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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작용 생기면 책임져라" 3%룰 찔끔 수정에 분노한 재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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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법안을 이렇게까지 정치적 처리를 해야 하느냐는 생각에 당혹감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이럴 거면 공청회는 왜 했습니까?”

박용만(65)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8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 회관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상법ㆍ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한 여당의 상임위원회 단독 의결 추진을 강력히 비판했다. 박 회장은 “기업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이렇게까지 서둘러 규제를 통과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와 기업에 대한 파급효과가 큰 법안을 정치적 법안과 동일 선상에서 시급하게 통과시키는 것에 대해 매우 당혹스럽다”며 “지금이라도 개정 법안 상정을 유보하고, 기업들의 의견을 조금 더 반영해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박 회장은 그러면서 "아니길 바라지만 강행될 경우 혹시라도 부작용이 생기거나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기면 이번에 의결한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고도 했다. 발언하는 박 회장의 얼굴은 붉어져 있었다.
국회 통과가 코앞으로 다가온 ‘기업규제 3법(상법ㆍ공정거래법ㆍ금융그룹감독법)’에 대한 경제계의 반대 목소리가 뜨겁다. 국회는 이날 규제 3법 중 상법(법사위) 등의 상임위 단독 의결에 나섰다.

기업규제 3법 관련 긴급 기자간담회 중인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사진 대한상공회의소

기업규제 3법 관련 긴급 기자간담회 중인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사진 대한상공회의소

기업들이 가장 심하게 저항하는 부분은 상법 개정안에 포함된 '3% 룰'이다. 당초 여당 안은 3% 룰은 상장사 감사나 감사위원을 선임할 경우 지배주주나 특수관계인이 주식 3%만 행사하도록 제한했다. 하지만 여당은 상임위 단독 통과에 나서며 이를 조금 완화했다. 사외이사인 감사를 선임할 때는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합산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3% 의결권을 인정한 것이다. 지분 합산에서 개별 의결권 인정으로 풀어준 것이다.

하지만 경제계에선 의결권 인정 한도가 약간 늘어난다고 해서 헤지펀드와 투기 자본의 공격을 근본적으로 막아내긴 힘들다는 반응이다.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기업 이사회에서 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곳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3% 룰은 주주 자본주의라는 경제 근간을 흔드는 초헌법적 규제”라고 말했다.

특히 감사위원은 자료 조사권과 정보 요구권을 가지고 있어, 기업의 핵심 기술이나 전략을 손바닥보듯 들여다볼 수 있다는데 재계는 반발한다. 대기업의 경우 외국인주주 지분이 높다. 평균 40%(2019년 38.1%) 정도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이 50% 정도 결집하면 20%에 가까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용근 경총 부회장은 중앙일보 인터뷰(중앙일보 11월3일자 경제1면)에서 "축구 경기에서 상대방은 11명이 출전하는데 우리는 5명으로 경기장에 나가라는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손경식 경총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김영주 한국무역협회 회장, 강호갑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 정구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회장, 정재송 코스닥협회 회장 등 6개 주요 경제단체장들도 이날 공동입장문을 내고 “법안에 경제계의 핵심 요구 사항이 거의 반영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실상 여당 단독으로, 기습적으로 통과를 추진하는 데 대해 깊은 우려와 당혹스러움을 표한다”고 말했다.

전경련도 이날 ‘기업규제 3법에 대한 경제계 호소문’을 내고 “기업규제 3법이 통과되면 투자와 일자리에 매진해야 할 우리 기업들을 위축시키고,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에 노출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밝혔다.

상법 개정안에 포함된 다중대표소송제(※모회사 주주들이 자회사에 소송을 제기하는 제도)에 대한 우려도 크다. 중소 및 중견기업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어서다. 경총 등은 “중소‧중견기업은 소액으로도 지분을 확보할 수 있고, 법무팀과 같은 대응조직도 미비해 대기업과 비교하면 소송 대응 능력이 거의 전무하다”며 “중소·중견기업이 다중대표소송제의 최대 피해자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경련도 이날 호소문에서 다중대표소송제에 대해 "이해관계자의 무분별한 소송으로 기업 이미지 실추를 감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경제계의 이런 호소에도 불구하고, 여당이 경제계가 원하는 만큼의 ‘재검토’는 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정광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결국 기업을 ‘규제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보는 기본적인 시각이 여당에 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수기ㆍ강기헌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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