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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근 “상대 11명 축구 5명 뛰라고?” 의결권 3%룰 격정 토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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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김용근 경총 부회장이 지난달 28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사옥에서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 부회장은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3% 룰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규제"라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김용근 경총 부회장이 지난달 28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사옥에서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 부회장은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3% 룰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규제"라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축구경기에서 상대방은 11명이 출전하는데 우리는 5명으로 경기장에 나가라는 거다.”

'규제3법' 고쳐달라는 김용근 경총 부회장의 격정 토로

김용근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은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상법 개정안을 축구에 빗댔다.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중앙일보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다. 그는 “3법은 기업 오너, 대기업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한국 경제의 근원적 경쟁력에 관한 문제”라며 “개별 기업들은 절박하지만 강력한 정부·여당 눈치를 보느라 목소리를 못내 경총이 대신 나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은 3% 룰(※상장사 감사나 감사위원을 선임할 경우 지배주주가 주식 3%만 행사하도록 제한하는 법) 등을 담은 상법과 공정거래법, 금융그룹감독법 개정안(소위 '기업규제 3법')을 이번 정기 국회에서 통과시킬 예정이다. 경총과 함께 중기중앙회와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한국산업연합포럼, 코스닥협회 등 7개 단체가 경총과 한목소리로 반대하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여당은 사주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선 의결권 3% 제한 룰이 꼭 필요하고 주장한다.
“기업을 악으로 보는 프레임이다. '대기업은 잘하는데, 총수는 나쁘다, 총수는 전횡을 휘두른다, 총수가 주주가치를 훼손한다' 이런 시각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지금까지 대기업이 이렇게 커 오는데 총수들이 큰 역할을 한 게 사실 아닌가. 불투명한 경영 관행은 기업들 스스로 많이 고쳐 나가고 있다. 3법은 오히려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왜 의결권 3% 제한에 이렇게 예민해하나. 글로벌 스탠더드는 뭔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법이다. 기업 이사회에서 이사를 선임할 때 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곳은 없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그게 글로벌 스탠다드다.”
헤지펀드 등 외부 세력이 감사위원을 적대적인 경쟁자로 선임해 기업의 투자와 신사업을 위협한다는 구체적인 근거가 있나.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이 2019년 현대차 지분 2.9%로 사외이사 추천을 요구한 적이 있는 건 모두 기억할 거다. 엘리엇은 당시 현대차에 수소전지 경쟁사인 캐나다 발라드파워시스템 사 회장 등 3인을 사외이사와 감사위원으로 추천했다. 현대모비스엔 중국 전기차 업체인 파르마 오토모티브의 최고경영자를 추천했다. 당시에는 실패했지만, 상법이 개정돼 합산 3% 룰이 적용됐다면 이들은 원하는 바를 관철했을 거다. 감사위원은 자료 조사권과 정보 요구권을 가지고 있다. 핵심 기술이나 전략을 손바닥보듯 들여다볼 수 있다. 대기업의 경우 외국인주주 지분이 높다. 평균 40%(2019년 38.1%) 정도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이 50% 정도 결집하면 20%에 가까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3%로 의결권을 제한하는 건 그래서 축구로 치면 상대편이 11명인데, 우린 5명으로 경기하라는 것이다.”
상법?감사위원회 관련 ‘3%룰’변천사.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상법?감사위원회 관련 ‘3%룰’변천사.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정부와 여당은 소액주주 권익 보호 등을 내세운다.
“소액주주가 감사위원 제안을 하려면 0.5%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삼성전자는 1조7900억원, SK하이닉스는 3200억원, 네이버는 2400억원이 필요하다. 소액주주 평균 주식 보유 시간이 1.5개월에 불과한데(한국거래소, 2020년 8월까지 기준) 어느 소액주주들이 결집해 감사위원을 제안하나. 결과적으로 헤지펀드에만 좋은 일 시키는 거다.”
지난달 초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경총을 방문했다. 6대 기업 사장단도 이때 함께 이 대표를 만났다.
“기업관련 현안에 대해 6대기업이 여당 대표를 만나 얘기한 사례 자체가 드물다. 기업 입장에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거다. 하지만 개별 기업이 자신들의 애로를 구체적으로 속 시원히 얘기하긴 힘들다. 정부의 눈치를 본다. 기업 경쟁력이 훼손될 것 같은 절박함에 경총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법이 통과되면 한국 경제에 벌어질 일을 구체적으로 얘기해달라.
“일례로 다중대표소송제(※모회사 주주들이 자회사에 소송을 제기하는 제도)가 도입되면 SK바이오팜 같은 회사가 앞으로 나오기 힘들 거다. 대기업은 자회사를 만들어 신사업을 키우는데 앞으론 지분 100% 분사를 못 한다. 다중대표소송제를 피하려면 지분을 40~50%로 낮춰야 한다. 지금도 굴지의 국내 기업들은 신사업 투자를 위해 해외 유수 기업과 해외에다 합작법인을 만드는데, 기업 규제 법안들이 통과되면 신사업이나 필수 분야가 아니라도 해외로 들고 나가 합작법인을 만드는 일이 빈번해질 거다. 좋은 일자리,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일자리를 해외에 뺏기게 되는 거다.”
여당 내부에서 변화의 조짐이 보이나.
“여권에서도 3% 룰과 감사위원 선임에 대한 우리 설명을 듣고, '마치 국무회의에 야권 인사가 들어와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것과 유사하다'는 공감대를 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석에서 기업들에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다가도 공식적으론 '예외 없는 통과'만 강조한다. 참 안타깝다. 구체적인 법안 아이디어를 내면 기업들의 엄살이라 여기지 말고 살펴봐 달라.”
김용근 경총 부회장이 지난달 28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사옥에서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 부회장은 "3% 룰이 통과되면 법무팀과 같은 대응조직이 없는 중소 및 중견기업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김용근 경총 부회장이 지난달 28일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사옥에서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 부회장은 "3% 룰이 통과되면 법무팀과 같은 대응조직이 없는 중소 및 중견기업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김 부회장은 “대기업 사주의 전횡을 막겠다는 철학을 가진 법이나, 이들 법을 밀어붙이면 중소 및 중견기업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며 “중견기업의 불투명성이 높아지고 거꾸로 갈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중소 및 중견기업이 더 큰 피해를 볼 것이라 보는 이유는 뭔가.
“현재 법상 감사위원회 설치 의무 기업은 자산 총액 2조원 이상으로 127개사다. 그보다 자산 규모가 작은 상장사 가운데 법적 강제 요인이 없어도 자발적으로 감사위원회를 설치한 곳은 383개사인데 개정안이 통과되면 동일한 규제가 적용된다. 그럼 아마 이들 383개사는 자발적으로 설치한 감사위원회를 없애지 않겠나. 오히려 더 불투명해지게 되는 것이다. 중소‧중견기업은 소액으로도 지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법무팀과 같은 대응조직도 미비해 대기업과 비교하면 소송 대응 능력이 거의 전무하다. 다중대표소송제도 중소·중견기업이 최대 피해자가 될 거다. 상법상 자회사가 있는 모회사는 1114개인데 전체 중 86.1%가 중소·중견기업 소속이다. ”
국민 다수가 규제 3법에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기업 경영과 연관된 법이고 워낙 복잡해 여론전에서도 밀리는 모양새다.
“반기업 정서가 기본에 깔려 있어 개별 기업에서 대응하기 곤혹스러운 부분이 많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국가 경쟁력을 생각해 달라. 한국은 코로나 19 타격을 그나마 덜 받은 국가 중 하나다. K-방역이 잘했고, 대기업들이 잘 버티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 19가 끝나면 글로벌 기업 간 각축전이 본격적으로 벌어질 건데 이런 법안을 통과시키고 기업의 손발을 묶으면 한국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김 부회장은 “규제 법안들은 결국 일자리 문제와 연결된다”며 “삼성전자나 현대기아차 같은 특정 기업보다 ‘메이드 인 코리아’가 중요한데 한국은 생산국가보다 소비국가로 변화하고 있다”며 “3법이 통과되면 안타깝게도 그런 현상이 빨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제단체 간 이견도 보인다. 
“세부적인 대응 방법에서 서로 다른 입장차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달 하순 국회 상임위 수준에서 3법이 통과될 것으로 본다. 이제 막판이니 다 같이 힘을 모을 수 있지 않을까. 경총과 함께 하는 7개 단체는 물론 대한상의, 전경련 등과도 논의를 거쳐 구체적인 대안을 가지고 국회 설득 작업에 나설 예정이다.”

경총은 정부·여당이 공정경제 3법으로 부르는 규제3법을 '경영제도 3법'이란 중립적인 표현으로 부르기로 했다. 정부·여당과 법안 문구를 놓고 본격적인 협상을 해야 하는 마당에 상대방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는 고민이 담긴 선택이다. 김 부회장은 “아예 말도 꺼내지 말라는 여당도 조금씩 우리 말에 귀를 기울이는 등 '틈이 조금씩 보인다'며 제발 이번 사안을 한국 경제 살리기의 측면에서 봐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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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 사람=최지영 산업 부디렉터, 정리=강기헌 기자

☞김용근(65)경총 부회장=23회 행정고시 출신. 상공부ㆍ산업자원부에서 공무원 생활 대부분을 한 대표적 산업 관료. 산자부 산업정책본부장(2007~2008년)을 끝으로 공직을 떠나 한국기술진흥원 원장(2009~2013),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2013~2018) 등 다양한 기관ㆍ단체를 이끌어왔다. 정부와 기업이 함께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키우는 ‘산업 정책의 중요성’을 믿는 신봉자. 자동차산업협회장 때 한국 노사관계의 문제점을 현장에서 깨닫고 2018년부터 경총 부회장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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