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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카톡도 감청되나” 법 통과 다음날 사이버 망명 8만 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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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회사원 김모(38)씨는 최근 해외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앱)인 ‘텔레그램’을 1년 만에 내려받았다. 2014년 10월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 정보기관에 감청될 수 있다는 논란이 일었을 때 잠깐 쓰다가 몇 달 뒤 지웠던 앱이다.

야당 "무차별 민간인 사찰 가능"
박 대통령 "감청, 일반 국민과 무관"

김씨는 “테러방지법이 통과되면서 주변 사람들이 다시 텔레그램을 쓰기 시작해 불안한 마음에 내려받았다”고 말했다.

지난 2일 국회에서 진통 끝에 테러방지법이 통과된 이후 ‘카톡 사찰’에 대한 우려와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2년 전 카톡 감청 논란을 떠올린 사용자들이 막연한 걱정에 해외 메신저부터 찾는 분위기다.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은 국내에 서버가 있어 대화 내용이 정부의 감청(통신제한조치) 대상에 쉽게 노출된다는 걱정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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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우려는 더불어민주당이 지난달 23일부터 9일간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통해 “테러방지법상 사찰 대상이 될 수 있는 ‘테러위험인물’의 정의가 모호해 무차별 민간인 사찰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빠르게 확산됐다.

더민주 의원들은 “법이 테러위험인물을 ‘ 기타 테러예비·음모·선전·선동을 했거나 의심할 이유가 있는 자’라고 모호하게 정의했다”며 “자극적인 언어로 정부 정책을 반대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이 법의 적용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당은 유엔이 지정한 ‘테러단체(올 1월 현재 31개)의 조직원’이나 여기에 가담하려는 내국인 또는 이런 조직에 연계된 외국인이 주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테러위험인물이라고 해도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법원의 감청 영장 없이는 대화 내용을 감청할 수 없다. 다만 위급한 상황에서 영장 없이 감청을 할 수는 있다. 이 경우에도 36시간 이내에 법원 영장을 받지 않으면 즉시 중단해야 한다.

더민주는 법원 영장에 대해서도 “사법연감에 따르면 고등법원의 통신 제한조치 허가는 매년 기각률이 0%일 정도로, 국정원이 청구하는 대로 (감청 영장을) 발부해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박근혜 대통령은 7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더민주를 겨냥해 “법 제정 과정에서 모든 국민의 개인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할 것이라는, 사실과 전혀 다른 주장들이 유포됐는데 이것은 사회 분열을 조장하는 이야기”라고 비판했다.

박 대통령은 또 “테러 예방에 꼭 필요한 통신 감청이나 금융거래 정보 확인이 사법부의 엄격한 통제 아래 테러집단이나 인물에 한해 이뤄지는 것으로 일반 국민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카카오톡에 대한 감청도 과거보다 까다로워졌다. 카카오는 사용자들이 한 모든 대화 내용을 서버에 암호화해 저장하고 3일이 지나면 이마저도 삭제한다. 하지만 사용자가 카톡 비밀채팅 기능을 통해 대화하면 이 내용은 누구도 들여다볼 수 없다.

카카오의 정성열 커뮤니케이션 파트장은 “비밀채팅에 걸린 암호를 풀 수 있는 키는 카톡 사용자의 스마트폰에 저장돼 있어 사실상 감청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카카오는 감청 논란 직후 1년간 중단했던 검찰에 대한 감청 협조를 지난해 10월 재개해 비난을 받은 터라 긴장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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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혼란의 반사이익은 해외 메신저 텔레그램이 보고 있다. 인터넷·모바일 평가업체인 랭키닷컴에 따르면 국내 텔레그램 이용자(안드로이드 스마트폰 기준)는 테러방지법이 통과된 다음 날인 지난 3일 40만 명을 돌파했다. 하루 만에 8만 명이 증가했다. 2014년 카톡 감청 논란 때도 텔레그램은 국내 사용자를 300만 명까지 확보했다.

하지만 보안 분야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혼란이 오래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텔레그램이 주목받았던 2014년 카톡 감청 논란 이후 국내 메신저들의 보안 수준이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비밀채팅 기능만 잘 활용해도 수사기관의 감청이 불가능할 정도로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수련·이지상 기자 park.sury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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