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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덮죽 베끼기 넘어 상표장사까지, 레시피도 ‘예의’ 지켜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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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전영선 산업1팀 차장

전영선 산업1팀 차장

‘소고기와 시금치 등의 채소를 볶아 간장으로 양념해 고명을 만들어 흰쌀 죽 위에 듬뿍 부어 덮은 요리’.

안동찜닭·흑당버블티·마라샹궈 #새 요리 창의적 아이디어 훔치기 #‘미투 메뉴’에 결국 식당들 공멸 #원작자 존중, 보상 풍토 세워야

지난 7월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나온 포항 덮죽집의 ‘덮죽’ 메뉴를 설명하면 이렇다. 이 레시피를 판매하는 다른 외식업체가 등장했다는 사실이 10일 포항 덮죽집 사장의 인스타그램으로 알려지면서 인기 메뉴를 그대로 베낀 ‘복붙(복사해서 붙이기) 메뉴’와 ‘미투 메뉴’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음식 배달 애플리케이션 배달의민족에서 덮죽과 유사한 메뉴를 선보인 업체는 한 곳이다. 논란이 시작된 이후 이 업체는 배달을 중단하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이 업체는 특허청에 지난 9월 4일 ‘○○ 덮죽’으로 상표 출원까지 했다. 네티즌과 요식업계는 “수개월의 노력을 훔치는 도둑질”이라는 집중포화를 퍼붓고 있다. 이미 이 회사의 주소와 전화번호, 대표의 신상정보를 공유하며 불매운동에 나선 상태다. 12일 결국 덮죽을 베낀 업체는 사과하고 “덮죽 사업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지난 7월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나온 포항 덮죽집의 ‘시소(시금치+소고기)덮죽’(왼쪽 사진)과 이를 그대로 베낀 한 업체의 소고기시금치덮죽.

지난 7월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나온 포항 덮죽집의 ‘시소(시금치+소고기)덮죽’(왼쪽 사진)과 이를 그대로 베낀 한 업체의 소고기시금치덮죽.

안동찜닭, 흑당 버블티, 치밥, 치킨 치즈볼, 마라샹궈, 밀크 아이스크림…. 요식업 ‘복붙 메뉴’ ‘미투 메뉴’의 사례는 그동안 많고도 많았다. 특정 메뉴가 인기를 끌면 너도나도 뛰어들어 유사 메뉴를 출시하는 것이다. 음식 조리법은 창작의 결과가 아니라 창작 전 단계인 ‘아이디어’로 보기 때문에 법적 보호 대상이 아니어서다. 이 때문에 요식업계에선 복붙 메뉴 트렌드에 대해 둔감하다. 최근에는 외식 트렌드가 두 계절 이상 이어지는 경우도 드물어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심정으로 유사 메뉴가 쏟아진다. 하지만 유독 덮죽 카피가 집중포화를 받은 것은 ‘최소한의 상도의’마저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요식업계 관계자는 “마라처럼 유행하는 맛으로 신메뉴 출시 경쟁을 벌이거나, 그해 저렴해진 재료 때문에 비슷한 메뉴가 쏟아지는 현상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향후 프랜차이즈 본부 설립을 위해 덮죽으로 상표 출원부터 했다는 점이 메뉴 개발자에겐 단 한 푼도 주지 않고 채가겠다는 의도가 보인다”고 말했다.

메뉴 베끼기 문제가 반복되면서 일각에선 조리법도 창작물로 보고 저작권법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많다. 만약 포항 덮죽 조리법을 저작권으로 보호하려면 요리의 특정한 재료와 계량을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재료는 쉽게 더하거나 뺄 수 있고, 볶는 온도나 양념을 변형했을 때 저작권 침해인지 새로운 창작물인지를 판가름하기도 어렵다.

결국 업계의 자정 능력과 상식 ‘예의’를 기대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법적 책임을 떠나 조리법 원작자를 존중하고 이를 통해 경제적 이득을 취할 경우 보상하는 풍토가 만들어져야 한다. 복붙 메뉴, 미투 메뉴를 지금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 소비자는 금세 싫증을 낼 것이고 결국 이는 업계 전체가 공멸하는 길이다.

전영선 산업1팀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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