로 체크한다고 한다. 바야흐로 브래지어에도 인공지능이 장착되는 시대가 곧 올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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