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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정책 불신만 키운다

중앙일보

입력

다음달 1일로 예정된 건강보험 재정 통합을 앞두고 여.야.정이 상이한 입장을 보여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한나라당이 24일 단독으로 국회 보건복지위를 열어 재정 분리 법안을 통과시키자 민주당은 "다수를 이용한 폭거"라며 법사위와 본회의 통과를 저지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청와대는 "국정 마비가 우려된다"며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태세다.

한나라당은 파장을 의식한 듯 "올해 본회의 처리는 시도하지 않겠다"면서도 내년 초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현 상황대로라면 내년 1월 1일 재정을 통합했다가 한두달 후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면 다시 분리하는 엄청난 혼선이 초래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이 기회에 그동안 진행돼 온 통합 과정의 문제점 등을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할 때까지 통합을 유보하고 재정 분리를 검토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에서조차 "국회의 결정에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면서도 "건보 재정 안정을 위해 분리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건보 재정 통합의 전제조건은 직장과 지역 건보료 부과 기준이 같아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재정을 무리하게 통합하면 직장과 지역 건보의 주인 의식이 사라져 수입과 지출 관리가 어려워져 안 그래도 위기에 빠진 건보 재정이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재정 통합의 또 다른 문제는 건보료 인상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지난해 7월 조직 통합을 전후해 직장조합의 적립금이 바닥나고 지난해 건보료 인상 노력이 무산됐던 사실에서도 확인됐다.

무엇보다 직장인들의 소득은 1백% 노출되는 데 반해 지역 가입자(자영자.일용직 근로자 등)의 소득은 30%밖에 파악되지 않는 마당에 통합하면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원천적인 반감이 아직도 강한 상황이다.

김원길(金元吉)복지부 장관도 이를 의식한 듯 지난 6월 "예정대로 건보 재정을 통합하더라도 재정이 흑자로 돌아서는 2006년까지 직장과 지역의 재정을 구분 계리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정부가 보험의 기능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해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성균관대 의대 김병익(金秉益)교수는 "건강보험은 아플 때를 대비한 단기 소멸성 보험인데 잘사는 사람이 못사는 사람을 돕는다는 소득 재분배 기능을 너무 강조해 통합을 강행한 게 잘못"이라면서 "이런 기능은 조세나 기초생활보장제 등의 방법으로 접근하는 게 합당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노총을 비롯한 통합 지지 세력들은 한나라당이 분리 법안을 복지위에서 통과시킨 것에 즉각 반발하고 나서 앞으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 바람직한 대안은 없나...

건보재정 안정은 직장건보의 정상화에 달려 있다. 지역건보는 전체 재정의 28.8%를 국고에서 지원받다 올해부터 40% 지원받기 때문에 2003년 흑자로 돌아선다.

직장건보는 적자행진을 계속해 2006년이면 2조원의 누적적자를 안게 된다.

전문가들은 직장건보 재정을 살리기 위해서는 재정을 분리하고 조직도 광역단위로 세분화해 단위별로 스스로 수입과 지출을 통제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직장건보 재정을 철저히 관리하고 담배부담금(연간 6천6백억원)의 절반을 직장건보에 지원하면 재정안정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건강증진법 개정안은 담배부담금을 직장.지역 구분없이 65세 이상의 노인의료비로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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