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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침원 절반 2년뒤 할일 없는데, 한전 알고도 정규직 전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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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한국전력이 올해 초 정규직으로 전환한 검침 인력 절반은 2년 안에 할 일이 없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검침원 없이도 전력사용을 확인할 수 있는 원격검침인프라(AMI)를 2022년까지 보급 완료하기 때문이다.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이 12일 한전으로부터 받은 ‘검침 자회사 역무 정립 연구용역’ 보고서 따르면 AMI를 도입하면 현재 5065명인 검침 관련 인력 중 2453명이 할 일이 없어지는 것으로 분석했다.

원격검침시스템 2022년 보급 완료 #검침원 5065명 중 2453명 불필요 #한전, 정부 정책 맞추려 밀어붙여

구체적으로 전력계량기를 통해 전력 사용량을 확인하는 검침원은 2937명에서 658명, 전력 설비를 해지하는 단전원은 480명에서 364명, 관리직은 577명에서 433명으로 줄어든다. 2022년까지 퇴직하는 인원 1129명을 제외해도 1324명에 달한다. 다만 전기요금고지서를 각 가정에 전달하는 송달원(1071명→1158명)은 AMI 사업과 큰 연관성이 없어 인력이 소폭 늘어난다. 이에 대해 이철규 의원은 “우편발송으로 전환하면 송달 인력도 불필요하다”고 지적했다.

AMI는 전기계량기를 네트워크로 연결해 전력 사용량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시스템이다. 검침원이 직접 방문해 전기계량기를 확인하지 않아도 되고, 각 가정에서 휴대전화나 인터넷을 이용해 전력 사용량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한전이 이 같은 사실을 알고서도 정부 정책에 협조하기 위해 정규직 전환을 밀어붙였다는 점이다. 실제 해당 보고서는 검침 인력 정규직화를 앞둔 지난해 4월 한전이 직접 의뢰해 만들었다. 한전은 원래 검침 관련 업무를 1973년부터 외부 용역업체에 위탁해왔다. 하지만 정작 AMI 도입으로 해당 업무가 필요 없어지는 시점에 자회사까지 만들어 검침 인력 전부를 정규직 전환했다. 내부 보고서에서 인력 절반이 업무가 없어진다는 지적까지 나왔지만, 재검토는 없었다.

이미 효율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한 상태에서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는 바람에 정책 간 모순도 발생했다. AMI 사업은 정부가 2017~2022년까지 총 2조원을 투자하여 전기·가스 사용하는 3600만 가구에 보급할 목적으로 추진했다. 전력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막대한 한전 예산까지 투입하고도 정부가 비용 감축 효과를 볼 수 없게 막은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규직 전환도 공공기관과 각 공기업 상황에 맞춰 추진해야지 일괄적으로 밀어붙이면 그 부담을 국민과 공기업이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전 측은 “AMI 도입으로 업무가 사라진 직원들이 다른 업무를 맡게 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설명했다.

세종=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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