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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보고 시험, 점심은 환자식…수능 마친 5명 병실로 돌아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둔 2일 서울의료원 코로나19 종합상황실에 설치된 확진 수험생을 위한 고사장 병실 CCTV 모니터에 책상을 설치하는 의료진의 모습이 보인다. 연합뉴스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둔 2일 서울의료원 코로나19 종합상황실에 설치된 확진 수험생을 위한 고사장 병실 CCTV 모니터에 책상을 설치하는 의료진의 모습이 보인다. 연합뉴스

똑같은 시험 시간에 똑같은 문제지, 도시락 점심…. 3일 전국 42만여명이 응시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은 모든 이에게 동일한 규정이 적용됐다. 혹시 모를 '공정성' 시비를 배제하기 위해서다. 시험장에 들어가는 인원도 교실당 24명으로 정해져 있다.

서울의료원에서 살펴본 확진 수험생 #입실 시간 동일, 화장실은 병실 안에 #5인실에 책상 4개, 문 나가면 '실격' #별 이상 없이 시험 마치고 병실 복귀

하지만 조금 다른 '특별한' 규칙이 적용되는 수험생이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들이다. 바이러스 전파 위험 때문에 일반 시험장에 갈 수 없는 이들은 부득이하게 지정된 장소에서 수능을 쳤다. 교육부에 따르면 병원·생활치료센터에서 시험을 본 수험생은 45명(4명은 다른 질병)이다.

서울에선 서울의료원, 남산유스호스텔 두 곳에 시험 장소가 설치됐다. 서울의료원에 마련된 별도의 음압 병실에서 시험을 친 수험생은 5명이다. 수능 전날까지만 해도 4명이었지만, 밤사이 한 명이 추가로 이송됐다고 한다. 병원에서 수능일을 맞이한 이들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둔 2일 서울의료원 코로나19 종합상황실에서 격리 환자들을 상대하는 의료진이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둔 2일 서울의료원 코로나19 종합상황실에서 격리 환자들을 상대하는 의료진이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일반 시험장과 공통점은

시험장 입실 시간은 똑같다. 8시 10분까지 시험장으로 마련된 격리 병실에 들어가야 한다. 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수능을 포기한 것으로 간주한다.

다만 원래 입원해있던 병실에서 시험장 병실까지 이동할 때는 의료진이나 보조인력의 도움을 받게 된다. 서울의료원 관계자는 "돌발상황 없이 수험생 5명 모두 병실 시험장에 잘 입실했다"고 전했다. 수험생 복장은 평소 입던 옷에 마스크만 쓰는 식이다. 이 역시 다를 바 없다.

그 후에 이어지는 영역별 시험시간도 모두 동일하다. 레벨D 방호복을 입은 감독관의 감독하에 시험 절차가 진행된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는 병실 내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하면 된다. 그 외엔 병실 내에서 편하게 쉬거나 긴장을 풀면 된다.

하지만 디테일로 들어가면 몇몇 차이점이 보인다. 다른 확진자 시험장은 다를 수 있지만, 서울의료원 시험장에서 나타난 특징들을 정리했다.

① 4인 1실과 면벽 시험
서울의료원은 교육 당국의 지침에 따라 원래 5인실이던 12층 병실을 비우고 임시 시험장으로 꾸렸다. 이곳은 음압기가 설치된 격리병실이다. 불투명 가림막이 설치된 수험생용 책상 4개를 양쪽 벽으로 2개씩 각각 배치했다.

이에 따라 확진 수험생들은 벽을 보고 시험을 치게 된다. 앞으로 바라보는 '일자' 형태로 평행하게 배치된 일반 시험장과는 다른 풍경이다. 서울의료원은 기존에 입원한 4명에 맞춰서 4인 1실로 임시 시험장을 꾸렸지만, 한 명이 추가되면서 똑같은 구조의 시험장을 추가로 마련했다고 한다. 한 병실에선 4명, 나머지 병실에선 1명만 입실했다.

② 점심 배식
2교시와 3교시 사이엔 점심시간 50분이 있다. 원래라면 집에서 싸주거나 음식점에서 구매한 도시락을 싸 와서 먹게 된다. 하지만 입원해있는 확진 수험생들은 그럴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서울의료원에선 일반 환자들에게 주는 식사와 마찬가지로 수험생에게 별도의 환자용 '배식'을 진행한다.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이틀 앞둔 1일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내 코로나19 상황실에서 의료진들이 근무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이틀 앞둔 1일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내 코로나19 상황실에서 의료진들이 근무하고 있다. 연합뉴스

③ 문 열고 나가면 '실격'
수험생이 시험장으로 마련된 병실 문을 나서는 순간 '실격'처리된다. 감염 우려 때문이다. 이들은 수능 일정이 공식적으로 끝나야만 자신의 병실로 돌아갈 수 있다. 수능을 진행한 음압 병실이 '시험장', 원래 입원해있던 병실이 '집'인 셈이다.

④ 의료진의 상시 모니터링
코로나19 확진 환자들을 전담 치료하는 서울의료원에는 상황실이 있다. 폐쇄회로(CC)TV가 설치된 이곳에선 환자들이 입원한 병실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혹여나 발생할 수 있는 위급 상황을 체크하기 위해서다.

확진 수험생에 대한 모니터링 역시 동일하게 진행된다. 수능을 위해 따로 배치된 의사·간호사가 CCTV로 시험장 상황을 계속 확인한다. 수험생에게 이상 증세가 나타나면 곧바로 이들 의료진이 투입된다. 서울의료원 관계자는 "시험 치는 학생들이 중증은 아니기 때문에 치료 목적보다는 비상상황에 대비하는 측면이 크다"고 설명했다.

'팬더믹' 수능 준비 처음, 많은 노력 담겨 

병실에서 수능 시험이 진행된 사례는 종종 있다. 하지만 유례없는 '팬더믹'(대유행) 속에 병원 내 수능이 대규모로 치러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확진 수험생의 답안지와 시험지는 채점 후 모두 폐기할 정도로 '감염 예방'이 최우선이다.

이 때문에 시험장 마련과 자리 배치, 감독관 동선까지 하나하나 챙겨야 하는 교육 당국과 의료진의 부담은 클 수 밖에 없다. 차질없는 확진자 수능 시험을 준비하려 많은 이들이 노력했다는 의미다. 더군다나 서울의료원은 몇달째 코로나19 확진 환자 치료에 집중하고 있어 구성원의 피로도가 더 높다고 한다.

서울의료원 관계자는 "수능 직전까지도 자리 배치 등을 계속 조정했다. 감독관이 방호복을 입고 벗는 것도 사전 교육하긴 했지만 감염 우려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밝혔다.

그렇게 길고 긴 하루가 지나갔다. 많은 이의 노력 덕분에 서울의료원에서 수능을 본 5명은 별 이상 없이 시험을 마무리했다. 그리고는 집 대신 자신의 병실로 돌아갔다. 서울의료원 관계자는 "의료진이 계속 시험장을 주시했는데 별 사고 없이 수능이 마무리돼 다행이다. 다들 좋은 결과가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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