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구 결핵환자촌 철거 위기

중앙일보

입력

17년째 폐결핵을 앓고 있는 김기환(67)씨는 요즘 한평 남짓한 쪽방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하루 종일 누워서 지낸다. 끼니는 복지관에서 배달해 주는 도시락으로 때운다.

金씨가 살고 있는 서울 은평구 구산동 산 61번지 '결핵환자촌'에 모처럼 웃음꽃이 피었다. 지난 23일 이곳에 거주하는 2백가구 모두가 20㎏짜리 쌀을 서너 부대씩 선물로 받았기 때문이다. 해마다 연말이면 쌀을 나눠주는 '얼굴 없는 독지가'가 올해도 어김없이 온정을 베푼 것이다.

회사 이름을 종이로 가린 트럭에 싣고 온 쌀 8백부대를 청년 30여명이 일일이 집까지 날라준 뒤 홀연히 사라지는 것이 벌써 4년째다. 동네 주민들은 이 독지가가 눈물나게 고마우면서도 예년에 비해 다른 도움의 발길이 뜸해 서운하기도 하다.

송인국(52)씨는 "연말연시에는 이곳을 찾아오는 손님들이 꽤 있었다"며 "올해는 대통령 선거 등의 영향 때문인지 찾아주는 이웃이 크게 줄었다"고 귀띔했다. 더욱이 서울시가 내년 중 이 자리에 환자들을 위한 임대아파트를 짓는 동안 임시 거처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결핵환자촌이 만들어진 것은 1960년대. 결핵 치료 전문인 시립 서대문병원이 자리잡고 병원 뒤 가파른 언덕에 환자들이 하나 둘 모여 들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70년대 말에는 1천5백여명이나 살았으나 지금은 3백여명이 남아 있다.

이곳에서는 사회복지법인 '사랑의 보금자리'(이사장 이정재)가 환자들의 재활을 돕고 있다.

2000년 설립된 이 단체는 회원들이 매달 1만~2만원씩 내는 후원금 등으로 전국의 환자 1천여명에게 매달 생활비와 생필품을 지원하고 있다.

이 단체 신혜숙 전도사는 "결핵 환자들은 독한 약으로 인한 장기 손상을 막기 위해 잘 먹어야 하는데 대부분 생활이 어렵다 보니 제대로 영양 섭취를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 했다.

결핵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결핵 환자는 22만명으로 매년 3천여명이 사망한다. 전국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극빈층 결핵환자만 5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문의=02-385-2025 ▶계좌=국민은행 024-01-059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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