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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오 보란듯 교황청 때리자, 교황은 대놓고 바람맞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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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익스프레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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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맞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9년 10월 유럽 순방 중 바티칸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을 접견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9년 10월 유럽 순방 중 바티칸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을 접견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그랬다. 누구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에게서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바티칸을 방문한 폼페이오 장관이다. 당초에 교황을 접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교황 측에서 이를 거부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정치적 중립이다. 미국은 11월 대선을 앞두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교황이 현직 장관을 만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거다.

하지만 이탈리아 언론 라 레푸블리카는 “폼페이오 장관이 최근 한 잡지에 교황청과 중국이 체결한 합의를 비판한 글을 실은 것과 관련해 교황이 사실상 폼페이오 장관의 접견을 거부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고 전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미국 보수 가톨릭 잡지 ‘퍼스트 싱스(First Things)’에 기고했다. 여기서 그는 “2018년 (중국과 교황청의)합의 이후 중국 내 기독교인들의 인권상황이 크게 악화했다”며 “교황청이 합의를 연장한다면 교회의 도덕적 권위가 크게 실추될 것”이라고 썼다. 폼페이오 장관은 트위터 등을 통해서도 같은 주장을 내놨다.

30일 주교황청 미국 대사관이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연설 중인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AP=연합뉴스]

30일 주교황청 미국 대사관이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연설 중인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AP=연합뉴스]

폼페이오 장관은 30일 주교황청 미국대사관이 주최한 심포지엄에서도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중국처럼 종교적 자유를 억압하지는 않는다"며 가톨릭교회를 겨냥해 "세속적 고려가 이러한 원칙을 무너뜨리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바티칸에선 폼페이오 장관의 공개 비판을 상당히 무례한 처사라고 보고 있다.

30일 주교황청 미국 대사관이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연설 중인 폴 갤러거 교황청 외무장관.[AP=연합뉴스]

30일 주교황청 미국 대사관이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연설 중인 폴 갤러거 교황청 외무장관.[AP=연합뉴스]

역시 심포지엄에 참석한 교황청의 폴 리차드갤러거 외무장관은 '미국 측이 일방적으로 이 행사를 개최한 게 자국 대선에 교황을 이용하려는 의도라고 보느냐'는 ANSA 통신 질문에 "그렇다. 교황이 폼페이오 장관을 만나지 않으려는 이유"라고 답했다.

도대체 중국과 교황청 사이에 무슨 합의를 했길래 미국은 이 합의를 연장하지 말라는 걸까.

사연은 7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4월 중국 베이징의 성요셉 성당 앞에서 중국 시민이 스케이드보드를 타고 있다.[UPI=연합뉴스]

지난 4월 중국 베이징의 성요셉 성당 앞에서 중국 시민이 스케이드보드를 타고 있다.[UPI=연합뉴스]

중국과 교황청은 1949년 중국 건국 이후 오랫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다. 주교 임명 문제가 원인이었다. 교황청은 주교 임명이 교황의 고유 권한이란 점을 고수했다. 중국은 자국 승인 없는 주교 임명을 거부했다. 이른바 ‘자선자성(自選自聖)’ 원칙이다. 결국 교황청은 51년 중국 대신 대만을 합법 정부로 인정한다.

그러자 중국이 교황청에 단교를 선언한다. 중국 정부는 57년 자체적으로 ‘천주교애국회’를 설립해 천주교 성직자를 직접 임명했다. 중국 내 성당과 성직자도 스스로 관리했다. 천주교 애국회 소속이 아닌 가톨릭 신자는 탄압했다. 이른바 ‘지하교회 신자’다. 이 역사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중국 내에 애국회와 지하교회 신자는 각각 700만 명, 1000만 명으로 추정된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로이터]

프란치스코 교황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로이터]

상황이 변화한 건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하면서다. 교황이 중국에 우호적인 메시지를 보내자 중국과 바티칸은 주교 임명권을 놓고 협상에 들어갔다. 그래서 2018년 9월 22일 왕차오(王超) 중국 외교부 부부장(차관)과 앙투안 카밀레리 교황청 외교차관이 베이징에서 합의안에 서명한다. 합의문은 공식발표되지 않았지만, 내용은 알려졌다. ‘교황이 중국 정부가 임명한 주교 7명을 승인하고, 중국은 교황을 가톨릭 수장으로 공식 인정하기로 한다’가 골자다.

양측이 노리는 바가 있었다.

[데일리익스프레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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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실질적 주교 임명권을 통해 국내 가톨릭 세력 통제를 이어갈 수 있었다. 교황청은 “(주교 임명)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합의를 근거로 “중국 가톨릭 주교의 최종 임명권은 교황에 있다”고 해석하며 위안했다. 하지만 교황이 거부권을 행사한 적은 아직까지 없다.

가톨릭 내에선 합의에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했다. “교황이 중국의 종교 박해를 묵인한 것” “바티칸을 따랐던 중국 신자를 저버렸다” 등의 말이 나왔다.

2017년 중국 베이징의 한 성당에서 크리스마스 찬송가를 부르는 모습.[EPA=연합뉴스]

2017년 중국 베이징의 한 성당에서 크리스마스 찬송가를 부르는 모습.[EPA=연합뉴스]

중국 공산당의 관리하에 종교가 있기 때문이다. 2016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모든 종교는 당의 영도를 따라야 한다”며 “정부는 국가ㆍ공공이익에 관련된 종교 문제를 법에 따라 관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미사를 재개하면서는 ‘애국심에 관한 설교’를 해야 한다고 강제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행위는 중국 공산당이 종교를 통치의 위협 요소라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럼에도 교황청으로선 1700만 명이나 되는 중국 신도에 다가갈 수 있다는 이점을 놓치기 싫었다. 중국도 교황청이 필요했다. 바티칸은 유럽에서 유일하게 대만과 외교 관계를 유지 중이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은 대만과 바티칸의 관계를 끊고 싶기 때문에 바티칸과 친교를 필요로 한다”고 분석한다.

그런데 2년 기한의 합의가 곧 종료된다.

지난 4월 중국 베이징의 성요셉 성당 앞에서 중국 시민들이 체조를 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지난 4월 중국 베이징의 성요셉 성당 앞에서 중국 시민들이 체조를 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바티칸은 협정을 1~2년 연장할 생각이다. 중국 정부도 긍정적이다. 그런데 폼페이오 장관이 이를 연장하지 말라고 압박한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9년 10월 유럽 순방 중 바티칸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을 접견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9년 10월 유럽 순방 중 바티칸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을 접견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다만 폼페이오 장관의 기고문과 트위터 발언은 이례적이다. 물밑 대화가 아니라 공개적으로 교황청을 압박했다. 통상대로라면 교황을 만나 관련 내용을 은밀히 요구하거나, 교황청 실무진과 논의를 먼저 하는 것이 맞다. 갤러거 외무장관은 30일 심포지엄에서 "보통 정부 고위급 방문을 준비할 때는 사적으로 또는 내밀히 안건을 협의한다. 이는 외교 원칙 가운데 하나"라며 미국 측의 외교적 결례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미국이 자국 정치에 교황을 끌어들인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윌리엄 니 엠네스티 연구원은 SCMP에 “폼페이오의 발언은 대선에서 마음을 정하지 못한 가톨릭 유권자에 영향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강한 반중국 정서를 만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미·중 갈등에 교황청이 낀 모양새다. 인제 와서 중국이 주교 임명을 안 하겠다고 할 리 만무하다. 미국도 지속해서 연장 합의 반대 압박을 할 태세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택은 무엇이 될까.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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