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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 비닐 먹이고, 영화 스크린 발로 차고…중국의 개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일부터 8일까지 8일간의 긴 추석 및 국경절 연휴를 보낸 중국에서 ‘문명(文明) 여행’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다. 여기에서 ‘문명’은 ‘교양’의 의미로 쓰인다. 연휴 기간 비(非)문명, 즉 교양 없는 관광 추태가 많이 벌어진 탓이다.

하이난성 영화관 스크린은 발길질로 훼손 #광시에선 발차기 다섯 번에 선인장 꺾이기도 #쿤밍동물원에선 비닐에 든 사과 코끼리 줘 #무료 개방 논밭은 곳곳 밟혀 벼도 쓰러져

중국의 한 청년이 지난 7일 광시(廣西)의 한 관광지에서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선인장을 발로 잇달아 다섯 번을 걷어 차 쓰러뜨린 뒤 자리를 뜨고 있다. [중국 신경보망 캡처]

중국의 한 청년이 지난 7일 광시(廣西)의 한 관광지에서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선인장을 발로 잇달아 다섯 번을 걷어 차 쓰러뜨린 뒤 자리를 뜨고 있다. [중국 신경보망 캡처]

#장면 1. 지난 7일 광시(廣西) 웨이저우다오(涠州島)의 한 관광지에서 한 청년이 관상용 선인장에 발길질을 시작한다. 어머니가 말려도 듣지 않고 다섯 번을 걷어찬 끝에 마침내 큼지막한 선인장을 쓰러트리고 만다.

이들은 이후 현장을 떠나 차를 기다리는 대합실로 갔다가 다시 관광지로 소환돼 비판 교육을 받고 500위안(약 8만 5000원)의 배상금을 냈다. 어머니는 이런 버릇없는 행동을 한 게 “아직은 아이”라며 감싸고 나섰는데 이게 중국 네티즌의 거센 비난을 사고 있다.

지난 7일 중국 광시장족자치구의 한 관광지에서 한 청년이 관상용 선인장을 발로 여기저기 차고 있다. 사건 이후 어머니가 청년을 '아직은 아이'라고 감싼 말이 중국인의 분노를 부르고 있다. [중국 환구망 캡처]

지난 7일 중국 광시장족자치구의 한 관광지에서 한 청년이 관상용 선인장을 발로 여기저기 차고 있다. 사건 이후 어머니가 청년을 '아직은 아이'라고 감싼 말이 중국인의 분노를 부르고 있다. [중국 환구망 캡처]

엄마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청년에게 어떻게 “아직은 아이”라는 말을 쓰며 도대체 언제까지 감싸고 돌 것이냐는 지적이다. 교양을 지키는 일에 ‘아이’이기에 괜찮다는 말은 없으며 오로지 ‘공민’만이 있을 뿐이라는 이야기다.

#장면2. 지난 4일 중국 하이난(海南)성 하이커우(海口)에 있는 한 영화관 직원은 방영 중인 영화의 화면에 굴곡이 생기며 비틀어지는 현상에 깜짝 놀랐다. 이상하다 싶어 스크린에 무슨 문제가 생겼나 살펴보니 수많은 발자국이 보였다.

중국 하이난성 하이커우에 있는 한 영화관에서 애니메이션 영화 ‘뮬란’ 상영하는 도중 꼬마들의 발길질 세례를 받아 스크린이 훼손됐다. 보호자는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 [중국 텅쉰망 캡처]

중국 하이난성 하이커우에 있는 한 영화관에서 애니메이션 영화 ‘뮬란’ 상영하는 도중 꼬마들의 발길질 세례를 받아 스크린이 훼손됐다. 보호자는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 [중국 텅쉰망 캡처]

청소할 때 생긴 문제가 아닌 것 같아 영화관 CCTV를 돌려보니 범인은 손님으로 왔던 꼬마들이었다. 이날 오후 2시 반에 애니메이션 ‘뮬란(木蘭)’을 상영했는데 고객은 단 세 명에 불과했다. 어른이 아이 둘을 데리고 왔다.

한데 영화 상영 때 한 꼬마가 앞으로 나와 스크린을 만지는가 싶더니 이내 주먹질과 발길질을 시작했고 이어 더 어린 꼬마도 달려와 발길질에 가세했다. 보호자는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

지난 4일 중국 하이난성의 한 영화관에서 꼬마 아이가 스크린 앞으로 나와 스크린을 향해 주먹질을 하고 있다. [중국 텅쉰망 캡처]

지난 4일 중국 하이난성의 한 영화관에서 꼬마 아이가 스크린 앞으로 나와 스크린을 향해 주먹질을 하고 있다. [중국 텅쉰망 캡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이미 막대한 타격을 받았던 영화관은 1만 위안가량의 스크린 손상을 받게 됐다. 더 큰 문제는 스크린 교체에 보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고 스크린 설치 비용도 추가로 들게 됐다는 점이다.

#장면 3. 지난 7일 윈난(云南)성의 쿤밍(昆明) 동물원. 관광객이 비닐봉지에 든 사과를 그대로 비닐과 함께 코끼리에게 던져준다. 그러자 코끼리는 사과를 비닐과 함께 먹고 만다. 동물원 곳곳에 ‘먹이를 주지 마시오’ 표어가 붙어 있지만, 전혀 지켜지지 않는 모습이다.

지난 7일 중국 윈난성 쿤밍 동물원에서 한 여행객이 비닐봉지에 든 사과를 코끼리에게 던져주자 코끼리가 비닐과 함께 사과를 먹는 사고가 터졌다. [중국 환구망 캡처]

지난 7일 중국 윈난성 쿤밍 동물원에서 한 여행객이 비닐봉지에 든 사과를 코끼리에게 던져주자 코끼리가 비닐과 함께 사과를 먹는 사고가 터졌다. [중국 환구망 캡처]

#장면 4. 지난 7일 중국의 인터넷 스타 왕훙(网紅)이 윈난성 다리(大理)에 있는 자신의 논밭을 관광객에 무료로 개방했다. 여행객들이 논밭 사이를 거닐며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논두렁 길도 넓혔다.

한데 얼마 지나지 않아 논밭 곳곳이 쑥대밭이 되기 시작했다. 논두렁 길로 다니지 않고 그냥 논으로 들어가 사진 등을 찍고 다니는 바람에 거의 다 익은 벼가 여기저기 쓰러지는 사태가 발생하고 만 것이다.

지난 7일 중국 인터넷 스타 왕훙이 자신의 윈난성 다리에 있는 논밭을 무료 개방하자 관광객들이 논으로 마구 들어가 사진을 찍는 바람에 다 익은 벼가 짓밟히는 상황이 벌어졌다. [중국청년망 캡처]

지난 7일 중국 인터넷 스타 왕훙이 자신의 윈난성 다리에 있는 논밭을 무료 개방하자 관광객들이 논으로 마구 들어가 사진을 찍는 바람에 다 익은 벼가 짓밟히는 상황이 벌어졌다. [중국청년망 캡처]

중국은 이번 연휴 기간 6억 1800만 명이 국내 여행을 했고, 관광 수입은 4543억 위안(약 77조 7500억원)을 기록했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이면엔 이 같은 관광 추태가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어 ‘문명 관광’을 하자는 탄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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