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마켓컬리가 파는 ‘4번 달걀’은 다르다는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4면

마켓컬리가 판매를 시작한 스마트팜 양계장 . [마켓컬리 홈페이지 캡처]

마켓컬리가 판매를 시작한 스마트팜 양계장 . [마켓컬리 홈페이지 캡처]

온라인 쇼핑몰 마켓컬리가 사육공간이 좁은 ‘4번 달걀’을 판매하면서 “닭이 스트레스에 시달리지 않는 환경”이라고 밝혀 동물보호단체 등의 비판을 받고 있다.

닭을 A4용지보다 좁은 데서 사육 #날갯짓·모래목욕 다 못하는데 #“스트레스 시달리지 않는 환경” #동물보호단체 “착한 소비 역행”

지난해부터 모든 달걀 껍질에는 총 10자리 숫자가 표시된다. 산란일자 4자리 숫자를 포함해 생산자고유번호(5자리), 사육환경번호(1자리) 순이다. 이 중 맨 끝 숫자는 닭의 사육환경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가 알 수 있도록 사육환경번호를 표시한다. 번호는 1~4번까지 있는데, 1번은 방목장에서 닭이 자유롭게 다니도록 키우는 사육방식(방사)이고, 2번은 케이지와 축사를 자유롭게 다니도록 키우는 사육방식(평사)을 말한다.

3번·4번은 케이지 안에서 닭을 키우는 방식이다. 3번은 비교적 넓은 면적(0.075㎡/마리)의 ‘개선 케이지’, 4번은 면적이 0.05㎡/마리인 ‘기존 케이지’를 뜻한다. 4번의 경우 A4 용지 1장(0.062㎡)보다 좁은 공간에 닭을 가둬놓고 달걀을 생산한다.

마켓컬리는 최근 스마트팜을 운영하는 한 양계업체에서 생산하는 ‘4번 달걀’의 판매·유통을 시작했다. 스마트팜은 사람 대신 컴퓨터가 닭을 사육·관리하는 무인 양계장을 말한다. 그동안 마켓컬리는 좁은 케이지에서 닭을 기르는 농가에서 생산된 사육환경번호 4번은 원칙적으로 판매하지 않았다.

마켓컬리의 스마트팜 ‘4번 달걀’

마켓컬리의 스마트팜 ‘4번 달걀’

하지만 최근 마켓컬리는 “스마트팜에서 안전한 달걀의 가능성을 봤다”며 4번 달걀 판매를 알리는 내용을 공식 홈페이지와 유튜브 채널에 게시했다. 마켓컬리 측은 “온도와 습도, 일조량, 이산화탄소, 암모니아 농도 등을 슈퍼컴퓨터로 체계적으로 관리한다”며 “닭이 스트레스와 질병에 시달리지 않고 건강해 살충제나 항생제를 투여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비위생적이고 사육 환경이 열악한 기존 케이지와 달리 엄격하게 관리하기 때문에 닭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부 소비자와 동물단체들은 “친환경·유기농 상품으로 착한 소비를 장려했던 마켓컬리가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동물보호단체인 동물자유연대는 “4번 사육환경에서는 날갯짓, 모래목욕, 횃대 오르기 등의 본능적 태도를 모두 제한당한 채 케이지에 갇히기 때문에 암탉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고 주장했다.

‘유럽에서도 스마트팜을 많이 쓴다’는 마켓컬리 측의 설명에 대해 동물자유연대 측은 “온도와 습도 등이 조절된다는 스마트팜일지라도 4번 사육환경은 유럽에서 허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유럽연합(EU)은 2012년부터 최소 면적을 지키지 않은 밀집 사육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맥도날드, 월마트 등 글로벌 기업들도 2025년까지 공급받는 달걀을 모두 동물복지란으로 교체하는 ‘2025 케이지 프리 선언’에 동참했다. 국내에서는 2018년 풀무원, 2019년 스타벅스코리아가 케이지 프리를 선언했다.

이에 대해 마켓컬리 측은 “잘 관리된 스마트팜에서 생산하는 4번 달걀을 판매하는 이유를 소비자에게 설명한다는 게 홍보로 비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업체 측은 “(동물복지 닭은) 전체 사육두수의 2.3%밖에 안 되지만 마켓컬리의 동물복지달걀(1~2번) 판매 비중은 75%를 차지할 정도로 신경을 쓰고 있다”며 “케이지 프리 선언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달걀이 들어간 식품이 1만 개가 넘고 사육장의 위생 상태 등을 고려해야 해 당장은 쉽지 않다”고 밝혔다.

천권필 기자, 이수민 인턴기자 feeli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