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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중국판 인터넷'…검열우려 뉴IP 세계표준 밀어붙이는 中

중앙일보

입력

"2028년엔 미국과 중국으로 갈라진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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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9월 에릭 슈밋 전 구글 회장이 한 말이다. 뭐가 갈라지는데?

인터넷이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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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밋 전 회장은 당시 ‘인터넷이 조각날 가능성이 얼마나 있느냐’는 질문에 “쪼개지지는 않지만 향후 10년 안에 미국과 중국이 각각 주도하는 인터넷으로 갈라진다는 게 유력한 시나리오”라며 “중국이 (인터넷) 제품이나 서비스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는 걸 보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중국의 경제성장 속도가 대단한데, 그에 기여하는 주요 수단이 인터넷이란 점을 근거로 들었다.

다만 이를 긍정적으로 보진 않았다. 그는 “진짜 큰 위험은 검열과 통제 등을 가하는, 통치에 있어 다른 지도체제가 (중국 인터넷) 제품, 서비스와 함께 온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미국과 세계를 양분할 중국 버전 인터넷은 검열이 체계화한 시스템일 것이란 뜻이다.

2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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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밋 전 회장의 상상은 현실에 조금 가까워졌다. 중국은 실제로 자신들의 인터넷 시스템을 세계 표준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 3월 화웨이와 중국 국영 통신회사 차이나유니콤, 차이나텔레콤 등은 중국 정보기술산업부와 함께 유엔 산하 국제통신연합(ITU)에 ‘뉴 인터넷프로토콜(IP)’이란 새로운 인터넷 표준을 제안했다.

[FT 캡처]

[FT 캡처]

FT가 입수해 보도한 화웨이의 제안은 이거다. 현재 방식의 인터넷 시스템은 자율주행차나, 사물인터넷 등과 같은 첨단 디지털 기술을 수용하기엔 부족하다. 사설통신망을 비롯한 다양한 망이 등장했는데, 이들 망의 주소 구조가 각각 달라 호환 문제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첨단 디지털 기술을 수용하기 위해선 보다 효율적인 인터넷 주소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래서 자신들이 만든 뉴IP를 쓰자는 게 화웨이 주장이다.

뉴IP에선 같은 망 내에선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전송하지 않고도 기기들끼리 소통할 수 있다는 게 화웨이 설명이다. 새 시스템은 여러 나라와 기업이 함께 개발하고 있으며, 2021년엔 일부 테스트 작업을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문제는 검열 가능성이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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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IP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뉴IP에선 새로운 주소를 추가하려면 망들이 추적 기능을 가져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인터넷을 통한 소통을 검열하고 통제가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FT에 따르면 실제로 화웨이는 ITU에 뉴IP를 제안하는 과정에서 특정 인터넷 주소로의 통신을 끊는 ‘셧업 명령(shut up command)’ 기능이 있음을 인정했다. 원래 이 셧업 명령은 불필요한 시간 지연과 에너지 소비를 막는 기능이긴 하다. 하지만 필요에 따라선 감시와 검열수단으로 악용될 수도 있는 게 사실이다.

당연히 이에 우려를 나타내는 건 미국, 영국, 스웨덴 등 서방 국가다. 이들은 중국판 뉴IP가 적용되면 정부 또는 국영통신사업자가 일반 시민의 인터넷 이용을 감시, 통제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현재로선 중국의 계획이 실현될 확률은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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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에 따르면 당초 중국과 화웨이는 11월 인도에서 열리기로 했던 ITU 회의에서 뉴IP를 새 표준으로 밀어붙일 생각이었다. ITU 사무총장이 중국인 자오허우린(趙厚麟)이란 점도 기대했다.

자오허우린 ITU 사무총장.[사진 바이두바이커]

자오허우린 ITU 사무총장.[사진 바이두바이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회의 개최 여부는 불분명하다. 더구나 화웨이는 현재 미국의 강력한 제재로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중국의 인터넷 표준 제안이 국제적으로 채택될 가능성은 작다”라고 전망했다.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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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표준 논쟁은 사실상 글로벌 세력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주축이 된 제3세계 그룹은 기존 인터넷 시스템에 불만이 많다. 인터넷의 전신은 미국이 1968년 만든 아파넷(ARPANET)이다. 이때부터 미국은 인터넷 주소 관리 권한을 행사했다. 상무부 산하 국가정보통신국(NTIA)을 통해 민간 다자기구인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를 통제해서다.

권위주의 정치체제가 자연스러운 제3세계 국가에선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을 원칙으로 내세운 미국의 인터넷 시스템이 못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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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중국이 대안도 제시했다. 더힐은 “지난 2005년~2018년까지 중국의 인터넷 방화망인 ‘만리방화벽’의 성과는 많은 국가에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통제가 가능함을 보여줬다”며 “이로 인해 러시아, 이란,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자국 내 인터넷 콘텐트를 통제할 수 있는 법적, 기술적 수단을 개발하는 데 힘쓰게 만들었다”고 전했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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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들 국가가 중국판 인터넷에 대한 관심을 끄지 않는 한 인터넷 표준 경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중국은 제3세계 지지를 등에 업고 뉴IP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미국대로 전 세계 IT 네트워크가 중국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을 막으려 필사적이다. 이른바 위챗과 틱톡을 제재하는 등 ‘클린 네트워크 프로그램’을 내세우며 동맹국 IT 기업에 중국과의 거래를 끊기를 종용하고 있다.

슈밋 전 회장의 두 개의 인터넷 예언, 아직은 실현 가능성이 꽤 있다. 그리고 이는 필연적으로 미·중 기술 패권 전쟁으로 귀결될 것이다. 과연 어떻게 전개될까.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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