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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미·일·인도 등 7개국 “텔레그램 암호화 기술 풀어라” 왜

중앙일보

입력

미국 등 7개 국가 법무부가 텔레그램·페이스북 등 암호화 메신저 업체들에 수사당국의 메신저 접근을 허용하라고 요구했다. 지난 11일 발표된 '종단 간 암호화 및 공공안전(End-To-End Encryption and Public Safety)'에 관한 국제 성명을 통해서다.

무슨 일이야?

성명의 핵심은 정보통신(IT) 기업이 수사 당국에 범죄 혐의자의 메신저에 접근할 수 있는 기술적 지원(백도어)을 해야 한다는 것.
· 성명은 "기술 기업의 종단 간 암호화가 아동 성 착취·폭력 범죄·테러리스트 선전 등 범죄에 사법기관이 대처하기 힘들게 만들고, 공공안전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 이들의 요구 사항은 ▶암호화된 제품 및 서비스 설계시 정부가 합법적으로 대응할 백도어를 마련하라 ▶실제 읽고 사용할 수 있는 형식의 데이터 접근권을 제공하라 ▶아이폰 등 기계장치 및 통합 플랫폼 전반의 백도어를 마련하라 등이다.
· 해당 성명은 미국·영국·호주·뉴질랜드·캐나다 등 미국의 핵심 정보동맹국(파이브 아이스)과 인도·일본이 서명했다.

미국 법무부가 홈페이지에 게재한 국제 성명. 미 법무부 캡처

미국 법무부가 홈페이지에 게재한 국제 성명. 미 법무부 캡처

왜 중요해?

개인정보보호와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는 IT기업과 공익을 앞세운 국가 사법기관의 정면 충돌이다.

·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 중앙정보국(CIA)과 국가안보국(NSA)의 불법 감청을 폭로하며 국가권력 감시 우려가 확대됐다. 애플·페이스북 등 IT기업의 프라이버시 정책은 이때부터 꾸준히 강화되는 중.
· 텔레그램, 페이스북 메신저, 왓츠앱, 애플 아이메시지 등은 서버에 따로 대화 내용을 저장하지 않는 암호화 보안으로 사용자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한다. 하지만 강력한 보안 때문에 테러나 아동성범죄 등에 악용된다는 우려도 크다.
· 2016년 미 연방수사국(FBI)은 샌버나디노 총기 테러사건을 수사하며 애플에 아이폰 잠금해제 협조를 요청했지만, 애플은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거부했다. 지난해 10월엔 미국·영국·호주가 페이스북에 비상용 '백도어'를 요청했지만 페이스북도 이를 거절했다.

"범죄 막아야" vs. "악용 및 위험 소지 커져"

· 백도어를 요구하는 쪽은 중요 범죄 수사 필요성과 국가안보를 위한 법 집행을 강조한다. 미 법무부는 "전 세계 아동 성적 학대 신고 1840만건 중 페이스북 메신저에서 보고된 것이 1200만건(2018년)"이라며 "프라이버시도 중요하지만, 공공안전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 IT업체는 백도어를 열어 둘 경우 해킹 가능성과 정부의 악용을 우려한다. 페이스북은 12일 "해커, 범죄자, 외국 정부로부터 메시지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암호화는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나랑 무슨 상관

국내에선 카카오톡 감청 논란(2014년)과 올해 n번방 사건 등 대형 이슈에 따라 여론이 오간다. 현재는 카카오톡과 라인 등 대부분의 국내 메신저에 종단 간 암호화 기능이 적용돼 수사기관의 감청이 불가능하다.

· 2014년 카카오톡 감청 논란 때는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강조됐다. 검찰 등 수사기관의 전기통신감청(통신제한조치) 요구에 응했던 카카오에 대한 비판이 컸다. 당시 카톡 사용자들은 암호화된 해외 메신저 텔레그램으로 집단 망명하기도 했다.
· 카카오는 이후 '비밀대화' 기능 등을 통해 종단 간 암호화를 적용했고, '메신저 감청은 증거능력이 없다'는 대법원 판결[2016도 8137]을 근거로 2016년부터 수사기관에 감청 협조를 중단했다.

271만명의 동의를 얻은 텔레그램 용의자 신상공개 국민청원 청와대 캡쳐

271만명의 동의를 얻은 텔레그램 용의자 신상공개 국민청원 청와대 캡쳐

· 올해는 n번방 사건으로 암호화 메신저에 대한 범죄 수사가 요구가 힘을 얻고 있다. 텔레그램 같은 암호화 메신저를 통해 권력형 성범죄, 마약 유통, 아동 성범죄가 이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n번방 수사 관련 국민청원 5건에 총 600만명이 동참했다.
· 국회는 5월 온라인 성범죄 처벌 범위 확대와 인터넷 사업자에 기술·관리 조치 의무를 골자로 하는 'n번방 방지법'을 통과시켰다. 인터넷업계에서 '사적 대화 검열' 우려를 제기하자 방송통신위원회는 "개인 간의 사적인 대화는 대상이 아니며, 이용자의 사생활과 통신 비밀을 침해할 우려가 없다"고 해명했다.(5월 15일)
·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미국과 유럽 등에선 합법적 수사의 필요성과 IT기업의 사회적 책임 논의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며 "한국에서도 범죄수사와 프라이버시 상충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 공론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더 알면 좋은 것

· 이번 성명을 시작으로 각국 법무부가 연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IT 기업에 대한 압박은 점차 거세질 전망. 시민단체 프론티어전자재단은 "유럽연합도 내년까지 암호화 방지법을 만들어 백도어를 의무적으로 마련하도록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 미국이 한국 정부에 공동성명 참여를 요청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외교부 측은 "해당 사안은 법무부 소관"이라고 밝혔다. 법무부 관계자는 "국가 간 협조 내용은 명확한 결론이 나기 전에는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며 "(미국 법무부의) 요청 여부를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정원엽 기자 jung.wonyeo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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