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자살 관광' 늘어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13일 오후 스위스 취리히의 한 아파트 거실. 회복 불가능한 운동신경계 마비 질환을 몇년째 앓고 있는 지니날드 크루(74)는 아내와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움큼의 신경안정제를 삼킨 뒤 눈을 감았다.

4분 뒤 그는 영원히 잠들었다. 영국 리버풀에 사는 크루는 이날 새벽 취리히에 도착, 오전 10시 의사와 상담한 뒤 오후 3시 삶을 마감했다.

불치병을 앓는 외국인들이 자살하려고 스위스를 찾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가 5일 보도했다. 스위스 당국에 따르면 취리히에서 발생한 자살 사건은 2000년 3건에서 2001년엔 38건, 2002년 55건으로 급증했다. 자살자 대부분은 외국인이다.

1942년 안락사법을 제정한 스위스엔 현재 4개의 안락사 지원단체가 있다. 이들 단체는 저렴한 가격으로 '자살 서비스'를 제공한다.

가장 규모가 큰 '디그니타스'의 회원들은 입회비 70달러, 연회비 30달러만 내면 언제든지 스위스에 와서 안락사할 수 있다. 네덜란드나 벨기에에서도 가능하지만 스위스보다 훨씬 까다롭다.

언론인 출신인 디그니타스 대표 루드비히 미넬리는 "죽음이 필요한 사람에게 죽을 권리도 인정해야 한다"면서 "안락사를 막는 자기나라를 떠나 외국에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보내는 메시지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위스 당국이 이런 현상을 반기는 눈치는 아니다. 취리히주의 안드레아스 브루너 지방검사는 "스위스가 자살 관광지나 된단 말이냐. 이런 관광객은 원치 않는다"며 눈살을 찌푸렸다.

또 한 의원은 "아침에 입국한 환자가 점심 때면 죽는다니 기가 막힌다. 죽음을 택하기 전 한번 더 생각해 보도록 안락사법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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