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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긱워커는 근로자인가, 우버 웃게 만든 美노동부 제안

중앙일보

입력

플랫폼 노동자는 '근로자'일까 아닐까? 미국 연방정부와 주정부(캘리포니아주)의 입장이 명확히 갈렸다. 미국 연방 노동부(DOL)는 22일 독립계약자(개인사업자) 정의를 명확히 하자는 내용의 규칙을 제안(NPRM·Notice of Proposed Rulemaking)했다. 이에 따르면 플랫폼 노동자는 기업에 고용된 근로자(employee)가 아니라 독립계약자(contractor)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다.

왜 중요해?

미국 연방 정부가 플랫폼 노동자를 기업에 고용된 직원으로 보는 시각(캘리포니아주의 AB-5법안 등)과 정 반대의 제안을 내놨다. 플랫폼 노동을 바라보는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충돌이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공화당)과 조 바이든 대선 후보(민주당)의 관점 차이가 확인됐다.

· 노동부의 제안엔 플랫폼 노동자를 독립계약자로 판단할 여지가 큰 내용이 담겼다. 기업입장에선 노동자가 독립 계약자로 분류되면 최저임금·초과 근무 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고, 사회보장세·실업보험·산재보험 부담을 덜 수 있다.
· 뉴욕타임스는 "우버와 리프트 등이 이익을 보는 제안"이라며 "수백만 명의 긱 워커(Gig-Worker, 고용주의 필요에 의해 단기 계약을 맺는 근로자)를 독립계약자로 두는 조치"라고 분석했다.
· 최근 미국 내에선 플랫폼 노동자를 근로자로 보자는 시각이 힘을 받았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올 1월부터 AB-5법을 시행하며 플랫폼 노동자의 근로자 인정 범위를 확대했다. 뉴욕 항소법원도 음식배달 플랫폼 포스트메이트 노동자에게 실업 보험 자격을 주는 판결(3월)을 내렸다. 8월에는 캘리포니아 법원이 우버·리프트에게 기사를 직원으로 고용하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어떤 내용이 담겼는데? 

미 노동부의 제안은 '경제적 현실 테스트'를 통해 노동자가 독립계약자인지 근로자(고용 직원)인지 구분하자고 한다.

· 이 테스트의 판별 기준은 ▶기업의 노동자 통제 정도와 그 성격 ▶노동자의 투자·손익 기회다. 스스로 작업일정을 세우고, 기업의 감독을 받지 않으며, 다른 경쟁 고용주를 위해 일할 수 있다면 독립 계약자라는 것. 차량 등 장비를 스스로 구매해 수익을 올리는 경우도 독립 계약자로 판단한다.
· 미 노동부는 "두 가지 기준 외에 작업에 필요한 기술, 근로관계의 영속성, 작업이 통합된 생산 단위의 일부인지 여부도 고려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이 제안과 대척점에 위치한 캘리포니아주의 AB-5 법은 'ABC 검증'을 직접 고용 조건으로 걸었다. ①근무시간을 노동자가 정하고 ②기업의 핵심 업무를 맡지 않고 ③회사와 같은 업종에서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만 독립 계약자로 본다. 이외엔 기업이 직접 고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 기준에서 상당수 우버 기사들은 직고용 대상이 된다.

긱 이코노미 플랫폼의 미소

· 미 노동부의 제안은 우버·리프트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이들은 노동자가 2개 이상의 앱에서 수익성 높은 일을 선택적(멀티호밍)으로 할 수 있고, 플랫폼이 통제권을 충분히 행사하지 않기에 드라이버는 '독립 계약자'라고 주장해 왔다.
· 유진 스칼리아 미 노동부 장관은 폭스 뉴스 인터뷰에서 "AB-5로 인해 독립계약자였을 노동자들을 근로자로 인정해야 하는 문제가 생겼다"며 "일부 기업은 고용을 중단했고, 우버·리프트는 법적 분쟁으로 운영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 뉴욕타임스는 "기업이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야 하면 인건비가 최소 20~30% 올라갈 것"이라며 "(노동부 제안은)우버나 리프트 같은 비지니스 모델에 축복 같은 조치"라고 평가했다.

플랫폼 노동구조.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플랫폼 노동구조.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한국에선 어때

국내 플랫폼 노동자는 53만 8000명으로 추산된다.(한국 고용정보원, 2019) 이들은 배달의 민족·쿠팡이츠·카카오모빌리티 등 플랫폼에서 일감을 받지만 이 회사의 직원은 아니다. 정부·국회에서도 플랫폼 노동자 지위에 대한 논의는 이제 시작 단계다.

· 플랫폼 노동자 처우를 개선해야 한단 쪽과 플랫폼 기업의 경쟁력에 (직접고용은) 부담이 된다는 주장이 맞선다. 한인상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국내 플랫폼 종사자가 빠르게 늘면서, 법적 지위가 불안정하고 노동 환경이 열악한 이들에 대한 보호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양면시장을 연결하는 플랫폼 기업이 4대 보험과 정년이 보장된 수많은 근로자를 안고 사업을 해야하면 생존이 어려워진다"고 주장했다.
· 법적 판례도 아직 명확하지 않다. 지난 5월 중앙노동위원회는 타다 드라이버에 대해 처음으로 '타다 근로자가 맞다'고 인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앞서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각하했던 사안이다. 타다는 중앙노동위 결정에 행정소송을 냈다. 최종 판단은 법원에서 가려지게 됐다.
· 플랫폼 노동자가 근로자로 인정받으면 근로기준법에 따라 4대 보험과 연장·휴일근로 수당 지급이 이뤄지고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에서도 보호받는다.

더 알면 좋은 것

· 미 노동부가 제정된 지 80년이 넘은 공정근로기준법(Fair Labor Standards Act)에 새로운 규칙을 붙이면서까지 기업 편을 든 건 11월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블룸버그는 "비정상적인 타임라인이 적용되고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고용분쟁과 관련해 기업에 유리한 유산을 남기고 싶어한다"고 지적했다.
· 정부 방침이 이렇더라도, 캘리포니아주의 AB-5법 등 개별 주 법은 그대로 적용된다. 뉴욕주와 일리노이주는 AB-5와 유사한 법을 추진 중이다. 대신 향후 법적 분쟁에서 노동부의 규칙이 주요 판단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스칼리아 미 노동부 장관은 "전국적으로 일관되게 적용될 수 있는 명료한 방식을 법으로 명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원엽 기자 jung.wonyeo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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