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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핵미사일 들이려던 그곳···中 돈폭탄에 美 턱밑 서늘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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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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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쉬운 돈을 주의하라."

지난 1월 자메이카를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연설을 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월 자메이카를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연설을 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올해 1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한 말이다. 자메이카 수도 킹스턴을 방문한 자리에서다. 폼페이오 장관은 “중국의 자금이 부패를 낳고 법을 약화한다면 무슨 가치가 있겠느냐”며 "(중국의) 투자가 당신들의 환경을 해치고 정작 국민을 위한 일자리는 만들어주지 않는 것은 아닌지 잘 살펴보라"고 말했다. 앞서 코스타리카를 방문한 자리에서도 중국의 경제 협력이 상대국에 부채 의존도를 높여 주권을 약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방문한 국가 면전에 “중국 돈 함부로 쓰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다.

지난 2014년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014년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영향력(돈)이 닿지 않는 곳이 어디 있겠나. 그중에서 카리브해 일대에 중국은 공을 들이고 있다. 얼핏 생각하면 카리브해는 중국에 매력적이지 않다. 아프리카나 중동, 아시아처럼 광물이나 원자재, 식량이 많은 것도 아니다. 유럽처럼 정치문화적 영향력이 큰 것도 아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주창한 일대일로의 경로에 포함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이곳, 중국이 눈독 들이고 있다.

미국의 턱밑이기 때문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 때의 모형 미사일.[중앙포토]

쿠바 미사일 위기 때의 모형 미사일.[중앙포토]

카리브해는 미 플로리다 주에서 비행기로 1시간이 채 안 걸린다. 이곳은 냉전 시절 명성을 떨쳤다. 미국을 두렵게 한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다. 그해 10월 소련이 자국 중거리 핵미사일을 쿠바에 들여오려다 이를 미국이 알게 되면서 미소 양국이 핵전쟁 직전까지 갔던 사건을 말한다.

2020년 미·중 신냉전이 펼쳐지면서 카리브해의 지정학적 매력은 다시 커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전문가를 인용해 “카리브해는 미국과의 근접성 때문에 군사적 가치가 크다”며 “여기에 물류 은행 및 상업 허브로서 전략적 중요성도 크다”고 평가했다. 미국 국무장관이 대놓고 경고에 나선 데엔 이런 이유가 있었던 거다.

중국이 카리브해에 관심을 둔 건 이것 때문만은 아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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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과의 알력 싸움 때문이다. 리처드 버널 전 미국 주재 자메이카 대사는 NYT에 “중국이 카리브해를 전략적으로 접근하게 된 결정적 동기는 대만”이라며 “대만과 수교하고 있는 카리브해와 중남미 국가들을 공략하기 위해서”라고 분석했다.

대만과 공식 외교관계를 맺은 나라는 15개국 정도밖에 안 된다. 이 중 상당수가 카리브해와 중남미 국가에 몰려있다. 이에 중국은 대만과의 외교관계 단절을 조건으로 카리브해 국가를 중심으로 경제적 지원을 해왔다. 실제로 중국은 2017년 중남미 파나마, 2018년 카리브해 도미니카공화국을 ‘자신의 편’(수교)으로 돌려놓으며 대만과 단교시켰다.

지난 5월 중국의 의료물품이 쿠바 하바나에 도착한 모습.[신화=연합뉴스]

지난 5월 중국의 의료물품이 쿠바 하바나에 도착한 모습.[신화=연합뉴스]

당장 인프라 구축을 통해 산업 발전을 꾀하는 카리브해 국가에겐 중국의 돈이 매우 달콤했다. 미국의 중남미 전문 연구기관인 미주대화(IAD)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15년 동안 자메이카에 도로, 교량, 컨벤션 센터 및 주택 건설을 위해 약 21억 달러를 빌려줬다. 자메이카 계획 연구소에 따르면 보조금은 다른 프로젝트 중에서도 외교부의 어린이 병원, 학교 및 사무실 건물에 자금을 지원했다. 중국과 카리브해의 무역량도 2002년과 2019년 사이에 8배나 증가했다.

올해 들어 코로나19가 확산하자, 베네수엘라와 쿠바 등에 의료물품을 지원하며 애정 공세를 더 펼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조심했다. 코로나19 확산 와중에 이른바 ‘늑대외교’를 표방하며 각국 주재 중국 대사들이 미국에 대한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던 와중에도 카리브해에선 조용했다. 미국의 역린을 건드려선 안 된다고 생각해서다. 미 육군 전쟁대학의 엘리스 교수는 “중국은 카리브해에선 미국에 직접 도전하는 것을 최대한 피하려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이제서야 움직였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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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부상을 막기 위해 올해부터 카리브해 관리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NYT에 따르면 지난 10월 트럼프 행정부 관리들이 수리남과 가이아나, 아이티, 도미니카 공화국을 돌며 미국 민간 부문을 알리기 위해 활동에 나섰다. 도널드 타피아 자메이카 주재 미국 대사는 트위터에 “화웨이는 스파이이고 권위주의 정권을 지원해왔다”며 자메이카에 화웨이의 5G 장비를 쓰지 말라고 강하게 경고했다. 지난 1월 폼페이오 장관의 엄포를 구체적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말로만 하면 뭐 하나.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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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타격이 큰 카리브해다. 미국의 엄포도 실질적인 이득이 없다면 구속력은 떨어진다. 중국의 당근이 여전히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의 새 대통령이 될 조 바이든 후보의 등장도 변수다. 트럼프 행정부처럼 협박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 혜택을 카리브해에 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트럼프식 우격다짐 외교와의 단절을 선언한 바이든. 그의 새로운 외교 방식은 카리브해에 만들어진 중국의 칼날을 치울 수 있을까.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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