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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재정준칙 ‘직강’한 홍남기…맹탕 논란은 기자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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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동그라미를 치면서 기사 제목을 봤는데 너무 내용이 전달이 안 된 것 같다. 고무줄·맹탕이라고 하는데. 제가 3개월간 같이 고민하고, 칠판 갖다놓고 브레인스토밍만 십여 차례 했다. 언론에 그런 뜻이 충분히 전달이 안 된 거 같단 생각이 들어서 오늘 좀 추가로 설명해 드린 거라고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6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5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 방안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5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 방안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우려에 정식 브리핑도 자제하는 요즘, 홍남기 부총리가 이날 이례적으로 비공식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지난 5일 기재부가 발표한 ‘한국형 재정준칙’을 기자들이 ‘잘 이해를 못 한 것 같으니’ 다시 설명하겠다는 이유였다. 기자간담회는 겉으로는 재정준칙을 다시 설명하겠다는 취지였지만, 실제 내용은 비판적 기사에 대한 홍 부총리 불만으로 채워졌다. 표정은 굳어 있었고 설명 도중 종종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홍 부총리가 말한 억울함은 크게 4가지다.

우선 한국형 재정준칙이 언론 기사와 달리 느슨하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형 재정준칙은 국가채무(60%)와 통합재정관리수지(-3%) 기준을 각각 반영한 산식으로 만들었다. 이 때문에 둘 중 하나만 지켜도 돼 기준이 헐겁다는 비판을 받았다. 홍 부총리는 “국가부채와 재정수지를 ‘AND(둘 다 충족)’로 하면 너무 엄격하고 ‘OR(하나만 충족)’로 하면 너무 느슨해서 두 개를 곱하는 산식을 쓴 것”이라며 했다. 일부로 기준을 낮췄다는 비판은 틀렸다는 지적이다.

또 법률이 아니라 법령으로 재정준칙 정한 것은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서”고, 재정준칙 예외·면제 조항을 둔 점은 “코로나19처럼 위기가 왔을 때 준칙에 얽매여 재정이 역할 하지 못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해명했다. 마지막으로 재정준칙 적용을 2025년으로 미룬 건 당장 적용이 어려우니 “3년간 유예를 줬다”고 설명했다.

이날 홍 부총리는 직접 그린 도표까지 들고나와 재정준칙 ‘직강’에 나섰다. 하지만 정작 이 준칙이 제대로 지켜질 수 있을지 의문은 가라앉지 않았다. 사실 많은 전문가가 재정준칙 성공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하는 부분은 기준을 어떻게 강제하느냐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10년 작성한 ‘재정준칙 도입에 관한 연구’에서 재정준칙이 필요한 이유로 ‘정치적 지대 추구(political rent seeking)’를 꼽았다. 정치적 지대 추구란 정치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원을 낭비하는 현상이다. 이를 재정에 대입한다면 선거나 지지를 목적으로 국가 곳간을 마음대로 쓰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실제 해당 논문에 따르면 선거 이듬해 주기적인 조세부담률과 국민부담률 하락이 있었다. 정치적 지대 추구로 재정이 낭비되는 현상이 관찰됐다. 국민이 내는 세금이나 부담금을 줄일 때 정부 지출도 함께 졸라매지 않으면, 그 구멍은 결국 나랏돈(재정)으로 메울 수밖에 없다. 후대에 갚아야 하는 국가채무만 늘게 된다. 이 때문에 논문은 “재정준칙 성공 여부는 운용 및 성과에 대한 통제 가능성에 달려 있다. 향후 정치적인 압력이나 경제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적인 대응이 재정 규율을 악화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그렇다면 한국형 재정준칙은 이런 부분에서 얼마나 의문을 해소했을까. 느슨한 준칙 면제·완화 조항은 홍 부총리 설명대로 “위기 대응”을 위해서라고 하자. 하지만 적용 시점을 다음 정부가 시작한 2025년부터, 그것도 그 정부가 원하면 언제든 바꿀 수 있는 시행령으로 정했다. 나중에 지켜진다는 약속을 홍 부총리도 쉽게 할 수 없다.

홍 부총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지적에 “대다수 국민 의견이 재정준칙을 법으로 제정하는 게 타당하다고 한다면, 법으로 제정하는 것도 배제하지 않는다”며 한발 뒤로 물러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정말 제대로 작동하는 재정준칙을 만들고 싶었다면, 국민 여론을 살필 게 아니라 처음부터 이 부분을 고민했었어야 했다. 홍 부총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기자들의 이해’가 아니라 정책의 자기 점검일 듯하다.

세종=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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