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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클리닉] 채팅 중독 아내 어쩌나

중앙일보

입력

◇ 새벽 5~6시까지 인터넷

저는 40세 남자로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아들과 네살짜리 딸이 있습니다.

아내가 1년 전부터 인터넷 채팅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컴퓨터를 별로 가까이 하지 않는 평범한 주부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학교와 유치원에 가고 나면 낮에 심심하다"며 인터넷 주부교실에서 교육을 받은 다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채팅이 재미있다"며 내게 그날 나눈 대화를 자랑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차츰 채팅 시간이 길어지면서 저와는 대화를 끊고 있습니다. 한두달 지나면서부터는 하루에 3~4시간씩 채팅을 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 컴퓨터 고장내니 PC방으로

그러더니 집안일을 거의 방치하고 컴퓨터에만 매달리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작은애는 아내가 보내지 않으면 유치원도 안 갑니다. 아직 어려서 시간 개념이 없으니 일일이 챙겨줘야지요. 집안은 엉망입니다. 청소도 안 해 거실이며 안방은 지저분하기 짝이 없습니다. 빨래도 세탁기 안에 그대로 쌓여 있기 일쑤고….

무엇보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의 숙제를 봐주지 않는 게 가장 걱정입니다. 제가 회사일 때문에 귀가가 늦는 편이라 더 그렇지요. 큰 애가 숙제를 제대로 안해 왔다고 학교에서 꾸중을 듣는 모양입니다. 받아쓰기 시험을 봐도 대부분 틀리고…. 그러니 학교에 가는 게 재미가 없다고 말합니다. 벌써부터 공부에 흥미를 잃었으니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아내는 인터넷을 밤새워 오전 5~6시까지 합니다. 그후에는 잠자고 오후 2~3시에 일어나 또 시작합니다. "이래서 되겠느냐. 애들 봐서라도 제발 자제해 달라"고 말하면 "알았다. 앞으로는 줄이겠다"고 해놓고는 하루만 지나면 마찬가지입니다.

◇ 숙제도 밥도 안챙겨주니…

무엇보다 수면부족으로 아무 일에도 의욕을 못 느끼는 상태가 되더라고요. 화가 나서 집의 컴퓨터를 고장내버렸습니다. 그랬더니 이제는 아예 PC방에 다니면서 채팅을 합니다. 집에 들어와도 잠만 자고 다시 나가는 거지요.

싸우다가 손찌검까지 한번 했습니다. 그래도 나가더라고요. 이제는 포기하고 "아이들만이라도 챙겨달라"고 했는데 그것도 잘 안됩니다."같이 정신과 상담을 받자"고 하니까 "내가 정신병자냐 당신이나 받아라"고 하더라고요.

참 기가 막힙니다. 어찌해야 되나요. 싸움도 여러 차례 하고, 이혼까지 생각했습니다. 한동안은 다른 남자가 생긴 건 아닌가 하고 의심도 했지만 그건 아닌것 같습니다.

스스로도 중독증이란 걸 알고 있는 것 같아요.하지만 본격적으로 고칠 의지는 없는듯 합니다. 저나 애들이 너무 힘드네요. 학교 갔다 와도 따뜻하게 맞아줄 엄마가 없고, 배가 고파도 밥 차려줄 엄마가 없고, 학교에 가져갈 준비물을 챙겨줄 엄마가 없고, 소풍을 가도 도시락 싸줄 엄마가 없고….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 어찌 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어찌하면 우리 가정이 행복을 찾을 수 있을지 좋은 말씀 부탁합니다. [대전에서 철민(가명)이 아빠가]

[전문가의 조언] 남편이 해소 도와줘야

보통 주부들이 채팅에 빠지게 되는 이유는 단조롭고 우울한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 때문입니다. 외부 활동을 많이 하는 주부보다 아이들에게만 파묻혀 지낸 주부들의 채팅 중독이 더 심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부인이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면서 지내왔다고 생각해 주시길 바랍니다. 다만 그 억압된 욕구를 분출해 자신의 소망을 실현하고 관계망을 넓히는 일을 채팅에 의존하고 집착하게 되었다는 것이 불행입니다.

채팅을 통해 부인이 이루는, 혹은 이루고자 하는 소망.욕구를 발견하는 것, 이것이 저는 문제 해결의 1단계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 부인의 심리적 욕구를 현실에서 이루어줄 수 있는 남편이 돼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킴벌리 영'이라는 학자는 채팅 중독으로 고민하는 부부들에게는 새로운 의사소통 방법이 필요하다고 전합니다.

대화의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고, 대화하기 좋은 시간과 장소를 특별히 마련해 무슨 말을 가장 하고 싶은지 정한 뒤에, 비난조의 말투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진행하는 것입니다.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e-메일이나 편지를 통해 시도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이것이 2단계 전략입니다.

3단계는 가정의 회복을 위해 부인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가족과 정말로 중요한 행사를 하며 아이들의 마음을 전하는 전략입니다.

김현수 (사는기쁨 신경정신과 의원 원장, 청년의사 인터넷 중독 치료센터장)

[전문가의 조언] 가족들 계속 격려 필요

부인께서 지금의 상태를 고쳐보겠다는 의지를 자극하는 방법을 권장합니다. 자녀들을 참여시키는 게 방법이라고 봅니다.

아이들로 하여금 엄마에게 자신들의 요구를 정확히 전달하는 방법을 익히도록 해 보시지요.

현재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예를 들어, 학교 숙제를 챙기지 않아 선생님에게 혼이 났다), 그리고 엄마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예를 들어, 저녁마다 가방 챙기는 일을 도와줬으면 좋겠다) 등의 구체적인 대화를 하도록 하십시오.

또한 집안일에 신경쓰는 등 선생님 스스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 뒤 부인의 인터넷 사용 패턴을 서서히 변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정해진 시간만 컴퓨터를 사용한다는 합의를 이끌어냅니다.

또한 일정한 시간에 자고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 패턴을 유지하도록 계획을 세웁니다. 타협된 계획표를 컴퓨터 앞에 붙여 부인께서 자신의 활동을 수시로 점검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효과적입니다. 필요에 따라서는 헬스 클럽에 다녀 에너지를 소모토록 하는 것도 좋습니다.

만일 약속한 일들을 부인께서 지키지 못했다 하더라도 책망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일부라도 지켰을 때 "고맙다"거나 "당신이 이렇게 해줘서 난 기쁘다" 라는 식의 칭찬을 해주면 아주 효과적일 것입니다.

현실의 자신에 대한 만족감을 높여가면 인터넷에 대한 의존성을 서서히 줄일 수 있습니다. 지금은 힘겨우시겠지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부인을 이해하시고, 한번에 한가지씩 고쳐나간다는 느긋한 마음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이수진(한국정보문화진흥원, 인터넷중독예방상담센터 선임연구원)

독자들의 의견

지난주 게재한 '컴퓨터 채팅에 중독된 아내를 둔 남편의 고민'에 대해 여러 독자들이 의견을 보내왔다.

독자 의견 중에는 '아내를 바쁘게 만들어라'는 조언이 있었다.

"아내가 한가한 것이 문제가 된 것 같습니다. 뭔가 환경의 변화, 생활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신앙생활에 몰두하거나 직업을 갖도록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믿음을 갖고 교회나 사찰의 다양한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되면 정신적으로도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취업을 하면 사회적으로 평가를 받는 생산활동에 종사한다는 보람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직장과 가정일로 두루 바빠지면 한가하게 채팅할 여유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park8313@joins.com)"는 내용이다.

'같이 채팅하라'는 조언도 눈길을 끌었다. "아내와 함께 채팅하세요. 집에서 인터넷이 안되면 PC방에도 같이 가고 똑같이 행동해 보세요. 부인도 의지가 약할 뿐이지 이러면 안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겁니다. 남편께서 회사에 며칠 휴가를 내 부인과 똑같은 생활을 하게 되면 '이러면 안되겠다'고 스스로 깨달을 겁니다. 그리고 중독에서 빠져나온 부인을 따뜻하게 감싸주고요(herbert@joins.com)"라는 내용이다.

또 독자 조강섭씨는 '어머니 학교'(02-797-5942.가정상담연구원)의 문을 두드려 보라고 조언했다. 채팅 중독뿐 아니라 많은 가정사로 고민하는 어머니들에게 재충전의 기회가 되고 자기 정체성을 확립시켜 준다는 것이다. '어머니 됨'에 대한 새로운 자각도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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